진흙속의연꽃

삶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26. 11:04

삶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한가한 월요일 오전이다. 절구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려 본다. 피시(PC)에서는 이미우이음악이 흐른다. 일감은 없다. 그렇다고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때 되면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내세울 것이 없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삶이다.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한 세월이다. 특히 사십을 전후한 십년이 그랬다. 이를 인생에 있어서 격동의 시기라 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인생의 주기를 나누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직장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회사를 옮겨 다니는 것으로 인생의 주기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 격동의 십년동안 수도 없이 옮겨 다녔다.

 

나는 복이 있는 사람일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박복한 것 같다. 특히 직장문제와 관련해서 그렇다. 자주 옮겨 다닌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년 때까지 직장생활한 사람들은 복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옮겨 다닌 회사는 열 곳이 넘는다. 새로운 직장을 잡을 때마다 이력서를 썼는데 너무 많아 육개월 이하 짧은 것은 뺀다. 그러고서도 열 개가량 되는 것 같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스트레스 받는다. 새로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과도 사귀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력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

 

새로운 직장에 가면 늘 셋업 작업부터 먼저 했다. 개발장비를 구입하고 개발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이전 경험을 살려서 빨리 개발제품을 내 놓아야 한다. 그러나 순탄하지 않다. 개발로서 끝난 것도 많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떠나야 한다. 또 다시 직장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는 것이다.

 

격동의 시기에 직장생활은 길어야 2년이다. 1년 이내도 많다. 5년 간다면 장수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첫직장에서 가장 오래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7년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은 늘 불안하고 불안정했다. 정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직장을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 보니 사방팔방이 된 것 같다. 어느 해에는 서쪽으로 가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동쪽으로 다녔다.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직장이라도 정이 들면 떠날 때 섭섭하다. 무엇보다 그동안 맺은 관계가 끝날 때 허무한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또다른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늘 똑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시절로 돌아 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젊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시간을 되돌렸을 때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좋았던 일보다 힘들었던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종종 직장에서 쩔쩔매는 꿈을 꾼다.

 

월급생활자로 20년 살았다. 월급을 모아 놓으면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남은 것이 없다. 시간을 저당 잡혀 돈을 받았지만 시간도 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 남은 것이 있다. 그것은 기록이다. 세월은 가도 업무노트만큼은 남아 있다.

 

 

업무노트에는 20년 동안 기록이 남아 있다. 정확하게 1987년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업무노트에는 회의, 업체상담, 아이디어 구상 등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 두었다. 언젠가는 필요로 할 때가 있을 것 같았다.

 

업무노트는 개인적인 것이다. 공유되지 않는다. 나만의 비밀노트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낙서도 있고 때로 혼란스런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도 있다. 이를 모두 모아 두었다. 1987년이후 지금까지 모두 모아 두었는데 세어 보니 100권가량된다.

 

직장생활 20년에 남은 것은 업무노트 밖에 없다. 이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것도 삶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업무노트를 열어 보았다. 새로 시작하는 직장에 대한 기록도 있다. 간단하게 어느 회사에서 근무시작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기록도 있다. 역시 간단하게 “OO근무 마지막 날이라고 써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기록을 남긴 것일까?

 

 

나에게 기록은 본능과도 같다고 본다. 흘러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날자를 쓰고 기록을 남겼을 때 세월이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이런 본능은 블로그에 글쓰기로 이어진 것 같다.

 

일인사업자로 삶을 산 것은 2005년 이후이다.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없어서 자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무엇을 해먹고 살 것인지 막막했다. 일년 동안 해맸다. 2006년부터 현재 일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 했었을 때 개발과정의 하나였던 일이다. 인쇄회로기판설계(PCB)를 말한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하는 일이다.

 

일인사업자의 삶을 살면서 안정이 되었다. 더 이상 직장을 찾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직장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수입은 불안정하고 형편없지만 그 대신 자유가 있다.

 

일인사업자의 삶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다. 직장생활은 시간에 얽매여서 자유가 없지만 일인사업자의 삶은 시간적 자유가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글쓰기이다.

 

일사업자가 되고 나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록본능이 발동한 것인 지 모른다. 그렇다고 일기를 쓴 것은 아니다. 그날그날 인상깊었던 느낌을 쓴 것이다. 마침 인터넷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블로그가 히트상품이 되었는데, 블로그에 글쓰기 한 것이다.

 

 

일인사업자의 삶과 블로그 글쓰기의 삶은 일치한다. 올해로 15년 되었다. 일이년이 멀다하고 옮겨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안정적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기간동안 많은 기록을 남겼다. 문구점에 의뢰하여 책으로 낼 것으로 염두에 두고 파일을 만들어 보니 100개가 넘는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니 영광된 삶은 아니다. 특히 직장생활했었를 때 삶은 고달픈 삶이었다고 생각된다.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어느 날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매번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서글펐던 것이다.

 

 

일인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온전히 나의 삶을 살고 있다. 삶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다. 적게 벌어도, 일감이 없어도 게의치 않는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는 재미도 있다. 나는 자유인이다.

 

 

2021-04-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