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연기적 시민의식과 함께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정원을 가꾸어 가자, 눈부처학교 10기 2강

담마다사 이병욱 2023. 9. 13. 16:31

연기적 시민의식과 함께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정원을 가꾸어 가자, 눈부처학교 10기 2강

 

 

불교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종교라고 한다. 왜 매력적인 종교인가? 그것은 불교는 젊은이들로부터 매력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어제 눈부처학교 102강에서 방영준 선생이 말한 것이다.

 

눈부처학교 2강이 어제 912() 불교환경연대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2강의 주제는 붓다의 정치철학과 불교의 과제에 대한 것이다. 성심여대 방영준 명예교수가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진행했다.

 

눈부처학교는 모두 6강으로 일주일에 한번 열린다. 매주 화요일 불교환경연대 사무실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열린다.

 

안양에서는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한다. 오후 5시 반에 길을 나셨다. 불교환경연대 사무실은 종로 3가 부근에 있다. 낙원상가 뒤로 해서 운현궁 옆에 있다. 종로2가역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것보다 2가역이 더 낫다. 갈 때도 3가역보다 2가역이 더 낫다. 조금이라도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저녁 탑골공원은 그야말로 야시장을 방불케 한다. 동남아 국가에서 보는 야시장이 연상된다. 거리 빈터에는 노천 먹거리 장터가 섰다. 젊은이들과 노인들 천국이다. 탑골공원 쪽에는 노인들이 많다. 종로3가 역 방향쪽에는 젊은이들이 많다. 지역에 따라 세대가 갈리는 것이다.

 

불교환경연대 사무실까지 꽤 걸린다. 걸어서 15분가량 걸리는 것 같다. 강의가 시작하기 20분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정평불 상임대표 최원녕 선생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최원녕 선생은 김밥을 준비 했다. 집에서 손수 만든 것이다. 가운데 치즈가 들어 있어서 고소한 맛이 난다. 이를 치즈김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물김치까지 준비했다.

 

지난주에도 김밥을 먹었다. 김밥집에서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주문한 김밥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참치김밥은 5천원하는 것 같다. 사람 숫자대로 준비한다면 비용이 감당 되지 않을 것이다.

 

김밥을 집에서 준비한다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비용이 절감되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일 것이다. 그대신 노고가 들어갈 것이다. 이런 일을 상임대표가 기꺼이 하는 것이다.

 

김밥을 집에서 준비하면 친환경적이다. 플라스틱 케이스 같은 것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성이다. 참석자들을 위한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다.

 

강의가 시작 되었다. 방영준 선생은 준비된 프린트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프린트 보다 직접 들은 것이 더 남는다. 강의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었다. 물론 이 강의는 유튜브에 공개된다. 김경호 선생이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백번 책으로 보는 것보다 저자에게 직접 듣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방영준 선생의 강연도 그렇다. 프린트에 없는 내용을 말했기 때문이다.

 

방영준 선생은 청년들을 기대했던 것 같다. 청년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청년들은 없었다. 모두 나이 든 사람들뿐이다. 이에 약간 실망했던 것 같다. 대학생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젊은 수다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요즘 전반적으로 고령화 추세에 있다. 이런 현상은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재가불교단체에서 청년들을 보기 힘들다. 모두 다 고령이다. 그것도 젊은 시절 인연 맺었던 사람들이 세월과 함께 그대로 가는 것 같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육칠십대이다. 이제 오십대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날 참석자는 강연자 방영준 선생, 그리고 본인을 비롯하여 동출스님, 최연, 이도흠, 김경호, 박종린, 최원녕, 조현덕, 김광수 선생이 참석했다.

 

 

붓다와 정치철학, 어울리는 말일까? 세속을 떠나 멀리 있는 듯한 불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나 방영준 선생은 정치에 불교의 담마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붓다의 정치철학이라는 책까지 냈다.

 

방영준 선생 강연은 마치 대학교 강의실에서 듣는 것 같다. 매우 학술적이고 매우 이론적이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것 같다. 모두 검증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방영준 선생이 말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었다. 노트하다 보니 13페이지가 되었다. 그것도 노트를 반으로 접어서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26페이지가 된다.

 

방영준 선생이 말한 것을 모두 쓸 수 없다. 일부만 쓸 수밖에 없다. 강의 중간중간에 말한 것이 있는데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그것은 놀랍게도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상식을 깨는 말이다.

 

이제까지 정치와 종교는 분리 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분리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정일치의 사회일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유사이래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어떠할까?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불교는 정치와 분리되지 않았다. 일본불교가 제국주의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어떠한가? 해방 후에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득세하게 되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은 바이블을 놓고 선서하지 않던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다고 한다. 주로 서구열강에서 그랬다. 서구 제국주의시대에 기독교는 정치와 밀착 되어서 함께 갔다. 이슬람에서는 한손에는 칼, 또 한손에는 코란을 들었다. 이럴 때 불교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불교가 전세계의 종교로 확산된 것은 아소까대왕시대이다. 아소까대왕은 담마에 의한 정복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님의 담마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를 가져 오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세계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다.

 

불교가 정치와 결합하여 왕권의 지원 받았을 때 세력이 확장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 역시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치가 유일신교와 결합했을 때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가 불교와 손을 잡았을 때는 대체로 평화의 시기였다.

 

방영준 선생은 정치가 불교의 담마와 손을 잡았을 때 이를 가장 이상적인 구조로 보았다. 이왕이면 불교가 낫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교리체계가 다른 종교보다 월등하게 수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도 이데올로기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방영준 선생은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결합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를 했다. 모든 이데올로기에는 함정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가 이데올로기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기 정치적 도구로 활용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그것은 폭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면 될수록 더욱더 폭력적으로 된다. 그러나 정치과 불교의 담마를 받아 들이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이든지 근본적인 가르침이 있다. 그런데 근본 가르침에 충실하면 할수록 폭력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유일신교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이것만이 진리이다.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며 독선적인 교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 근본주의나 이슬람 원리주의는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불교에도 근본가르침이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근본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가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전쟁 날 일이 없는 것이다.

 

불교와 정치는 양립할 수 있을까? 니까야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은 전륜성왕의 출현이다. 디가니까야 26번경에 따르면, 전륜왕은 몽둥이를 사용하지 않고 정법을 사용해서 정복했다.”(D26.2)라고 했다.

 

전륜왕의 정법은 어떤 것일까? 주석에 따르면 계행의 법을 말한다. 이는 경에서 여섯 가지 계행으로 나타난다. 오계에다가 하나 더해져 있다. 그 더해진 것은 놀랍게도 음식의 분량을 알라.”(D26.11)라는 것이다.

 

음식의 분량을 알라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이는 욕망의 절제에 대한 것이다. 음식은 시각, 청각 등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을 대표하는 것이다.

 

전륜왕은 세상을 육계로 다스리고자 했다. 오계에다 음식절제를 포함한 것이다.이것이 전륜왕의 정법이다.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아소까 대왕은 전륜왕으로 칭송되고 있다. 부처님의 담마만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하여 담마비자야(Dhamma vijaya), 즉 담마에 의한 정복을 천명했다. 이렇게 본다면 아소까대왕은 불교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강연은 1시간 15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다. 박종린 선생이 중정(中正)정치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이날 강연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다.

 

중정정치란 무엇인가? 방영준 선생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이는 중도와 정의가 결합된 말이다. 이상적인 정치는 연기적 사유에 바탕을 둔 정치로 구현된다고 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면 불교의 가치관이 들어가 있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이에 대하여 방영준 선생은 중정정치를 말했다. 그런데 방영준 선생은 중도정치에 대하여 연기적 사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중도에 대하여 연기적으로 보는 것과 같다.

 

중도를 연기로 보는 것은 경전적 근거가 있다. 이는 상윳따니까야 깟짜야나곳따의 경에서 여래는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로서 가르침을 설한다.”(S12.15)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이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설했기 때문이다.

 

 

눈부처학교 102강 강연이 끝났다. 젊은이들이 오기를 기대했으나 나이 든 사람들만 있었다. 본래 이번 10기 눈부처학교는 젊은 불자를 대상으로 기획된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층의 참가가 없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불교는 훌륭한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재료가 좋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교리체계는 현시대와도 맞는다. 젊은이들을 끌만한 교리체계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젊은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종교로 어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의 미래는 밝다.

 

불교의 교리가 아무리 훌륭해도 알려지지 않는다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불교가 널리 확산되려면 정치와 손을 잡아도 될 것이다. 제정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정치가 불교의 교리체계를 정치도구로 삼아도 될 것이다.

 

불교의 정치화는 중정정치로 실현될 수 있다. 연기적 사유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연기는 중도이고, 중도는 양극단을 떠난 것이다. 그래서 방영준 선생은 중정정치의 핵심에 대하여 연기적 시민의식과 함께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정원을 가꾸어 가자라고 했다.

 

 

2023-09-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