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명학공원과 쌍개울 봄마중

담마다사 이병욱 2024. 4. 20. 08:56

명학공원과 쌍개울 봄마중

 

 

어떤 이는 글 쓸 때 반드시 날씨를 말한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날씨 얘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이 표현한 그 지역 그 날의 날씨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치 허사(虛辭)처럼 보인다.

 

오늘 날씨는 우중충하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를 보는 것 같다. 하루는 맑고 하루는 흐리고 하루는 비가 오는 봄 날씨를 말한다. 이런 날씨 소식을 전하는 것도 읽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봄의 징조는 있었다. 가장 앞선 것으로 동지를 들 수 있다. 어둠이 절정에 달한 것을 봄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다음으로 입춘이고, 그 다음으로 3월 개학일이다. 그러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월이나 되어서야 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지가 개벽되었다. 불과 이삼주전까지만 해도 가지가 앙상했으나 어느새 푸른 잎으로 무성하다. 그것도 연두빛깔이다.

 

 

이제 연두빛깔 세상이 되었다. 싹이 막 돋기 시작한 잎파리는 마치 간난아기의 살결처럼 보드랍다.

 

연두빛은 점차 녹색으로 변할 것이다. 여름이 되면 진한 녹색으로 된다. 마치 아이가 자라 성년이 되는 것과 같다. 가을이 되면 붉거나 노랑색으로 변한다. 잎새도 일생이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연두빛세상이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고 가장 빛나는 계절이다. 연두빛이야말로 진정한 봄의 전령사이다. 그러나 연두빛세상은 길지 않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건강을 잃었을 때 얼마나 건강이 소중한지 알게 된다. 젊었을 때는 젊음을 알지 못한다. 노년이 되었을 때 젊음 시절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봄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일년에 두 차례 있다. 봄과 가을에는 살만하다. 그래서일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봄날만 같아라. 추우면 추워서 괴롭고 더우면 더워서 괴롭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봄날은 사월과 오월이 최고의 계절이다.

 

봄날에 꽃들은 피고 진다. 노랑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이 피었다. 이제 벚꽃은 완전히 졌다. 그러나 꽃들의 릴레이는 계속된다. 이제 영산홍이 바톤 터치 했다. 박태기 꽃도 가세했다. 그러나 무어니 해도 라일락이다.

 

 

라일락 향기는 아름답다. 향기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냄새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라일락은 바람을 거스르지 못한다. 코를 가까이 대어야 한다.

 

라일락 향기가 날 때 봄을 실감한다. 눈으로는 연두빛세상이지만 코로도 봄을 실감한다. 그것은 꽃의 향기이다. 그 중에서도 라일락만한 것이 없다. 일년 내내 봄날은 없을까?

 

봄이 되자 먼 곳에서 사람들이 온다. 지난 겨울 먼 남쪽나라 갔던 사람들이 돌아 온 것이다. 고국에서 봄을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몽골과 같은 시원한 나라로 또 떠나겠지.

 

시간부자인 사람, 돈 부자인 사람들은 봄을 찾아 다닌다. 꽃피는 따뜻한 나라에서 겨울 한철 나는 것이다. 천상과 같은 삶이다.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따뜻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꽃이 끊임 없이 피는 천상과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인도,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와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러고 보니 모두 불교국가이다.

 

천상은 어떤 곳일까? 아마 봄날과 같은 날씨일 것이다. 봄이어서 항상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타카를 보면 천상과 같은 동산을 묘사한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불자들에게 자타카는 생소하다. 이름은 들어 보았을지 모르지만 읽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운이 좋아서일까 자타카가 완역되었을 때 교정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그때 베싼따라자타카’(Jat.547)를 읽었는데 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의 묘사에 감탄한 바 있다. ‘숲에 대한 작은 찬탄의 게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갖가지 열매가 열리는

이들 검푸른 나무가 그곳에 나타나고,

구름 속의 봉우리들처럼

검푸른 칠흑의 산들이 솟아있다.”

그곳에 다바, 앗싸깐나,

카디라, 쌀라, 판다나, 넝쿨나무들이

한바탕 술 취한 젊은이들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린다.”

나뭇가지의 끝 위에서

노래 소리들이 들리나니,

낫주하들과 뻐꾸기들의 무리가

나무에서 나무로 날아다닌다.”

가지와 잎새를 흔드는 새들이,

가는 자에게 작별하고,

오는 자를 즐겁게 하고,

사는 자와 함께 기뻐한다.”(Jat.547)

 

 

 

어느 날 숲에 한 바라문이 나타났다. 바라문은 사자로 왔다고 말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보살은 기분이 좋아 졌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보시바라밀행을 실천하기에 좋은 기회로 보았기 때문이다.

 

십바라밀 중에 보시바라밀이 있다. 어떤 것일까? 이는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라는 내용으로 알 수 있다. 보시바라밀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주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나 아이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목숨도 줄 수 있다.

 

베싼따라 자타카에서는 작은 숲에 대한 예찬뿐만 아니라 아슈람에 대한 예찬도 있다. 보살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던 처소에 대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긴 길이의 게송이다.

 

 

망고 나무, 까벳타 나무,

그리고 빠나싸 나무, 쌀라 나무,

장미사과나무, 비비따까 나무,

하리따끼 나무, 아말라까 나무,

앗싸타 나무, 빠다라 나무가 있다.”


 
여기에 아름다운 땀바루 나무,

니그로다 나무와 까벳타나 나무,

꿀이 떨어지는 마두카 나무,

낮게 열매 맺는 우둠바라수가 있다.”

아름다운 대추야자와

맛있는 포도가 있을 것이니,

거기서 그들은 맑은 꿀을

스스로 갖다가 먹을 수 있으리.”

여기에는 꽃이 핀 망고들이 있고,

싹이 트는 다른 망고들이 있다.
한쪽은 설익었고 한쪽은 익었다.

그 양쪽 모두가 청개구리색이다.”

여기 나무 아래서 사람이,

옷 잘 익은 망고를 딸 수 있다.

설익었거나 잘 익었거나

빛깔과 향기가 더할 나위없다.”

또한 황금빛이 나를 비추다니,

나에게 실로 놀라운 일이다.

신들의 전당처럼 빛나니,

마치 천상의 환희원와 같다.”

드넓은 숲에 종려나무,

야자수, 대추야자 등이

엮은 꽃타래처럼 서 있으니,

깃발의 꼭대기처럼 보인다.”
갖가지 빛깔의 꽃들이

별들로 수놓은 하늘과 같다.”

꾸따지 나무, 굿타 나무,

감송 나무, 트럼펫 나무가 꽃피고,

용화수 나무, 산용화수 나무,

흑단수 나무가 꽃을 피었다.”

웃달라까 나무, 쏘마룩카 나무,

침향 나무, 견과류 나무가 많고,
뿟따지바 나무, 까꾸다 나무,

아싸나 나무가 여기 꽃을 피웠다.”

꾸따자, 싸랄라, 니빠 나무,

꼬쌈비 산의 빵나무, 아카시아 나무,

그리고 쌀라 나무가 꽃이 피었는데,

탈곡 마당에 쌓인 짚처럼 빛난다.”

그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천상의 환희원과 같은

아름다운 곳에 연못이 있는데,

홍련과 청련으로 뒤덮여 있다.”

그곳에 아름다운 꽃에 취하여

뻐꾸기 새들이 매력적으로 지저귀니,

계절의 꽃이 만개한 나무 위로

총림을 울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감로수와 더불어

꿀이 연꽃마다 떨어지고,

여기로 바람이 불어와

남쪽으로 또는 서쪽으로

연꽃잎과 화사와 꽃가루가 날려,

아슈람에 흐트러져 있다.”

여기에 두툼한 씽가가따까,

쌍싸디야’, ‘빠싸디야가 있고
물고기들, 여러 종류의 거북이들과,
많은 게들이 여기에 있고,
연꽃들에서는 꿀이 나오고,

줄기에서 우유와 버터가 흐른다.”

그 숲에는 방향이 불고,

각종 향기가 가득하다.

그 방향이 꽃들과 가지들과 함께

숲을 향기로 가득 채운다.”

벌들이 꽃향기와 더불어

주위 사방에서 붕붕거린다.

또한 여기 새들이 산다.

갖가지 색의 빛깔을 한,

많은 새들이 암컷들과 함께

서로 지저귀며 기뻐한다.”(Jat.547)

 

 

 

세상에 이런 동산이 있을까? 그래서일까 마치 천상의 환희원와 같다.”라고 했다. 삼십삼천에 있는 환희의 동산(nandana: 歡喜園)을 말한다. 인간세계에도 천상의 정원과 같은 아름다운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갖가지 종류의 나무가 있고 사시사철 꽃이 핀다. 그리고 갖가지 새가 지저귀는 곳이다.

 

보살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슈람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는 547번 자타카에서 제석천이 , 이보게, 그대는 방까 산에 가서 아름다운 곳에 아슈람을 짓고 오라.”라고 자신의 부하에게 명령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여기서 방까산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한 산의 이름이다.

 

 

봄이 되면 온갖 꽃이 만발한다. 봄이 되면 나뭇가지에서는 새순이 돋는다. 이내 연두빛세상이 된다. 그러나 이런 봄날은 오래 가지 않는다. 꽃은 십일 가지 못하고 더위가 찾아 온다. 연두색이 녹색의 세상이 되었을 때 더 이상 꽃은 보이지 않는다. 봄날은 간 것이다.

 

봄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푸르러 간다. 생태하천에는 보라색의 야생화가 피어 있다. 쌍개울 너른 대지 위에는 인공으로 튜립단지가 조성되었다. 그래 보았자 한두 달이다.

 

봄은 왔느가 싶으면 가버린다. 그토록 봄을 기다렸건만 계속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따뜻한 봄만 있는 나라에서 살 수 없다. 일년에 한철 밖에 없는 봄을 마중하고자 한다. 명학공원 봄마중이고 쌍개울 봄마중이다.

 

 

2024-04-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