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57권 담마의 거울 2024 I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9:18

 

157권 담마의 거울 2024 I

 

 

1985년 7월 대졸신입사원 연수 때의 일이다. 그때 강사는 “여러분 잘 들어오셨습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람을 가득 넣는 것이었다. 프라이드를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연수시절 프라이드 주입은 주효했다. 들은 대로 배운 대로 산업보국을 실현하고자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보탬이 될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후 밤낮 없이, 주말 없이, 휴가 없이 일했다.

 

프라이드의 다른 말은 우월감이다. 또한 자만이라고 볼 수 있다. 합하면 우월적자만이 된다. 모든 면에서 자신만만한 것이다.

 

자만에는 우월적 자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세 가지 자만이 있다. 어떤 것인가? 부처님은 “세 가지 교만 곧, 내가 우월하다는 교만, 내가 동등하다는 교만, 내가 열등하다는 교만이 있습니다.”(D33)라고 했다. 이런 자만은 부서져야 한다.

 

자만에는 우월적 자만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등도 자만이고 열등도 자만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것은 초기경전에서 처음 접한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자만에는 세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석에서는 아홉 가지 자만을 소개하고 있다. 어떤 것인가? 이는 우월, 동등, 열등이라는 세 가지 자만에 다시 우월, 동등, 열등이라는 세 가지 자만이 더해진 것을 말한다.

 

아홉 가지 자만에서 가장 우월한 자만이 있다. 우월한 자 가운데 우월한 자만을 말한다. 가장 열등한 자만은 열등한 자 가운데 열등한 자만이다.

 

자만은 기본적으로 우월감이다. “누가 나 같은 자가 있으랴?”라는 자만을 말한다. 우월한 가운데 우월은 어떤 것일까? 왕과 고행자를 예로 들 수 있다.

 

왕은 모든 것을 가진 자이다. 왕국의 영토는 왕의 것이다. 왕국의 백성 역시 왕의 것이다. 대신 등 우월한 자들 가운데 가장 우월한 자는 왕이다. 이런 왕은 재산에 있어서 “누가 나와 같은 자가 있으랴?”라며 교만을 세운다. 왕의 우월중우월이다.

 

수행자는 범부와 다른 사람이다. 수행자는 범부에 비해서 우월한 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수행자 그룹에서 더 우월한 자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자인가? 고행자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고행자는“출가자 가운데 나는 계행과 두타행 등을 통해서 다른 수행승과 차이가 있다.”라며 교만을 세우는 것이다. 수행자의 우월중우월에 해당된다.

 

열등한 자의 자만도 있다. 그렇다면 열등중열등의 교만은 어떤 것일까? 이는 노예를 예로 들 수 있다.

 

태생이 노예인 자가 있다. 열등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열등중열등의 교만을 일으킨다. 어떻게 일으키는가? 주석에 따르면, “나는 태생에 의해서 노예상태이다. 그러나 나에게 부모의 노예의 지위는 없다. 내가 왜 노예라고 불리우는가?”라며 열등중열등의 교만을 세우는 것이다.

 

열등중열등의 교만을 보면 난세의 영웅을 생각나게 한다. 농민반란의 우두머리 진승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며 봉기했다. 태생은 비천하지만 천부적인 것은 아님을 말한다. 이는 “나는 태생에 의해서 노예상태이다. 그러나 나에게 부모의 노예의 지위는 없다. 내가 왜 노예라고 불리우는가?”라는 말과 같다.

 

우월중우월, 동등중동등, 열등중열등, 이렇게 세 가지 교만이 기본이다. 이 세 가지 교만은 아라한이 되었을 때 사라진다. 자만은 오상분결 가운데 하나로서 정신적 장애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한평생 자만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나면 잘난 대로 자만을 부리고, 못나면 못난 대로 자만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어떤 자만으로 살아왔는가?

 

나에게도 자만이 있을까? 은연중에 표출된다. 대학 나온 것, 대기업에 간 것이 큰 자만일 것이다. 이는 일종의 우월적 자만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월중열등의 교만에 해당될지 모른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보는 것이다.

 

자만이라고 해서 우월적 자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열등한 것도 자만이 된다. 태생적으로 열등한 것이 크다. 훌륭한 가문에 태어나지 못한 것, 우월한 지역에 태어나지 못한 것은 평생 열등적 자만이 된다.

 

자만은 비교에서 온다. 비교에서 우월이 있고 동등이 있고 열등이 있다.

 

나의 삶은 전반적으로 열등에 기반한다. 태생적으로 열등이고, 지역적으로도 열등이다. 또한 가문으로도 열등이고, 신체적으로도 열등이고, 지적능력으로도 열등이다.

 

학문적으로도 열등이다. 석사와 박사 타이틀이 없어서 열등이다. 재산이 적은 것도 열등이다. 중산층이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대체로 재산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눈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것을 보니 1)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월급여 500만원 이상, 3)자동차는 2000씨씨 이상 소유, 4)예금잔고는 1억원 이상, 5)1년에 한차례 이상 해외여행 다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확실히 중산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외국의 중산층 개념은 다르다. 프랑스나 영국의 중산층 개념은 소유가 아니라 문화이다. 또한 정신적 재산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또한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다. 물질적 재산보다 정신적 재산을 더 많이 가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승리’에 해당될 것이다.

 

오늘 157번째 책 서문을 쓰는 날이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 책의 서문이 된다. 서문을 써야 책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157 담마의 거울 2024 I’로 정했다. 통산 157번째 책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근거하여 쓴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2024년 1월 5일부터 3월 21일 까지 쓴 글로 24개의 글이 실려 있다. 총 317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법은 들을 준비된 자에게 설한다

2. 희로애락이 있는 인간세계는 공부하기 좋은 환경

3. 자칭타칭 깨달았다고 하는 자들의 막행막식을 보면

4.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권과 2권을 다 읽고

5. 인상과 속성의 유혹에 사로잡혀 그 순간에 죽는다면

6. 안수정등(岸樹井藤) 모티브가 되는 경을 발견하고

7. 작용심(作用心)만 있으면

8. 눈물 나게 추운 아침에

9. 약설지자(略設知者)와 상설지자(常設知者)와 제도가능자

10. 찟따장자는 유마거사의 롤모델

11. 욕망이야말로 괴로움의 뿌리

12. 상구보리하화중생을 동시성으로 보는 이유

13. 박복한 자의 오대의무

14. 코코넛 즙을 마셔 보았는가?

15. 자주(自洲)에서 나(atta)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6. 누구도 나의 안전을 지켜 주지 않지만

17. 볼 때는 볼 때뿐이고

18. 늙음은 부끄러운 것인가?

19.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20. 여행자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21.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 꼰대

22. 왜 사리뿟따를 지혜제일이라고 하는가?

23. 액면 그대로 비추어 주는 진리의 거울

24. 디지털논리 진리표로 본 진실과 허위의 언어적 개념

 

 

157 담마의 거울 2024 I_250716.pdf
3.06MB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피와 같은 글이고 생명 같은 글이다. 태생이 열등한 자가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다. 이렇게 드러내는 것도 자만일 것이다. 열등중열등이라 볼 수 있다.

 

열등중열등의 교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농민반란 수괴가 “왕후장상의 씨가 어딨어?”라고 부정하는 것과 같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이다. 평범한 불자가 글을 쓸 때 열등중열등의 자만이 일어났다. 그래서 작가 보다 더 작가다운 글을 쓰고자 했고, 또한 시인보다 더 시인다운 시를 쓰고자 했다.

 

때로 인정받고 싶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처럼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은 글을 아무리 잘 써도 공감표현에 매우 인색한 것 같다. 엄지척모양의 ‘좋아요’나 하트모양의 ‘최고에요’이모티콘 누르는 것에 인색한 것이다.

 

종종 유명인에게 ‘엄지척’ 이모티콘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감동한다. 올린 글을 한번 더 읽어 본다. 오자나 탈자 등이 없는지, 비문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리 해도 반응이 없다. 우월가운데우월한 자라서 그런 것일까?

 

평생 살면서 우월감을 느낄 때는 많지 않다. 대학 다닐 때, 대기업에 다닐 때 일시적으로 프라이드를 가졌다. 그러나 평생 가지는 않는다.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여전히 열등감이 지배한다.

 

지역은 늘 열등의 대상이 되었다. 이력서 쓸 때 지역이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는 호적을 서울로 바꾸었다. 지역차별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나에게 가문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도 촌에서 태어난 자에도 족보는 있다. 그러나 내 세울만한 인물은 없다. 태생적으로 열등한 것이다.

 

최종학력은 대졸이다. 그것도 서울의 중간정도 위치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재가불교 활동을 한다고 하여 세상에 나와 보니 최종학력은 열등한 것이었다. 다들 석사이고 박사인 것 같았다.

 

세상에 왜 이렇게 교수가 많을까? 페이스북 친구들을 보면 왠만하면 시인이고 교수인 것 같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하는 것 같아 열등감이 생겨나는 것 같다.

 

세상에는 부자도 많은 것 같다. 타고 다는 차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큰 차를 몰고 다니는 것 같다. 이 나이 먹도록 구백구십구씨씨경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파트는 왜 그리 넓은 데서 사는 것일까? 스물두평아파트와 비교하니 열등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남과 비교하면 온통 열등감뿐이다. 나보다 우월한 자와 비교하기 때문일 것이다. 태생, 가문, 학력, 지위, 부에 있어서 열등감을 느낀다.

 

나보다 못한 자도 있다. 세상에는 불행하고 가난한 자는 수없이 많다. 이럴 때 우월감을 느껴야 할까?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죄악이다.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죄악이다. 비교하여 우월감, 동등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모두 죄악에 해당된다. 왜 그런가? 자만(mana)은 불선법(不善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데?” 또는 내가 누군데 감히!”라는 불선법을 말한다.

 

이십대 후반은 프라이드로 살았다. 대기업 S사에 다니면서 프라이드로 산 것이다. 그때 연수 받을 때 강사들이 바람을 가득 넣어 준 것이 원인이 되었다. 그 힘으로 삼십대를 살았다. 직장을 옮겨서도 산업보국의 전사가 되고자 했다. 밤낮 없이, 주말 없이, 휴가 없이 일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나고 보니 삼십대 때 일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세상을 살다 보니 프라이드는 없어졌다. 현실적 삶이 지배했다. 사십대 전반에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프라이드는 다시 회복되었다. 사십대 중반에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렇다고 자만의 글쓰기는 아니다. 성찰하는 글이 되고자 했다.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를 한 것이다.

 

책을 한권 내면 프라이드는 고양된다. 일종의 자만이고 교만이라 볼 수 있다. “너희 들이 못하는 것을 나는 해냈어!”라는 자만을 말한다. 그것도 백권 이상 만들었다고 세상에 떠벌리는 것이다.

 

프라이드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그것은 자만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우월중우월’이 될 수 있고, ‘동등중동등’이 될 수 있고, ‘열등중열등’이 될 수 있다. 특히 열등중열등이 되면 “왕후장상에 씨가 있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오늘 책 한권을 냈다. 출판하는 것은 아니다. 블로그 ‘진흙속의연꽃’의 ‘백권당’ 카테고리에 피디에프(PDF)파일 올려 놓는 것이다. 더구나 책 서문에 157번째 책이라고 세상에 알린다. 이런 것도 자만이고 교만일 것이다. 스스로 ‘정신승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장애가 될지 모른다.

 

프라이드는 양면성이 있다. 자신감을 갖게 해주기도 하지만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는 비교에 따른 것이다. 프라이드에는 우월적 자만, 동등적 자만, 열등적 자만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 또 하나의 책을 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유명인사들은 관심 밖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쓰며 때가 되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책을 내는 것은 어쩌면 ‘열등중열등’일지 모른다. 열등한 자가 우월한 자에 대하여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외치는 것과 같다. 어쩌면 세상사람들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어디 있어?”라며 외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언젠가는 멈추게 될 것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장애가 되는 자신만만프라이드가 있다.

 

 

2025-07-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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