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59권 위빠사나수행기 2024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9:20

 

159권 위빠사나수행기 2024

 

 

오늘도 천천히 걸었다. 마치 탁발승처럼 멍에의 길이만큼 눈을 아래로 하여 앞만보고 걸었다. 한마리 코뿔소가 되었다.

 

재가우안거 65일째이다. 비산동에서 안양6동까지 가는 코스는 매일 걷는 길이다. 2007년 말 이후 지금까지 내리 18년동안 이 길을 걸었다.

 

주변환경은 변했다. 상전벽해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됨에 따라 단독주택, 오층짜리 아파트, 그리고 시장 등은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타워형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었다.

 

비산2동의 변화는 극적이다. 이곳에 1995년 이사 온 이래 모두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백권당 가는 길에 있는 안양7동의 변화 역시 극적이다. 이전의 것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사무실이다. 이곳에 온 이후 변함없다. 세월은 흘러 갔어도 벽지는 18년전 그대로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길을 다녔다. 처음에는 빨리빨리 걸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느려졌다. 지금은 소가 걷는 것처럼 천천히 걷는다.

 

이곳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있다 보니 세월이 이만큼 흘러가버렸다. 그렇다고 하여 세월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세월만큼 남은 것이 있다. 그것은 글이다.

 

세월은 갔어도 글은 남았다. 글에 세월이 녹아 들어 있다. 남은 것은 글 밖에 없다.

 

오늘도 글을 쓴다. 매일 오전은 글 쓰는 시간이다. 글을 써야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무어라도 하나 써야 한다. 이런 세월을 살아왔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써 놓은 글을 책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에 만든 책은 2024년 수행에 대한 기록이다. 2024년 재가우안거가 끝나고 나서 12월 30일까지 수행에 대한 기록이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명색새김, 담마새김, 체험새김이라는 세 종류의 싸띠

2. 나는 한번도 같은 때가 없었다

3. 떼, 들, 밀, 밀, 밀, 내, 딛, 누, 팔단계행선법

4. 시분할(時分割)로 움직임을 관찰하면

5. 위빠사나 수행자는 철저하게 분별론자가 되어야

6. 어떻게 해야 오온의 생멸(生滅)을 볼 수 있을까?

7. 누구도 멈추게 할 수 명색(名色)의 강

8.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때그때 새기는 삶

9. 설산동자가 주저함 없이 투신(投身)한 까닭은?

10. 기회의 싹을 자르지 말자

11. 구멍 난 발우

 

 

 

 

책에는 열한 개의 글이 있다. 그날 행선과 좌선을 하고 난 다음 느낌에 대하여 쓴 것이다. 경전과 논서를 근거로 해서 작성했다.

 

책 제목을 ‘159 위빠사나수행기 2024’로 정했다. 159번째 책으로 2024년 하반기 위빠사나수행과 관련된 글 모음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편집을 필요로 한다. 목차를 만들고 사진을 사이즈에 맞게 줄이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이때 과거 쓴 글을 빠른 속도로 스캔한다.

 

책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다. 나의 업경대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시기별로 편집된 책이 그렇다.

 

글은 그날 보고 듣고 느꼈던 것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대상이 된다. 가장 중한 업을 대상으로 글쓰기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글 쓰는 행위 자체도 업이라는 것이다. 구업(口業)이 될 것이다.

 

매일 입으로 업을 짓고 있다. 글 쓰는 행위도 언어적 행위로 보기 때문에 구업으로 보는 것이다.

 

글쓰기는 선업일까 불선업일까? 내용에 따라 선업도 될 수 있고 불선업도 될 수 있다. 비난이나 비방하는 글을 썼다면 불선업이 된다. 성찰의 글을 썼다면 선업이 될 것이다.

 

수행자에게 글은 선업이 되기 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 상태가 깨끗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마음이 탐, 진, 치로 오염되었다면 글을 쓸 수 없다. 매일 아침 정신이 맑을 때 글 쓰는 이유가 된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거의 대부분 글은 아침에 쓴 것이다. 오후나 저녁이 되면 글을 쓸 수 없다. 마음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글 쓸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 일과 가운데 마음이 가장 청정할 때 글을 쓴다. 이렇게 쓴 글이 산을 이루었다. 세월에 따라 글의 양도 늘어난 것이다. 이제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누가 이런 글을 읽을까?

 

나는 왜 글을 쓸까? 가장 큰 목적은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이다. 흘러가는 세월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향상과 성장을 위한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글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늘 새로운 것이다. 매일 아침 하얀 여백을 대할 때 새로운 글을 쓴다. 글이 늘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어제와 다른 상태가 됨을 말한다. 매일매일 향상하는 삶, 매일매일 성장하는 삶이 된다.

 

수행의 방편으로 글을 쓴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성찰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불리한 것도 쓴다. 동어반복도 있기 마련이다. 매일 글 쓰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나는 글로 인하여 얼마나 향상되고 성장되었는가? 처음 글쓰기 할 때와 비교하면 분명 다르다. 그 동안 향상되고 성장되었음에 틀림없다. 세월은 흘러가버렸지만 향상과 성장의 증표는 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책은 인터넷에 올려 놓는다. 블로그 백권당 카테고리에 올려 놓는다. 누군가 인연 있는 사람이 피디에프(pdf)를 다운받아 갈 것이다. 단 한사람이어도 좋다.

 

한사람을 위해서 글을 쓴다. 내 글을 읽어 줄 한사람을 위해서 책을 만든다. 누군가 한사람 이 책을 읽는다면 역할은 다한 것이다.

 

오늘 아침 코뿔소가 되었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간다. 홀로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 간다. 눈을 아래로 하여 멍에의 길이만큼 앞을 보고 걷는다.

 

 

“두 눈을 아래로 하여 새기며,

경솔하게 걷지 말고, 감관을 지키고, 정신을 수호하며,

번뇌로 넘치게 하거나 번뇌에 불타지도 말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66)

 

 

2025-09-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