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61권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독후기 II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9:23

 

161권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독후기 II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을 읽고 독후기를 쓴 것이다. 두 번째 읽은 것이다.

 

마하시 사여도 법문집은 읽을만하다.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가운데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은 두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을 누가 읽을까? 수행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수행에 대하여 관심 없는 사람이 본다면 한두 페이지 읽다가 말 것이다.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을 두 번 읽었다. 한번 읽은 것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새겨두고 싶은 주옥 같은 내용이 많았다. 이를 복습하는 차원에서 한번 더 읽은 것이다.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 동안 읽었다. 머리맡에 놓고서 조금씩 읽었다.

 

책을 읽으면 독후기를 쓴다. 감명 깊은 구절에 대해서는 글로 표현했다. 모아 놓이니 책으로 한권 되었다. 이를 ‘161 위빳사나수행방법론 두 번째 독후기’라고 이름 붙였다. 161번째 책이다. 모두 48개의 글로 553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보기 싫은 사람, 나를 무시한 사람, 원한 맺힌 사람을 대하는 방법

2. 눈물 나게 추운 아침에

3. 약설지자(略設知者)와 상설지자(常設知者)와 제도가능자

4. 욕망이야말로 괴로움의 뿌리

5. 결정적인 순간에는 스승의 도움이 필요해

6. 박복한 자의 오대의무

7. 삶이 지겨울 때 여덟 가지 윤회의 고통을

8. 코코넛 즙을 마셔 보았는가?

9. 답이 없는 형이상학적 질문

10. 볼 때는 볼 때뿐이고

11. 늙음은 부끄러운 것인가?

12. 노보살의 정치보국(政治報國)

13. 왜 사리뿟따를 지혜제일이라고 하는가?

14. 담마와나선원 2024년 3월 초청탁발법회

15.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들

16. 마하까루나(大悲)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17.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도

18.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까?

19. 2024년 우중의 연등축제

20. 왜 판단중지해야 하는가?

21. 미얀마불교 전법현장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붓다의 날

22. 생성과 소멸의 무한소용돌이, 뮤지엄 딥다이브에서

23. 수락산 정상에서 청량함이란

24. 현법낙주(現法樂住)가 아니라 현법관찰(現法觀察)을

25. 죽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린 계획

26. 인간은 근본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

27.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

28. 수행은 번뇌와의 전쟁

29. 증득 없는 스승

30. 한국테라와다불교 2024년 우안거 입재법회

31. 한걸음도 무심코 내딛어서는 안돼

32. 개운죽 분갈이

33. 대상과 새기는 마음이 붙어 있는 것처럼

34. 위빠사나찰나삼매에 대하여

35. 현재 조건에 만족하는 삶

36. 서쪽하늘을 벌겋게 달군 노을처럼

37. 이번 생에 수행자로 사는 사람은

38. 선불교 견성 (見性) 콘서트를 보고

39. 참을 수 없는 오토바이 소음

40. 내가 분리된 것처럼 ‘몸 따로 정신 따로’

41. 행선 중에 기쁨, 행복, 평온이

42. 유튜브 없는 세상 이틀째

43.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44. 명색으로 먹은 미소(된장)라멘

45. 한국테라와다불교 2024년 우안거 해제의 날에

46. 그대는 지금 명색을 새기고 있는가?

47. 끊임 없이 흐르는 명색(名色)의 강

48. 명색새김, 담마새김, 체험새김이라는 세 종류의 싸띠

 

 

 

161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독후기 II_250913.pdf
2.91MB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은 이미 한번 읽은 바 있다. 이에 대하여 ‘138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독후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든 바 있다. 2022년 11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무려 1년 2개월에 걸쳐서 읽었다. 이제 두 번째로 읽은 것에 대한 독후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책은 후기 써 놓은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수행에 대한 것도 있고 담마에 대한 것도 있고 일상에 대한 것도 있다. 위빳사나수행방법을 읽고서 꼭 새기고 싶은 구절을 인용하여 글을 쓴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다. 자신만 알고자 한다면 글로 표현할 이유가 없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려 놓으면 누군가 보게 될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분류해서 올려 놓는 것이다. 책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 볼 것이다. 십년전에 올려 놓은 글도 검색만 하면 노출된다. 이럴 때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인터넷과 유튜브시대이다. 자신의 견해를 올려 놓은 수많은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불교와 관련된 것을 보면 대부분 정법에 어긋난 것들이다. 사부니까야를 보고 쿳다까니까야 번역된 것을 본 결과에 따른다.

 

하나의 판단 기준이 있다. 불교에서는 삼법인이 된다. 무상, 고, 무아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여기에 맞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또 하나의 잣대는 경전이다. 니까야(경서)와 위나야(율서)에 맞지 않으면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어떤 것이 진정한 부처님 가르침일까? 경전 만한 것이 없다. 니까야와 위나야는 정법인지 사견인지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또한 청정도론과 아비담마 논서 역시 정법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동안 수행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법문집을 읽고서 깨끗이 해소되었다. 특히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은 결정적이다.

 

매일 행선과 좌선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일상에서도 수행을 하고 있다. 뉴스를 보지 않고 유튜브를 보지 않는 것이다. 음악도 듣지 않는다. 맛에 대한 갈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소식(小食)한다. 이 모든 것에는 위빳사나수행방법론 영향이 크다.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을 보고서 명색구분새김을 알았다. 이전에는 이것을 몰라서 수행에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명색구분새김에 대한 개념을 알고 나서 모든 것이 슬슬 풀려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명색구분새김은 견해청정에 대한 것이다. 빤냣띠로 보지 않고 빠라맛타로 보는 것이다. 개념이 아닌 실재를 보는 수행을 말한다. 이렇게 명색구분새김 했을 때 견해는 청정해진다. 이를 선종에서 말하는 견성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명색구분새김하면 나는 사라진다. 걸을 때 움직임은 물질이고 이를 아는 마음은 정신이라고 구분해서 새기면 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새기면 삼매도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근접삼매에 가까운 찰나삼매를 말한다.

 

위빳사나수행방법론을 보고 수행의 방향을 잡았다. 위빠사나수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 읽어 보았다. 그것도 만 2년 보았다. 이렇게 알고 보았을 때 자신이 생겼다. 무엇이든지 명색구분새김하는 것이다.

 

명색구분새김하면 명색의 작용만 있을 뿐이다. 생체로보트와도 같다. 여기에 나라는 개념은 없다. 내가 없으니 번뇌도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 법의 절대성품을 볼 수 있다. 모두 위빳사나수행방법론 덕분이다.

 

 

2025-09-1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