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권 아낫딸락카나숫따(無我特徵經) 법문 독후기
“지상에서 유일한 왕권보다
천상계로 가는 것보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보다
진리의 흐름에 든 것이 탁월하다.”(Dhp.178)
오늘 새벽 읽은 것이다. 머리맡에 있는 우다나에 각주에 실려 있다. 법구경의 게송으로 ‘진리의 흐름’에 드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탁월함을 말한다.
여기서 진리의 흐름은 ‘쏘따빳띠팔라(sotāpattiphala)’를 번역한 말이다. 쏘따빳띠는 수다원을 말한다. 쏘따빳띠의 다른 말은 ‘성자의 흐름에 든 자’이다.
쏘따빳띠팔라를 ‘진리의 흐름에 든 것’라고 번역했다. 이는 의역이다. 직역하면 ‘성자의 흐름에 든 것’이 된다.
진리의 흐름에 들어가면 성자가 된다. 범부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 범부는 생사윤회를 할 수밖에 없지만 성자의 흐름에 들면 윤회의 종식이 예고되어 있다. 그래서 “흐름에 든 님은 가장 허약할지라도 이 생에서 다시 태어나는 다음 일곱 번째의 생애 안에서는 완전히 해탈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난다.”(DhpA.III.192)라고 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말인가!
사람들은 죽음 이후를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젊다고 하여 젊음의 교만으로 살아가고, 지금 건강하다고 하여 건강의 교만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젊음은 늙음에 종속되기 마련이고, 또한 건강은 질병에 종속되기 마련다. 천년만년 살 것 같은 삶의 교만은 죽음에 종속된다.
죽는다고 하여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다. 악업이든 선업이든 업이 익으면 과보로 나타난다.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세상은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로 인해서 존재합니다. 뭇삶은 달리는 수레가 축에 연결되어 있듯이, 행위에 매어 있습니다.”(Stn.654)라고 했다.
중생으로 살면 나고 죽는 일을 반복한다. 성자로 살면 윤회가 끝난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
불교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 삼귀의 할 때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초기경전, 즉 니까야에는 부처님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 원음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사부니까야를 완독하고 또한 쿳다까니까야 계열에서 번역된 것은 모두 완독했다. 니까야에서는 공통적으로 열반을 말한다.
한국불교에서는 열반을 말하지 않는다. 대승불교의 전통에 따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승보살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열반에 들면 안되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구제될 때까지, 이 우주가 다하도록 보살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윤회의 종식을 말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면 일곱생 이내에 윤회가 끝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테라와다 삼경 가운데 하나이자 예불문이고 동시에 수호경이기도 한 라따나숫따(寶石經: Sn.2.1)에 따르면, “성스러운 진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아무리 크게 방일하더라도, 여덟 번째의 윤회를 받지 않습니다.”(Stn.230)라고 했다.
불교인이라면 경전을 근거로 해서 말해야 한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면 사견(邪見)이 되어 버린다. 스님이나 학자의 말이라도 경전과 어긋난 것이면 역시 사견이 되어 버린다.
부처님은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아무리 못잡아도 일곱생 이내에 윤회가 끝난다고 했다. 이런 말은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된다. 부처님은 사성제의 진리를 꿰뚫은 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고귀한 제자가 참사람으로서 올바른 견해를 갖추고 진리를 꿰뚫으면, 그에게는 이미 부서져 소멸해 버린 괴로움이 많고 남은 것은 적어서 많이 잡아 일곱 번 더 윤회하더라도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수량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교에도 미치지 못하고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S56.49)
수다원이 되면,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많이 잡아 일곱 번 더 윤회(sattakkhattuṃ paramat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희망의 메시지나 다름없다. 괴로움이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윤회하고 싶은 사람 있을까? 다음 세상에는 천상에 나기 바랄 것이다. 그러나 천상은 마음대로 가는 곳은 아니다. 보시하고 지계하는 등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보장이 없다. 왜 그런가? 과거에 지은 업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생은 업생이다. 업이 있어서 업에 적합한 세상에 태어난다. 선업을 더 많이 지었다면 선처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보장되지 않는다. 악업이 남아 있는 한 어떤 세상에 태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수다원,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악처는 면한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경전적 근거가 있다.
라따나경(寶石經)은 테라와다불교의 예불문이자 수호경이다. 이런 이유로 법회가 열리면 독송된다. 우리나라 반야심경이나 천수경, 또는 금강경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경이다. 경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통찰을 성취함과 동시에, 개체가 있다는 견해, 매사의 의심, 규범과 금계에 대한 집착의 어떠한 것이라도, 그 세 가지의 상태는 즉시 소멸되고, 네 가지의 악한 운명을 벗어나고, 또한 여섯 가지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Stn.231)
유신견, 법에 대한 의심, 계금취견, 이렇게 세 가지가 타파되면 수다원이 된다. 성자의 흐름에 드는 것이다. 이렇게 범부에서 성자가 되면 운명이 달라진다. 이는 ‘네 가지의 악한 운명’과 ‘여섯 가지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네 가지의 악한 운명이란 무엇인가? 주석에서는 지옥, 축생, 아귀계, 아수라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수다원이 되면 사악처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마치 대령이 별을 달았을 때 셀 수 없는 특혜가 있는 것과 같다. 가장 큰 것은 악처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네 가지의 악한 운명을 벗어난다. (Catūhapāyehi ca vippamutto)”라고 했다.
흔히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고 말한다. 보시하고 지계하는 삶을 살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보장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보시를 많이 했어도, 심지어 절을 지어 승가에 보시를 했어도 성자의 흐름에 들지 않는 한 천상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은 높을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지옥, 축생, 아귀계, 아수라와 같은 악처에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선처에 태어난다.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고귀한 가문에 태어난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또 하나 보장되는 것이 있다. 이는 경에서 “여섯 가지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다.(Cha (cābhiṭhānāni abhabbo kātuṃ)”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고 했다. 여섯 가지 큰 죄악은 무엇을 말할까? 주석을 보아야 알 수 있다.
여섯 가지 큰 죄악은 무간업에 대한 것이다. 육무간업을 말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오역죄에 사견이 추가된 것을 말한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어지간한 번뇌는 제거된 상태이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와 내가 손톱 끝에 집어든 이 흙먼지와 어느 쪽이 더 큰가?”(S56.51)라며 흙먼지의 비유를 들었다.
손톱끝의 흙먼지는 대지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이다. 부처님은 흙먼지의 비유를 들어서 “진리에 대한 올바른 꿰뚫음에 도달한 고귀한 제자들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S56.51)라고 말했다.
수다원이 되면 남아 있는 번뇌는 매우 적다. 거친 번뇌는 모두 다 사라졌다. 악처에 날 정도로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어떤 것인가? 1)어머니를 살해하고, 2)아버지를 살해하고, 3)아라한을 살해하고, 4)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5)승단의 화합을 깨뜨리고, 6)이교의 교리를 추종하는 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수다원이 되면 계보가 바뀐다. 중생에서 성자로 계보가 바뀌는 것이다. 부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수다원은 특징이 있다. 경전에서는 다섯 가지 악한 운명이 소멸되고 여섯 가지 중대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에서는 성자의 흐름에 들어간 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아무리 좋아할 만한 대상을 보더라도 좋아함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싫어할 만한 대상을 보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단지 알기만 아는 상태로 알아 나갑니다. 생겨나면 사라져 버리고, 다시 생겨나면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생멸하는 성품만 계속 알아 나갑니다.
그래서 이 지혜단계에 이른 수행자라면 아라한이 갖춘 이 여섯 구성요소 평온의 덕목을 자신도 갖췄다는 사실을 알 때 자신이 매우 존경스러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 지 못해 자신을 존경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자신 스스로 성자의상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매우 존경하는 것입니다.
마음도 매우 미묘하고 부드럽습니다. 탐욕이 생길 만한 대상에 대해 탐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성냄이 생길 만한 대상에 대해 성냄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좋아할 만한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할 만한 것에 대해 싫어하지 않습니다.
계속 평온하게 지냅니다. 한 시간 수행하면 한 시간 내내, 두세 시간 수행하면 두세 시간 내내, 하루 종일 수행하면 하루 종일 단지 알기만 아는 상태로 계속 끊임없이 관찰합니다. 방해나 장애가 전혀 없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이러한 법의 맛을 경험하고 싶으면 직접 수행해 보십시오. 스스로 수행해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본승이 설하는 것만으로 그러한 법의 맛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아리야와사 법문, 245-246쪽)
수다원의 마음 상태에 대한 것이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 가운데 11단계인 ‘상카루뻭카냐나’, 즉 형성평온지혜의 단계에 대한 것이다. 이 단계는 범부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상의 지혜이다. 동시에 성자의 덕목이기도 하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평온상태가 유지된다. 이를 ‘여섯 구성요소의 평온’이라고 했다. 어떤 것인가? 이는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나서 좋은 마음도 없다. 나쁜 마음도 없다. 평온하게 지낸다. 새기고 바르게 알기 때문이다.”(A6.1)라는 경전적 근거에 따른다. 형성평온에 이르면 어떤 즐거움이나 괴로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성자가 되면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궁극적 경지인 열반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경지를 등불로 해서, 그 경지를 섬으로 해서 그 방향으로 주욱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수다원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다. 아무리 못잡아도 일곱생 이내에는 완전한 열반에 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가역적이다. 그래서일까 대승불교에서 보살도를 실현하는 자는 열반에 들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한번 열반에 들면 윤회가 끝나는 방향으로 거침 없이 가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수다원이 되면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수다원 조건에 대하여 설한 경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처님은 “ ‘지옥도 부서졌고 축생도 부서졌고 아귀도 부서졌고 괴로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도 부서졌고 나는 이제 흐름에 든 님이 되어 더 이상 타락하지 않고 삶의 길이 정초되어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S55.8)라고 스스로 자신을 예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다원이 되면 자신을 의지처로 할 것이다.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등불로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자신이 자신의 보호자가 된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 “자신이 자신의 의지처이고 자신이 자신의 안내자이다.”(Dhp.380)라고 했다.
수다원이 되면 더 이상 흔들림 없는 상태가 된다. 이처럼 성자로 계보가 바뀌게 되었을 때 스스로 자신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자신 스스로 성자의상태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매우 존경하는 것입니다.”(아리야와사 법문, 245-246쪽)라고 한 것이다.
불교인이라면 수다원을 일차 목표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열반을 체험해야 한다. 열반 없는 수다원은 없다. 열반은 명색과 의식, 즉 몸과 마음이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에 한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어야 산다. 범부가 죽어서 성자가 되는 것이다. 수행으로 가능한 것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은 성자가 되는 방법에 대하여 설한 것이다.
수많은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읽었다. 이번에는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을 읽었다. ‘무아특징경’이라는 법문을 말한다. 상윳따니까야 ‘다섯명의 경’(S22.59)이 그것이지만 문답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부처님의 법문은 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아라한이 되는 경으로 알려져 있다.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을 완독했다. 2025년 7월 20부터 읽기 시작해서 9월 21일까지 삼개월 걸쳐서 읽었다. 머리맡에 놓고서 주로 새벽에 읽었다.
법문을 읽고 후기를 썼다. 새기고 싶은 내용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글을 모으니 책으로 하나 되었다. 이를 ‘164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독후기’라고 이름 붙였다.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독후기에는 21개의 글이 있다. 재가안거 기간 중에 작성된 글이다. 아침에 행선이나 좌선을 한 후에 썼다.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서 썼다고도 볼 수 있다. 164번째 책으로 310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불교 창세기(創世記)
2. 관습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
3. 수행자의 자만
4. 산냐(지각)와 사띠(새김)의 관계에 대하여
5. 능력껏 보시하고 아는 만큼 알려 주고
6. 마음돌리기
7.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8. 불교를 배제한 마음챙김명상의 한계
9. 개산책에서 옷 입은 개를 보고
10. 불패 금강좌
11.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12. 행복보다 행운을 바라며
13.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아서
14. 점점 익숙해지는 촛불명상
15. 나마루빠(名色)를 어떻게 볼 것인가?
16. 진상고객이 되어 마음이 위축되었을 때
17. 천사(天使)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자
18. 위빠사나 삼매
19.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완독
20. 왜 세간법을 염오(厭惡)해야 하는가?
21. 백권당 행선대
오늘 새벽에도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을 보았다. 완독했지만 한번 더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뒤에서부터 앞으로 거꾸로 진도 나간다.
법문은 보면 볼수록 새롭다. 한줄한줄 새겨야 할 내용이다. 오늘 아침에는 무아가 진짜 드러나는 모습에 대하여 보았다.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생겨나서는 사라져 버린다’라는 것이 진짜 무상특성aniccalakkhana 입니다. ‘생겨남과 사라짐이라는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괴롭힌다’라는 것이 진짜 괴로움특성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진짜 무아특성입니다. 이 세 가지 특성 중 어느 하나를 보면 나머지 특성 들도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물질·정신이 생겨날 때마다. 생겨 나는 그 순간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는 수행자는 삼매와 지혜의 힘이 좋아졌을 때, 순간순간 생겨나서는 사라져 가는 것을 마치 손으로 잡고 보듯이 분명하게 경험해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생겨나서는 사라져서 무상하다’라는 것도 스스로의 지혜로 알게 됩니다. ‘생겨 났다가 사라졌다가, 계속 생멸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괴로운 것이 다’라고도 스스로의 지혜로 알게 됩니다. ‘조건에 따라 생멸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아의 성품법 일 뿐이다’라고도 스스로의 지혜로 알게 됩니다.”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269-270쪽)
참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법문이다. 특히 무아에 대하여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진짜 무아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는 무아에 대하여 ‘내가 없다’라거나, ‘실체가 없다’라는 등으로 알고 있었는데 제어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진짜 무아라고 한 것이다.
매일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살고 있다. 재가에 살고 있지만 출가자처럼 살아간다. 우안거기간에는 재가우안거를 하고 있다. 오늘로 재가우안거 85일째이다. 나흘 뒤면 안거가 끝난다.
안거 중에 나는 얼마나 향상되었는가? 늘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과 함께 했다. 그 가운데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을 안거 내내 읽었다. 그리고 행선과 좌선을 했다. 행선과 좌선이 끝나면 후기를 작성했다.
글은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책이 되었다. 이런 것도 재가자의 삶의 결실일 것이다. 법문집은 독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행기도 된다. 이런 책을 세상에 내 놓는다. 블로그 백권당 카테고리에 피디에프(pdf)가 실려 있다. 누구나 다운 받아 갈 수 있다.
2025-10-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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