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65권 재가우안거 2025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9:30

 

165권 재가우안거 2025

 

 

“나의 삶도 축복이요 나의 죽음도 축복이다.” 어제 저녁 우다나에서 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이 가능할까?

 

덥지도 춥지도 않은 호시절이다. 지난 여름 무더위는 끔찍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여름 보내기가 너무 힘들다.

 

오랜만에 날씨가 개었다. 이삼주 계속 비만 내렸다. 안양천 징검다리는 늘 잠겨 있다. 무지개다리를 이용하여 건넜다.

 

매일 같은 일상이다. 먹는 것도 변함없다. 아침에는 찐 것으로 계란, 고구마, 감자, 단호박, 당근을 먹는다. 최상의 웰빙식단이다.

 

얼굴에 사마귀가 사라졌다. 만지면 오돌토돌한 것이 마치 콩알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싹 사라진 것이다. 아마도 아침식단 영향이 큰 것 같다. 점심과 저녁을 소식한 것도 영향 있을 것이다.

 

나는 건강한가? 결코 아니다. 늘 골골한 편이다. 특히 여름 나기는 무척 힘들다. 내년에도 무더위를 겪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다.

 

사무실에서 아침식사가 끝나면 커피를 마신다. 원두를 절구질하여 만든 절구커피이다. 하루 가운데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써야 할 것을 메모한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4B연필로 쓱쓱 갈긴다. 메모하다 보면 서너페이지 된다.

 

메모는 행선할 때도 쓴다. 삼십분 행선하면서 좋은 생각이 떠오면 메모해 둔다. 삼매의 상태에서 나온 것이다.

 

행선은 삼매에 달려 있다. 삼매가 형성되면 행선은 쉬워진다. 몇시간이든 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삼매를 형성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새김과 정진에 달려 있다. 변화하는 대상, 움직이는 대상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새기는 것이다.

 

이십분 정도 새기면 어느 정도 삼매는 형성된다. 그러나 어떤 날은 행선하자마자 자동적으로 형성될 때도 있다.

 

행선에서의 삼매는 찰나삼매에 대한 것이다. 찰나삼매는 근접삼매에 가까운 집중을 말한다. 누구나 몰입하면 이 정도의 삼매는 형성된다.

 

요즘 좌선보다 행선위주의 수행을 하고 있다. 좌선보다 행선에서 얻는 이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좌선에서는 의도를 보기 힘들다. 오로지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한다. 외부의 소리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강한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행선에서 의도를 볼 수 있다. 움직이는 대상, 변화하는 대상으로 새기기 때문이다. 특히 후진행선에서 의도가 잘 보인다.

 

올해도 안거를 했다. 이를 재가우안거라고 칭한다. 올해로 세 번째 안거한 것이다.

 

재가우안거는 어떤 것인가? 재가불자가 삶의 현장에서 행선과 좌선하는 것을 말한다. 경전을 보고 논서를 보는 것도 해당된다. 수행기를 쓰는 것도 재가우안거에 속한다.

 

2025년 재가우안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행선과 좌선을 하면서 느낀 것을 기록한 것이다. 경전과 논서를 근거로 해서 작성했다.

 

글을 모아 놓으면 책이 된다. 올해 안거에 대하여 ‘165 재가우안거 2025’라고 책 제목을 달았다. 165번째 책으로 2025년 우안거에 대한 기록이다. 목차에는 50개의 글이 있고 535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한국테라와다불교 2025 우안거 입재법회

2. 사띠(正念)와 삼빠자나(正知)의 관계에 대하여

3. 보국(報國)으로 정신승리하는 삶을 살고자

4. 잠들기 전에 경전 한구절이라도

5. 우중(雨中)의 수종사 찾집

6. 비린내 나는 사람 비린내 나는 세상

7. 오늘은 유튜브 없는 첫째날

8. 오늘이 가장 젊은 날

9. 불교 창세기(創世記)

10. 관습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

11. 몸과 마음을 물질-정신(名色)으로 환원하면

12. 158권 담마의 거울 2024 II

13. 수행자의 자만

14. 능력껏 보시하고 아는 만큼 알려 주고

15. 밖으로만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16. 불교를 배제한 마음챙김명상의 한계

17. 개산책에서 옷 입은 개를 보고

18. 불패 금강좌

19. 일주일에 하루만큼은 자발적 가난의 삶을

20. 마음챙김과 새김은 어떻게 다른가?

21. 지식인이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면

22. 행복보다 행운을 바라며

23. 방음부스로 치닫는 마음

24.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아서

25. 백권당에 촛불 하나 밝히니

26. 동굴촛불명상

27. 이 지옥을 어서 벗어나자

28.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2025 마야 퀸 페스타

29. 내장산 서래봉 와불을 보며

30. 나마루빠(名色)를 어떻게 볼 것인가?

31. 불교평론 강연회에 참석하고

32. 항상 이익 되는 일을 하고자

33. 진상고객이 되어 마음이 위축되었을 때

34. 빤냣띠(槪念)를 배제하고 빠라맛타(實在)만 보는 방법

35. 내가 평온하기를 내가 고요하기를

36. 눈을 아래로 하여 멍에의 길이만큼

37. 159권 위빠사나수행기 2024

38. 위빠사나 삼매

39. 세속철학은 희론망상

40. 명색구분새김할 때 형성된 위빠사나 찰나삼매

41. 명색구분새김의 위력

42. 욕망이 있어서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

43. 백권당 행선대

44. 뒤로 걷기 행선(行禪)을 해보니

45. 후진행선(後進行禪)의 이익

46. 후진행선(後進行禪) 사흘째

47. ‘마음챙김명상’에 불교가 없는 이유

48. 미천한자의 인생역전

49. 재가우안거 88일째 되는 날에

50. 재가우안거 회향

 

 

165권 재가우안거 2025_251016.pdf
2.66MB

 

 

 

수행기에는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써 놓았다. 불리한 것이나 감추고 싶었던 것도 써 놓았다. 무엇보다 삼매의 상태에서 쓴 것이라는 사실이다.

 

행선이 끝나면 곧바로 글을 썼다. 삼매가 있는 상태에서 쓴 것이다. 노트에는 메모가 잔뜩 되어 있다. 마치 자동기술하는 것처럼 자판을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매일 글을 쓰면 매일매일 새로운 삶이 된다. 왜 그런가? 글은 어느 것 하나 똑 같은 것이 없다. 어제의 글과 오늘의 글은 다르다. 매일매일 새로운 삶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성찰이 있어야 발전한다. 성찰이 없으면 정체되어 있다. 성찰이 없으면 퇴보할 수도 있다. 이런 때 글을 쓰면 향상되는 것 같다.

 

수행은 성찰의 의미도 있다. 남이 보지 않은 곳에서 혼자서 행선을 하거나 좌선하는 것 자체가 성찰이 된다. 수행하면 향상과 성장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재가우안거 장소는 백권당이다. 사무실 반을 칸막이로 막아 수행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생업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수행공간을 만든지 오년 되었다. 이전에는 수행은 명상공간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집중수행처에는 커다란 명상홀이 있다. 사람들은 명상홀에서 행선과 좌선을 한다. 숙소는 단지 잠자는 곳, 휴식 취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수행은 처소에서 하는 것이다.

 

수행은 남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골방에서 하라는 말이 있듯이 수행은 개인처소에서 하는 것이 맞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된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에게 멀리 떨어진 외딴 곳, 숲속이나 빈집이나 동굴에서 수행하라고 했다.

 

부처님 당시에 강당이 있었다. 강당은 문자 그대로 설법하는 곳이다. 개인 처소에서 수행한 사람들이 모여서 부처님 설법을 듣는 장소가 강당인 것이다.

 

수행은 몰래 하는 것이다. 남 눈에 띄지 않게 비밀리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행기도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행기를 남기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수행기를 남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기록한다. 수행이 잘 되지 않으면 “실패했다.”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성과가 있으면 마치 눈에 보이는 듯이 선명하게 기록한다. 수행기를 남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공유하는 것이다. 체험을 나누는 것이다. 어찌 보면 분발하게 하는 요인도 된다.

 

재가우안거 삼년째이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재가우안거를 행했다. 누군가 증명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이유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다.

 

수행기는 블로그에 올려 놓는다. 누구든지 다운 받아 가도록 pdf파일을 만들었다.

 

늦은 나이에 수행을 하고 있다. 세 번의 안거를 보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다. 조금씩이나마 향상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한번뿐인 인생이다. 이 모습 이 성향으로는 현재의 나 밖에 없다. 이전 생에도 없었고 이후 생에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이번 생 한번뿐이어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존재이든지 이번 한생 뿐이다. 이전과 이후는 다른 것이다. 이전의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새로운 명색이 생겨난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존재는 모두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된다. 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가?

 

나는 이번 생에 어떤 성과를 내야 할까? 성자의 흐름에 들면 가장 좋다. 흐름에 들지 못하면 발판이라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쭐라소따빤나(cūasotāpanna), 준수다원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매일 경전과 논서를 읽는다.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어제 저녁 우다나를 읽었는데 “나의 삶도 축복이고 나의 죽음도 축복이다. (bhaddaka me jīvita, bhaddaka maraan)”(Ud.45)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다.

 

수행자에게 삶은 축복이 될 수 있다. 주석에 따르면 “계행 등의 덕성을 갖춘 이 몸이 지속하는 한, 공덕의 밭에서 이익과 행복이 증가함으로 살아 있는 것도 나에게 축복”(UdA.269)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도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이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pañcakkhandha;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이 이 순간에 연료가 꺼진 불처럼 꺼진다면, 다시는 죽지 않는 완전한 열반 도 나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UdA.269)라는 뜻이다.

 

삶이 축복인 것은 복전(福田: puññakkhetta)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쌍팔배, 사향사과의 성자가 되었을 때 그 삶 자체가 축복인 것이다. 죽음이 축복인 것은 열반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아라한이 되어서 죽으면 불사가 되기 때문에 태어남도 없어서 축복인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도를 말한다. 열반에 들어 가지 않고 세세생생 윤회하면서 모든 중생을 남김 없이 열반에 들게 하고 자신은 가장 마지막에 열반에 들겠다는 거창한 서원을 말한다.

 

부처님이 지금 살아 계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아마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고 가르침을 실천하여 열반에 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후대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에 들지 말라고 한다. 열반에 들면 일곱생 이내에 윤회가 끝나기 때문에 보살도를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경전, 니까야를 보면 부처님은 도처에서 열반을 설했다. 정법이 살아 있을 때 열반을 실현하여 윤회를 끝내야 한다. 그럼에도 열반을 유보하고 모두다 보살도를 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법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무엇이 정법인가? 교학(pariyatti)이 있고, 실천(patipatti)이 있고, 증득(pativedha)이 있어야 정법이다. 구체적으로 빠알리삼장이 있고, 팔정도수행이 있고, 열반이 있어야 정법시대인 것이다.

 

열반이 없으면 사향사과의 성자가 출현하지 않는다. 열반이 없으면 팔정도도 없고 빠알리삼장도 없게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라지는 암흑시대가 되는 것이다.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한량없는 암흑의 세월을 살아야 한다. 생사윤회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정법시대에는 정법대로 살아야 한다. 모두다 보살도를 행한다면 열반은 없게 되어서 정법이 사라지는 요인이 된다.

 

보살도는 행해야 한다. 육바라밀이 아니라 십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열반까지 유보하며 남을 구제하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물에 빠진자가 물에 빠진 자를 구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수렁에 빠진 자는 수렁에 빠진 자를 구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진 사람이 다른 진흙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쭌다여, 스스로 진흙에 빠지지 않은 사람만이 참으로 진흙에 빠진 다른 사람을 건져 올린다는 것이 가능하다.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지 않고 수련시키지 않고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쭌다여, 자신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킨 사람만이 참으로 다른 사람을 제어하고 수련시키고 완전히 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M8)라고 말했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에 푹 빠져 있다. 이제야 방향을 잡은 것 같다. 한국마하시선원 일창스님이 건네 준 ‘위빳사나수행방법론’ 등 수많은 법문집을 보고서 마음이 충만해졌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였던 것이다.

 

이제 또 하나의 책이 완성되었다. 책은 블로그에 올려 놓는다. 누구나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글이나 책이 최대한 멀리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글은 검색하면 걸리게 되어 있다. 책은 다운로드 하면 가져 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2025-10-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