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68권 말루꺄뿟따숫따 법문 독후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3. 19:34

 

168권 말루꺄뿟따숫따 법문 독후기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다.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고통이다. 혼자 있는 것이 좋다.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나이 들수록 혼자 있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고립되어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공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공기가 없어져 봐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고요의 고마움을 모른다. 시끄러움 속에서 살아 봐야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이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변화는 있다. 변화가 있어서 견딘다. 마치 똑 같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변화 없는 일상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자극이 있어야 한다. 자극이 없으면 활력을 잃는다. 한마리의 미꾸라지로 인하여 배송되는 물고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자극적인 일로 인하여 일상이 탄력 받는다.

 

지난 시월 지리산에 갔었다. 이박삼일 종주했었다. 걷고 또 걸었다. 새벽부터 어둑해질때까지 너덜길을 걸었다.

 

너덜길 걸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발을 헛딛으면 배낭무게로 인하여 넘어진다. 온통 너덜길 투성이일 때 평탄한 길이 그리워진다.

 

매일 아침 백권당에 간다. 집에서 출발하여 비산사거리를 횡단하여 안양천을 건너가는 코스이다. 계단은 있지만 너덜길은 없다. 평탄길은 그야말로 꽃길이다.

 

인생의 꽃길은 있을까? 너덜길 같은 인생길에서 때로 평탄한 길도 있다. 고요함이 있을 때이다. 사람에 치이여 혼자 있을 때 평탄한 꽃길을 걷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까? 명상하고 글을 쓰는 것이 큰 일이다. 오전에 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생활화되었다. 명상도 거의 생활화되어 가고 있다. 글쓰기는 19년 되었고, 명상은 5년 되었다.

 

명상수행자가 되려면 세상사에서 멀어져야 한다. 뉴스를 피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전달된 메시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피한다.

 

아침에 걸어간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걸어가는 것은 홀로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수행자는 감관을 수호해야 한다. 형상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소리로부터 귀를 보호해야 한다. 홀로 걷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걸을 때는 걷는다고 알아야 한다. 걷는 행위와 이를 아는 마음을 새기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여 볼 때 내가 걷는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사띠와 삼빠자나가 된다.

 

혼자 있어 심심한 사람이 있다. 홀로 있어 외로운 사람도 있다. 이럴 때 외부 대상에 의지한다. 뉴스를 보고 사람을 찾는다.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고 교제를 즐기는 사람이 된다.

 

홀로 있어서 좋은 사람이 있다. 감각적 대상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다. 교제 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 내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다.

 

명상은 혼자 하는 것이다. 내면을 향할 때 함께 들어갈 사람은 없다.

 

명상의 맛을 보아야 한다. 행선이든 좌선이든 삼매가 형성되어서 명상의 맛을 보면 외부 대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편하다. 이럴 때 ‘타인지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책을 읽는 것도 혼자서 읽는다. 글을 쓸 때도 혼자 쓴다. 명상을 할 때도 혼자 한다. 이럴 때는 지루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일이 끝났을 때이다.

 

오전은 청정하게 보낸다. 오후에는 마음이 흐트러진다. 온라인 매체를 접했을 때 영향받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낫다.”(S35.235)라고.

 

사람들은 심심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사람을 만나서 술을 마신다. 감각을 즐기는 삶이다. 그러나 내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면 그 시간에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하고 글을 쓰는 나날이다. 이런 일상에서 책 만드는 것도 있다.

 

글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SNS)에 놀이 삼아 쓰는 글은 지양한다. 한번 쓰고 나면 버려질 글은 쓰지 않는다.

 

세상에 길이 남을 글을 쓰고자 한다. 세상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

 

블로그에 글 쓴지 19년 되었다. 2006년 이후 매일 쓴 것이다. 한번 쓴 글은 버리지 않는다. 블로그에 모두 올려 놓았다.

 

글을 쓸 때 종종 검색한다. 놀랍게도 예전에 썼던 글을 누군가 가져가서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람직한 일이다. 내가 바라던 것이다.

 

인터넷시대를 산지 오래 되었다. 인터넷의 특징은 무엇인가?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또한 공유되는 시대일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는 보고 또한 누군가는 가져 간다.

 

작가는 독자를 의식하며 글을 쓴다. 애써 작성된 글은 책으로 나온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세상에 나왔을 때 글 쓴 보람을 느낄 것이다.

 

블로그에 있는 글은 방대하다. 애써 작성한 글을 하나도 버릴 수 없다. 생명과도 같은 글이다. 글에 시간이 녹아 들어가 있다. 책으로도 만든다.

 

물건은 만들어 놓으면 팔린다. 글도 써 놓으면 읽게 되어 있다. 책도 만들어 놓으면 읽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 부리지 않는다. 단 한사람만이라도 공감하면 할 일 다한 것이다.

 

책을 167권 만들었다. 출판된 것은 아니다. 피디에프(pdf)를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것이다. 누가 읽든 말든 올려 놓는다.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십년전에 쓴 글도 검색만 하면 읽어 볼 수 있다. 피디에프를 올려 놓으면 누군가 다운 받아 갈지 모른다.

 

책을 하나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말루꺄뿟따숫따 법문’ 독후기이다. 제목을 ‘168 말루꺄뿟따숫따 법문 독후기’로 했다. 마하시 사야도 법문집을 읽고서 소감을 적은 것이다. 168번째 책으로 13개의 글이 있고 172페이지이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데

2. 현실직시의 가르침

3. 좋아하면 새김(sati)을 놓치기 쉬워

4. 오늘은 유튜브 없는 첫째날

5. 왜 명색구분새김 해야 하는가?

6. 사띠(正念)와 삼빠자나(正知)의 관계에 대하여

7. 도인(道人)이 새김(sati)을 잃었을 때

8. 부처의 눈과 돼지의 눈

9.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10.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완독

11. 오직 명색(名色)뿐!

12. 마하시전통에서는 왜 복부관찰할까?

13. ‘마음챙김명상’에 불교가 없는 이유

 

 

 

 

말루꺄뿟따숫따 법문은 마하시 사야도가 1976년에 법문한 것이다. 녹취한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일창스님이 번역했다.

 

말루꺄뿟따숫따 법문 한국어판 초판본 발행년도는 2023년이다. 이제 출간된지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다. 관심 있는 극소수만이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은 읽을수록 맛이 난다. 새기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다.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후기를 모아 놓으니 책으로 한권 되었다.

 

마하시 사야도는 평생 백여권의 책을 썼다. 주로 경전과 논서에 근거한 수행에 대한 것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마하시 사야도 법문집은 한국마하시선원에서 가져온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2022년 오월 붓다의 날에 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일창스님으로부터 위빳사나수행방법론 1권과 2권, 아리야와사 법문, 담마짝까 법문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로 받은 법문집을 머리맡에 놓고서 읽었다. 한권 읽을 때마다 몇 개월 걸렸다. 감명받은 구절에 대해서는 후기를 작성했다.

 

후기를 모아 놓으니 책이 되었다. 2024년 10월 카티나법회 때 책을 만들어서 일창스님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일창스님은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말루꺄뿟따숫따법문, 헤마와따숫따 법문을 주었다. 올해 10월 까티나법회 때는 뿌라베다숫따 법문, 마하사띠빳타나숫따 법문을 받아왔다.

 

경전과 논서를 읽는 나날이다. 경전과 논서를 읽다 보니 다른 책은 읽지 못한다. 읽을 맛이 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이다. 수행과 관련된 이야기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글 쓰는 것은 취미가 되었다. 이제 책 만드는 것도 취미가 되었다. 팔리지도 않을 책이다. 그러나 블로그에 피디에프를 올려 놓으면 누군가는 볼지 모른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모두 양서는 아니다. 유명하다고 해서 모두 다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조현 기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휴심정이 있다. 대담한 사람들은 모두 명사이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함량미달도 있다. 부처님 가르침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는 눈 밝은 사람, 귀 밝은 사람도 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고수라 말할 수 있다. 현재의 위치에서 해야 할 바를 묵묵히 하는 사람이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다. 또한 인격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콘텐츠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콘텐츠, 특히 글로 승부해야 한다.

 

나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아 부를 일 없을 것이다. 설령 부른다고 해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콘텐츠로 승부하고자 한다.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오늘 아침 수도권전철 전차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2025-12-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