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69권 진흙속의연꽃 2025 I

담마다사 이병욱 2026. 1. 16. 11:06

 

169권 진흙속의연꽃 2025 I

 

 

매일 아침 하얀 여백을 접한다. 오늘은 무엇을 써 내려 가야 할까? 자판치는 대로 가지만 그래도 생각해 둔 것은 있다.

 

누적의 법칙이 있다. 쌓이고 쌓이면 산을 이루는 것이다. 돈을 은행에 정기적금하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보잘 것 없지만 나중에 가면 엄청나게 축적된다. 더구나 이자까지 붙는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제일 잘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글쓰기이다. 돈은 많이 벌지 못했지만 글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그것은 눈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고 또한 책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글은 그날그날 느낌에 대하여 쓴 것이다. 마치 날씨가 매일 다르듯이 그날의 기분도 매일 다르다.

 

매일 쓴 글의 내용은 같지 않다. 그럼에도 한가지 지향점은 있다. 오래 남는 글이다. 그래서 경전을 근거로 하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고자 한다.

 

삶에는 결실이 있어야 한다. 수행자의 결실은 도와 과로 나타나듯이, 글 쓰는 자의 결실은 책이 될 것이다.

 

수많은 글을 썼다. 2006년부터 썼으니 20년 되었다. 매일 쓰다시피 했다. 계산상으로 7,300개의 글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팔천개가 넘는다.

 

글은 블로그에 잘 보관되어 있다. 검색만 하면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가상 공간에 있는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성과물이 되려면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늘 169번째 책을 만들고자 한다.

 

목차는 만들어져 있다. 사진도 편집되어 있다. 오늘 이렇게 서문만 쓰면 책이 하나 만들어진다.

 

책 제목은 ‘169 진흙속의연꽃 2025 I’이다. 169번째 책으로 2025년 일상에 대한 첫번째 것이다. 기간은 2025년 1월 1일부터 6월 4일까지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목차에는 44개의 글이 있다. 종이사이즈는 B5(17.6X25)이고, 폰트사이즈는 11이다. 분량은 327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올 한해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2. 지난 시절 족적을 보니

3. 모으고 쌓는 삶과 버리고 없애는 삶

4. 불교를 양자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하여

5. 과거가 미래를 구한 12.3결사항전

6.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했는데

7. 승리를 맛본 자의 노빠꾸

8. 수희찬탄공덕

9. 이재명은 안된다고 하는데

10. 호칭유감

11. 배(腹)는 섬(島)같은 피난처

12. 이재명에게서 진정한 용기를

13. 흑염소한마리

14. 내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

15. 광주에서 온 찹쌀밥

16. 열네 번 찔러보기 당했는데

17. 누가 나의 죽음을 기억할까?

18. 그래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19. 한번 맺은 인연 오래 지속되도록

20. 언제나 그 자리에

21. 백권당에 동백나무를 들이니

22. 수행자인 사람과 수행자 아닌 사람

23. 폐지리어카 할머니의 신음소리

24. 이공삼공(20-30)여성들의 2025서울국제불교박람회

25. 미친 자들의 세상에서

26. 소유할 것인가 공유할 것인가?

27. 권리당원 투표권 행사는 정치보국(政治報國)의 실현

28. 대파 세 단에 천원

29. 경전학교 첫날 법인스님의 불교이야기

30. 보시는 아무나 하나?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계절에

31. 나는 언제나 직장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32. 부처님이 우리에게 준 최상의 선물

33. 오늘은 KTX타고 법인스님 만나러 가는 날

34. 나를 위한 최상의 공양

35. 법인스님의 알아차림하며 말하기

36. 건강의 교만

37. 민족해방전사 안재구 평전을 읽고

38. 변방에서 주류로, 2025년 5.18전야제

39. 바람을 거슬러 가는 참사람의 향기

40. 친구 자격으로 김동수 열사 추모제에 참석하고자

41. 다큐영화 ‘시민군 김동수’는 언제 볼 수 있을까?

42. 무위도식할 것인가 불방일정진할 것인가?

42. 무위도식할 것인가 불방일정진할 것인가?

43.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을 , 벼르고 벼른 사전투표

44. 피어라! 억강부약대동세상의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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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쓸 때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다. 죽기살기로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글 쓰는 순간만큼은 가장 청정한 상태가 된다.

 

글과 인격은 일치하지 않는다. 경전에 있는 훌륭한 문구를 인용하여 쓴 글에 대하여 인격도 훌륭할 것이라고 여기면 착각이다. 글은 단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른 것이다. 운전은 해보아야 하고 수영도 해보아야 한다. 아무리 경전적 지식이 요즘 속된 말로 “빠삭하다”라고 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남의 소를 세는 것이나 다름 없다.

 

수많은 경전을 보았다. 사부니까야를 보고 쿳다까니까야에서 번역된 것은 다 보았다. 청정도론과 아비담마과 같은 논서를 보았다. 위빳사나수행방법론과 같은 마하시 사야도의 수많은 법문집을 보았다. 볼 때마다 감탄한다. 한줄한줄이 새록새록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변화는 더디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다. 오온에 집착된 존재, 오취온적 존재로 태어난 이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욕망의 세계, 욕계에 형성된 것이다. 이런 욕계를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을까?

 

부처님 가르침은 욕계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되는 “세상을 싫어하여 사라져서 떠난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염오(닙비다)와 이욕(위라가)이 있어야 해탈(위무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세상이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세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삼천대천세계’를 말하지 않았던가?

 

삼천대천세계는 숫자가 얼마나 될까? 천에 천을 곱하고, 거기에 또 천을 곱하고, 또 거기에 천을 곱한 숫자를 말한다. 이는 십억이 된다. 십억개의 우주가 있음을 말한다. 각자 하나의 세계가 있으므로 이 세상에는 십억개의 세계, 십억개의 우주가 있는 셈이다.

 

세계나 우주는 같은 말이다. 한 사람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는 단순히 사람 그 자체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세계와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세계가 있다. 왜 그 사람이 세계일까?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상윳따니까야 ‘세계의 모음’(S14)이 있다. 각자 형성된 경향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세계에 따라 관계를 맺고 어울린 다.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S14.14)라고 말했다.

 

니까야에서 세계는 빠알리어 다투(dhatu)를 번역한 말이다. 다투는 일반적으로 ‘요소’라고 번역되지만 ‘세계’의 뜻도 있다. 이는 다투가 영어로 ‘[f.] an element; natural condition; a relic; root of a word’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요소’로 번역했다.

 

그 사람이 세계인 것은 그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과도 관계가 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세계를 조건으로 지각이 생겨나고 견해가 생겨나고 사념이 생겨난다.”(S14.13)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이런 각자의 세계가 있다.

 

세계관은 인생관과 다름이 없다. 또한 가치관과 다름이 없다. 이는 타고난 경향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저열한 경향을 타고난 자들은 저열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어울리고,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은 탁월한 경향을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S14.14)라고 했다.

 

나의 세계는 어떠 한가? 과거 전생에서부터 형성된 업으로 인하여 현재의 내가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 이런 성향을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에게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가 있다. 그것은 저열한 경향을 가진 것도 있을 수 있고 탁월한 경향을 가진 것도 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다. 때로 저열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 탁월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내버려 두면 저열한 경향이 우세하게 된 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전을 보고 논서나 법문집을 보는 등 자기계발을 한다면 우상향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완성을 향해 가는 존재이다. 비록 지금 내가 새김을 잃어버려 저열한 경향에 지배되어 있을지라도 어느 날 크게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글쓰기를 하고, 행선이나 좌선을 생활하 하는 것도 보다 높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오늘도 책을 하나 만들었다. 책을 쓰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글을 써 놓으니 책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은 한계가 있다.

 

만든 책은 이론서나 학습서가 아니다. 그저 그날그날 일상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 하나를 대상으로 해서 쓴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중에 써 놓고 보면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책으로 만들어 놓으면 큰 일을 한 것 같다.

 

오늘 169번째 책을 만들었다. 어떤 이는 이런 것에 대하여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의 기록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쓰다 보니, 만들다 보니 169권이 된 것이다.

 

글과 인격은 매칭 되는 것은 아니다. 글에 비하여 인격이 따라가지 못한다. 아마 수행 부족일 것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여기 자만에 가득 찬 자가 있다. 박사학위도 있고 교수로 교단에 선 자이다. 그는 얼마나 많이 알까? 해당 분야에서는 프로페셔널일지는 몰라도 지혜 있는 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만에 가득 찬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자신이 어리석은 자인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음을 알면 그로써 현명한 자가 된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린다.”(Dhp.63)라고 했다.

 

나는 어리석은 자인가 현명한 자인가? 욕망으로 살고 분노와 시기, 질투, 자만으로 산다면 어리석은 자이다. 그럼에도 현명한 자라고 착각한다면 진짜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현명한 자는 자기자신을 잘 아는 자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자신의 무지를 알 때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음을 알면 그로써 현명한 자가 된다. (yo bālo maññati bālya, paṇḍito vāpi tena so)”(Dhp.63)라고 했다.

 

여로모로 부족하다. 나의 무지를 절감한다. 이런 이유로 보다 높은 계학, 보다 높은 정학, 보다 높은 혜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아직 공부가 덜 되어서 늘 욕망이 발목을 잡는다.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가장 청정한 상태가 된다.

 

 

2026-01-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