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백운사에 등 하나 달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1. 5. 23. 06:56

백운사에 등 하나 달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 점심 약속도 약속이다. 하물며 인터넷에서 약속한 것은 그 이상이다. 언젠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백운사에 찾아 가겠다고 글을 썼다. 두세달 된것 같다. 약속 지킬 때가 된 것 같다. 본래 부처님오신날 이전에 찾아보기로 했으나 사흘이 지난 오늘 찾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본래 광주 가는 날이다. 김동수 열사 추모제에 참석해야 하나 코로나로 인하여 전세버스가 취소되고 행사도 축소됐다고 통보받았다. 내년을 기약했다. 그 대신 산행을 하기로 했다. 늘 가는 관악산 계곡이다. 오늘은 가는 길에 꼭 백운사에 들르기로 했다.

 


안양시 비산동에 있는 백운사는 나의 최초의 절이다. 왜 최초인가? 최초로 자발적으로 간 절이기 때문이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 잘 기억 나지 않지만 아마 2002 월드컵 다음 해인 것 같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 보았다.

인생이 꼬인 것 같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책도 읽어 보았다. 약간은 위안이 되었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불교에서 해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도 없고 아는 절도 없었다. 그러다가 늘 다니는 등산길에 절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안양종합운동장 뒤 산기슭에 있는 백운사였다.

어느 날 용기를 내었다. 과감하게 들어 가 본 것이다. 그날 신도들이 모여서 꽃 손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하여 꽃공양 올릴 꽃을 손질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두 여자들만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출현하자 그들은 놀랐던 것 같다. 주지스님에게 절에 다니고 싶어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동네 교회 다니듯이 절에 다니고자 한 것이다. 절박한 심정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어느 중년 여인이 우리 절과 인연 맺으려 오셨네요.”라며 환영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 절박한 심정이 충동질한 것이라고 본다.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을 때이다. 동네 교회 다니듯이 동네에 있는 절에 다니면 되는 줄 알았다.

그때 스님이 두 분 있었다. 모두 비구니 스님이었다. 한분은 주지스님이고 또 한분은 새내기 비구니 스님 같았다. 먼저 부처님 앞에 삼배하라고 했다. 절 할 줄도 몰라서 어색하게 삼배 했다.

 

새내기 스님으로 보이는 이십대 초반의 비구니 스님은 친절했다. 어리둥절 하는 사람에게 말을 건냈다. 생일이 음력으로 12 8일인 것을 알고서 부처님 성도절과 같네요.”라고 말했다.

불교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불교를 접하면 그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그것은 불교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불교학교인 동대부중을 다녔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해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때 당시 김용옥 선생의 금강경을 본 것도 크게 작용했다. 도서관에서 빌어다 놓은 것을 우연히 본 것이다.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불교를 접하기만 하면 분명히 인생의 해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동네 절에 가 보고자 한 것이다.

비산동 백운사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왜 안가게 되었을까? 남자가 없고 여자들만 있는 것이 쑥스러웠던 것 같다. 지장도량으로서 기도위주인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어쨌든 한번으로 끝났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18년이 지났다. 오늘은 꼭 가보고자 했다. 집에서 걸어 갔다. 관악대로를 건너 레미안아파트를 가로 지르면 관악산 둘레길과 연결된다. 주욱 가다 보면 비산3동이 나온다. 안양종합운동장이 있는 곳이다.

 

 

비산3동은 재개발로 인하여 동네가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되었다. 주택과 빌라는 물론 아파트까지 모조리 파괴한 것이다. 그곳도 대규모 단지라 볼 수 있는 삼호아파트까지 철거한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큰 규모의 재개발이 될까?

 

마침내 오늘 백운사 문을 다시 두드렸다. 문이 잠겨져 있었다. 벨을 누르니 스님이 나왔다. 그때 주지스님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등 하나 달려고 왔다고 했다. 문을 열어 주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먼저 법당에 들어가서 삼배를 했다. 불상은 18년 전의 부처님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변함없다면 다시 부처님전에 있게 된 것이다. 마치 타지에서 떠돌던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온 것과 같다.

 

비구니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물어보니 그때 그 주지스님이었다. 하나도 늙어 보이지 않았다. 그때 2003년경에 보았을 때는 꽤 나이 들어 보였다. 이번에는 그다지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스님은 지금 66세라고 했다. 우리나라 나이로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40대였을 것이다.

스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이십대 젊은 비구니 스님은 광주에 산다고 했다. 동국대에서 올해 박사학위를 받고 광주에서 유치원 원장으로 있다고 했다. 물론 절도 있다고 한다. 지금 나이가 45세이니 2003년에는 20대였던 것이다. 5살 때 부터 주지스님과 함께 했다고 한다. 주지스님에게는 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주지스님에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았다. 2003년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천일기도 중이었다. 가람 불사에 대한 것이다. 절이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서 이를 해제하기 위한 천일기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천일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오늘날까지 변함이 없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주택과 같은 절이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법당이라 하여 한칸이 늘어난 것과 3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스님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스님이 이곳 안양 비산동 깊숙한 곳까지 오게 된 것은 병 때문이라고 했다. 1985년 이곳에 와서 내리 36년 있게 되었다고 한다. 스님이 동국대 경주 일문과를 졸업하고 나서 부터라고 했다. 일문과를 가게 된 것은 일본에 유학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교학이 발달한 일본에서 공부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헌혈하게 되었는데 건강이 악화되어서 수행처로 삼은 곳이 이곳이라고 했다.

 


백운사는 행정구역상 비산3동에 있다. 안양종합운동장 뒤에 있다. 본래 어느 비구니 스님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그린벨트 안에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산 것이다. 이후 현재 주지 스님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린벨트에다 공원용지로 묶여 있어서 불사를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법한 가람을 갖기 위한 불사를 했는데 아직까지 실현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과는 있었다고 한다. 절이 있는 땅과 주변 땅을 사들여서 천평이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사이에 공원용지에서 해제되어 이제 여법한 가람만 지으면 되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부에서 갑자기 토지 수용을 하겠다고 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토가 가능하다고 것이다. 종교용지로 땅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2년 동안 지지부진해서 진전이 없다고 한다. 결국 불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백운사는 조계종 소속이 아니다. 보문종 소속이다. 스님은 어렸을 때 부터 성북구에 있는 보문사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보문종 소속이 된 것 같다.

이번에도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다. 18년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과 그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때였지만 지금은 불교계에서 넘버원 블로거가 되었다. 조회수로 따졌을 때 누적조회수가 750만명을 능가하는 블로그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2003년에는 쭈뼛쭈뼛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랜만에 만난 주지스님과 이런말 저런말 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도 물어보고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다.

 

스님은 20대 때 안양에 와서 이제 안양에 뿌리내렸다. 그러나 국토부 토지수용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안양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백운사는 어떻게 될까? 여법한 가람으로 거듭날 것인가 아니면 사라질 것인가?

 


등을 하나 달았다. 가족등이다. 소원을 써야한다. 그렇다고 통속적인 사대소원을 쓸 수 없다. 한때 등을 달 때 한국불교 발전를 위하여라며 만용을 부려 보기도 했다. 이번에는 좀더 진지해지기로 했다. 그래서 법구경에 있는 아유 완노 수캉 발랑”(Dhp.109)이라는 문구를 생각했다. 그래서 스님에게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이라는 문구를 꼬리표에 써 달라고 했다. 세상에 이만한 발원이 있을까?

오늘 약속을 지켰다. 에스엔에스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선언한 것도 약속이다. 언젠가 한번 찾아가 보아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되었다. 약속도 지키고, 스님도 보고, 등도 달아서 일석삼조가 되었다.

스님은 배웅하면서 다시 올 것을 요청했다. 백운사가 여법한 가람을 갖기를 기대해 본다. 안양 한쪽 외진 곳에서도 불교가 있었다. 가르침이 오래 지속되기를!


2021-05-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