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6. 30. 07:54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말한다. 인식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르게 분별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접하고 있는 세상은 나의 여섯 가지 감각영역에 따른 것이다. 눈이 있어서 세계를 보고 귀가 있어서 세계를 듣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눈이 있어서 세계가 열리고 귀가 있어서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한순간에 두 개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의 경우 시각대상과 만나면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래서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M148) 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생겨나는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시각의식으로 생겨난 세계도 청각의식이 생겨나면 붕괴된다. 이렇게 본다면 매순간 세계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있다.

 

세 가지 세상이 있다. 중생계, 현상계, 조건계를 말한다. 부처님이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S22.94)고 했다. 이 때 세상은 삿따로까(Sattaloka), 즉 중생계를 말한다. 어떤 중생계인가? 이는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S22.94) 라는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세상은 엄연히 존재한다. 나도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세상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런 세상을 짝까발라로까(Cakkavālaloka), 즉 현상계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 산천초목 산하대지가 있는 기세간(
器世間)을 말한다.

세상은 중생계와 현상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도 있다.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상카라로까(Sa
khāraloka), 즉 조건계라고 말한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이 만나서 생겨난 세상이다. 부처님은 이런 세상을 일체(sabbe)라고 했다.

부처님은 세 가지 세상 중에서 조건계를 설했다.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말한다. 이를 일체라고 한다. 그래서 일체란 무엇인가? 시각과 형상,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바로 일체라고 한다.”(M35.23) 라고 했다.

우리는 매순간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일체 세상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신 일체는 바로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5, 12, 18계의 세상을 말한다.

보름달을 바라볼 때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어떤 이는 보름달을 보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떠 올린다. 또 어떤 사람은 쓰리고 아픈 기억이 생각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커다란 빵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같은 대상을 놓고 천차만별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상에 대하여 인식하는 것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분별하기 때문이다. 삼사화합촉에 따른 분별의식이 생겨나서 달리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천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는 것이다.

달은 하나이다. 물에 비친 달은 천개, 만개가 되는 것은 인식하는 마음, 즉 분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각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청각도 있고 후각도 있다. 그래서 6내입처 6가지와 6외입처 6가지, 그리고 6가지 분별의식을 모두 합하여 18계라 한다. 이들 모두가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5, 12, 18계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각자 세싱을 보는 눈이 다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같은 보름달이라도 느낌에 따라 다르다. 같은 초록이라 해도 전방의 초록은 군대생활을 연상케 한다. 간호사의 흰 가운은 주사를 연상케 한다. 분별되고 조작된 형태로 마음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대상에 속지 말아야 한다. 같은 물을 보아도 아귀가 보면 피고름이고, 천신이 보면 금은보석이라고 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달리 보는 것은 마음이 대상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만들어낸 형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있는 그대로 볼 것을 말씀하셨다.

살아 가면서 보거나 듣는다. 보기 싫어도 보아야 하고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한다. 눈이 있는 한 보지 않을 수 없고, 귀가 있는 한 듣지 않을 수 없다. 이때 강한 대상에 대해서는분별심이 일어난다. 그것은 좋거나 싫은 것에 대한 것이다.

좋으면죽어라좋아하고, 싫으면죽어라싫어한다. 대상은 그대로이지만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호불호가 명백히 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마음이 대상을 조작하고 자기가 만들어낸 형상을 즐기는 것이다. 이는 자아에 기반한다.

모든 것을 독립적인 실체로 보았을 때 자아관념이 생겨난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시각을 예로 들어누군가시각이 자아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M148) 라 했다. 여기서 자아를 뜻하는 빠알리어는앗따(attā)’이다. 앗따라는 말이 자아를 뜻하긴 하지만 여기서는실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시각이라는 독립된 실체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마음의 영역에 있는 시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 지어진 것이다.

마음의 영역 안에 있는 시각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고 했다. 만일 독립된 실체라면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각영역에 대하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누군가시각이 자아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그 시각의 생성과 소멸이 시설된다. 그 생성과 소멸이 시설되기 때문에, ‘나의 자아가 생성되고 소멸된다.’라는 생각이 그에게 따라온다. 그러므로 누군가시각이 자아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시각은 자아가 아니다.”(M148)


눈에 보이는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각으로 생겨난 것은 생성과 소멸이 있기 때문에 나의 것이 아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시각의식, 시각접촉, 느낌, 갈애 역시 조건에 따라 생성과 소멸이 있기 때문에 실체가 없어서 나의 것도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니다.

부처님은 있는 그대로 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의 영역 안에 있는 보름달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각과 형상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시각을 조건으로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나서, 이 세 가지가 만나는 것이 접촉인데, 접촉을 조건으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생겨난다. 그 즐거운 느낌에 닿아 그것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탐착하면, 탐욕에 대한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게 된다. 그 괴로운 느낌에 닿아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비탄해하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미혹에 빠지면, 분노의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게 된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 닿아 그 느낌의 생성과 소멸과 유혹과 위험과 그것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지 못하면, 무명의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게 된다.”(M148)


느낌단계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잠재적 경향이 잠재하게 된다고 했다. 느낌에 대한 호불호와 쾌불쾌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잠재되어 있는 성향과 결합하여 갈애가 일어남을 말한다. 이는 다름아닌 연기의 회전이다.

연기가 회전되면 괴로움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12연기 정형구를 보면 말미에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의 뜻이다. 느낌단계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 삶은 항상 기승전고(괴로움)’가 된다.

부처님은 늘있는 그대로(yathābhūta)’ 볼 것을 말씀하셨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현상에 대하여 독립된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온에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본다는 것이다.

 

이 몸과 마음 밖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몸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5, 12, 18계의 세상에서 발생되는 현상에 대하여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함을 말한다.

사람들 마음 속에는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다. 이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괴로움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했다.


2021-06-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