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사판승들에게 결혼을 허(許)하라

담마다사 이병욱 2017. 9. 27. 10:58


사판승들에게 결혼을 허()하라

 

 

작년 광화문촛불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대통령은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은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했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패러디 되어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그런데 승가에서도 똑같이 패러디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럴려고 스님했나?”라고.

 

설정캠프 면면을 보니

 

설정캠프의 면면이 공개되었습니다. 조계종 35대 총무원장 후보로 선정된 설정스님 캠프에서 활동하게 될 스님들입니다. 면면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5대 총무원장 후보 설정스님 선거대책본부 명단

 

■지도위원 : 일면·육문(공동위원장) 성문, 관우, 대원, 도공, 도서, 도진, 도호, 밀본, 범여, 법우, 법현, 산홍, 원택, 원행, 인묵, 장윤, 정만, 정수, 정여, 정우, 종성, 종열, 지만, 지운, 지원, 철안, 현문(이상 위원)
■선대위원장 : 금곡, 등운, 범해, 자현, 묘주
■홍보기획단 : 정만(단장), 혜일(수석대변인), 성화, 성행, 원명, 환적(이상 대변인)
■종책본부 : 금곡(본부장), 장명·심우(공동 수석부본부장), 일감(부본부장)
■전략기획본부 : 각림, 정인, 제민, 함결
■법률자문 : 만당(본부장)
■선대위원 : 각림, 덕조, 도룡, 도성, 도신, 도현, 동산, 마가, 만당, 법원(), 법원(), 삼조, 삼혜, 선일, 설도, 성무, 성효, 성행, 성화, 수암, 승석, 심우, 연광, 우봉, 원명, 일감, 일화, 장명, 정덕, 정범, 정수, 정오, 정인, 제민, 종민, 주경, 지거, 지오, 지원, 진각, 태효, 함결, 항명, 환적, 혜일, 제용(), 혜성()
■사무처 : 종민(처장), 성화, 법원()
■기 획 : 법원(), 지거, 진각
■총 무 : 도현, 덕조, 선일, 성무
■재 무 : 정덕, 일화
■조 직 : 도룡, 마가, 설도, 승석, 정수, 지오
■의 전 : 도성, 도신, 동산, 삼조, 삼혜, 수암, 우봉, 정범
■실행위원 : 성효(단장), 연광, 정오, 지원
■호법단 : 태효(단장)
■상황실 : 원명, 성행, 환적, 항명

 


 

수 십명에 달하는 사람들 중에 재가불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구니스님은 극소수입니다. 비구의, 비구에 의한, 비구를 위한 선거캠프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재가불자와 비구니승에 대한 공약은 없거나 매우 취약합니다. 참고로 제 35대 총무원장선거에 임하는 설정스님의 공약을 보면 “△교구의 활성화대중공의에 기초한 종단쇄신승가교육체계 확립시대에 맞는 포교시스템 정비를 제시했다. “△승가복지 실질화전통사찰을 비롯한 문화재 보존 정책의 획기적 변화불교 위상의 재정립당당한 대정부 관계 확립 등을 이뤄내겠다.”(불교신문)라 되어 있습니다. 설정스님의 공약을 보면 그들만의 리그를 더욱더 공고히 하겠다는 발상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망가진 것은 스님들이 돈을 만지기 때문입니다. 스님으로서 해서는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돈을 만지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승가공동체가 무너진 것도 스님들이 돈을 만졌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이 돈을 만지다 보니 감각적 쾌락으로 빠져 들게 되었고, 돈을 축적한 자들은 세력화 하여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였습니다. 한번 쟁취한 기득권과 권력을 천년만년 유지하려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금과 은을 허용할 수 있다면

 

한국불교가 돈에서 자유로우려면 스님들이 돈을 만져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돈을 만져야 하는가? 당연히 재가전문가들이 돈을 다루어야 합니다. 잘 교육받고 잘 훈련된 재가의 인재들이 교단과 사찰의 운영과 관리를 맡아야 합니다. 스님들은 본래 출가목적대로 수행과 교화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스님들은 호주머니에 돈이 있다보니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이익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승려의 타락입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돈을 만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상윳따니까 마니쭐라까의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누군가 금과 은을 허용할 수 있다면 그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도 허용할 수 있습니다.(S42.10)라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그를 수행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거나 싸끼야의 아들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고 확실히 여겨도 좋습니다.(S42.10)라 했습니다. 금과 은을 받는 자는 부처님제자가 아님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돈을 만지는 자는 스님이라 볼 수 없습니다.

 

스님들이 돈을 만지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음란한 생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금과 은을 지닌다면 오욕락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부처님이 이미 이천오백년전에 경고한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설정캠프의 공약을 보면 재정에 대한 출재가의 역할분담론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대로 죽 가겠다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스님들은 이 기득권이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돈이 되는 목 좋은 사찰을 차지하고 있는 스님들은 이 좋은 기회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입니다.

 

그 밥에 그 나물?

 

설정캠프 면면을 보면 익숙한 법명이 많습니다. 대체로 지난 자승종권 8년동안 한자리씩 차지한 스님들이라 봅니다. 종회의원을 지내고 총무원 등 종무기관에서 책임자로 일한 스님들입니다. 어떤 스님들은 돌아가면서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회전문인사, 도돌이표인사, 돌려막기인사라 할 것입니다. 속된말로 그 밥에 그 나물입니다. 늘 양지만 쫓아 다니는 전형적인 해바라기성 스님들입니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양지에 붙었습니다. 선거에 이기면 전리품 챙기듯이 한자리씩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현대판 카스트

 

총무원 등 종무기관은 행정직입니다. 행정직은 재가전문가들이 해도 충분합니다. 오히려 스님들 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잘 교육받고 잘 훈련 받은 재가의 인재들을 잘 활용하면 한국불교는 몇 단계 도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정직이자 서비스직에 불과한 높은 자리는 스님들이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재가불자는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어느 한계 이상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카스트라 볼 수 있습니다.

 

총무원은 재가전문가에게

 

총무원은 재가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승단을 대표하는 최고의 자리는 종정입니다. 그러나 행정을 총괄하는 총무원장이 꼭 스님이어야 할 만한 이유는 없습니다. 행정에 관한 일이라면 재가전문가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님들이 모든 것이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력과 세력이 있는 일부 비구승이 종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이 출가의 목적이라 볼 수 있을까요?

 

스님이 되려고 출가 했을 때 초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신마져도 버리고 머리를 깍았을 때 다짐을 말합니다. 그런데 행정과 서비스직에 불과한 총무원장자리와 종무기관에 스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재가자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에 스님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갓쓰고 양복입은 것처럼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스님을 스님자리로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 스님들은 본래 출가의 목적에 맞게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총무원을 재가전문가에 맡겨야 합니다. 스님은 스님답게, 재가자는 재가자 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들이 그 자리를 꼭 차지하고야 말겠다고 한다면 재가불자임을 선언해야 합니다. 머리깍고 회색승복 입은 재가법사를 말합니다.

 

사판승을 모두 법사승으로

 

5차 보신각촛불법회에서 원인스님은 제도개혁을 역설했습니다. 스님에 따르면수행승은 오로지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재정 관리는 법사들에게 맡기면 된다계율을 지키지 못할 사람들은 법사승이 되면  이라며 제도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사판승을 모두 법사승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법사승이 되면 결혼도 할 수 있고 가정도 꾸릴 수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 목사와 같은 개념입니다. 일종의 재가불교불교성직자입니다. 법사승은 총무원이나 종무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판스님들이 대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스님처럼 보이지만 결혼을 허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재가불자라 볼 수 있습니다. 반승반속(半僧半俗)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불교성직자 개념을 도입해야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독신으로 살고 개신교 목사는 가정을 이루고 살아 갑니다. 같은 성직자라도 역할이 다릅니다. 불교에도 불교성직자 개념을 도입해야 합니다. 오로지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하는 독신비구승과 행정에만 전념하는 법사승입니다. 법사승은 원인스님 주장대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결혼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총무원 등 종무기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판승은 목사처럼 불교성직자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결혼을 허용해야 합니다. 처자식을 부양하며 성직을 수행하는 법사승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에는 오로지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하는 독신비구승과 교단이나 사찰에서 행정에 전념하며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법사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법사승은 일종의 재가불교성직자입니다.

 

모든 사판승들에게 결혼을 허()하라!

 

설정캠프에 있는 스님들 면면을 보면 이전 자승종권에서 한자리씩 차지 했던 스님들이 대부분입니다. 일종의 사판승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또 다시 전면에 나섰습니다. 어찌 보면 양지만 쫓아 다니는 스님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수행과 교화라는 본래 출가목적은 온데 간데 없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갓쓰고 양복입은 것처럼 영 어색하기만 합니다. 이들에게 법사의 지위를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

 

스님과 재가의 중간에 있다면 반승반속이라 할 것입니다. 스님도 아니고 재가불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반승반속은 일반적으로 재가불자에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총무원등 종무기관에서일하는 스님들은 반승반속입니다. 누군가 내가 이럴려고 출가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출가의 목적에 반하여 사판승으로만 살아 가려 한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반승반속의 사판승들에게도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결혼을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판승들에게 결혼을 허()하라!

 

 

2017-09-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