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16. 10:11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시대의 언어가 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만 통용되는 속어를 말한다. 후대 사람들이 문학작품 등에서 보았을 때 생소할 것이다. 당근이라는 말이 그렇다.

 

흔히 당근이지또는 당근이라는 말을 한다. 피시(PC)통신 시대에 유행하던 말이라고 한다. 당연하고 근거 있는 말이라는 뜻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당연하지당그이지라는 뜻이다. 피시통신시대에 다른 지방으로 펴져서 "당근이지"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줄여서 "당근!"이라고 말한다.

 

딩근마켓이 있다. 온라인 중고 쇼핑몰이다. 특징은 동네 중고 직거래 마트라는 사실이다. 중고품을 올리면 채팅하여 구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공공장소에서 일대일로 만나 물건을 사고판다. 이번에 구입한 책도 그랬다.

 

당근마켓을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에서 페친의 글을 접하고 나서 부터이다. 생활속의 중고 직거래 장터 이야기를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당근마켓에서 종종 필요한 것을 구매했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앱이 있었다.

 

당근마켓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놓았다. 생활속의 갖가지 중고품이 올려져 있다. 주로 옷에 대한 것이 많다. 어제 들어가 보니 책이 눈에 띄었다. 관심 있는 분야이다. 책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다.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수년전에 오디오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도서관에 파일이 올려져 있어서 들은 것이다. 여성성우가 나래이션하고 또 다른 성우들이 역할분담하여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치 라디오시대에 연속극을 듣는 것 같았다.

 

오디오북을 듣고 크게 감명받았다. 책을 읽고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서 감명 받은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은 또 들었다. 감명받은 것을 글로 쓰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필요한 부분을 다시 듣게 됐다. 또 필요한 부분을 별도로 녹취했다. 이렇게 해서 몇 개의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박완서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에서 살았던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당시 1.4후퇴 때인 스무살 때까지 기록인 것이다.

 

소설에서 감명을 받은 몇 개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작가의 유년시절 저녁노을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 서쪽하늘을 벌겋게 달군 장엄한 일몰을 보고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 울음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이 있다. 유년시절은 순수의 시절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 이 세상을 몰라서 때묻지 않은 시기이다. 언어적 표현은 가능한 시기이지만 초보적 단계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언어로 인한 마음의 오염이 거의 없는 시기에 해당된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이 경이롭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처음 보는 것은 매우 강렬하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유년시절 시정에서 또래들과 본 비행물체가 그렇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동쪽하늘에서 낮게 떠 가는 서너대의 커다란 물체가 있었다. 날개가 달린 커다란 쇠붙이가 날아 갔을 때 "저건 뭐지?"라는 의문과 함께 두려움이 일 났다.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커다란 괴물체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고막이 찢어질듯한 굉음에 역시 두려움을 느꼈다. 지금도 형체와 소리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경이로 바뀌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비행기였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프로펠러가 달린 군용 수송기였다. 실물로 확인하니 C123기종이었다.

 

유년시절 시골에서 트럭을 처음 보았을 때도 경이로웠다.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무엇이든지 경이로웠다. 초등학교 1학년 말에 도시로 이사갔었는데 그때 전구를 처음 보았다. 침침한 등잔불만 보다가 방전체를 구석구석 남김없이 비추는 전기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세상물정 모르던 유년시절은 경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서서히 경이는 깨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지식이 쌓일수록 새로움은 사라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타락하는 것 같았다. 아마 그 시점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것 같다. 무언가 분별할 줄 아는 정도가 되었을 때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었다. 아는 것이 많아 질수록, 세상물정을 알 수록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변성기가 되었을 때는 다시는 순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종종 순수의 시대를 생각한다. 시골에서 유년기의 짧은 시절을 말한다. 서너살 기억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시골을 떠난 초등학교 1학년 때 까지를 나름대로 순수의 시대라고 보고 있다. 불과 3-4년 정도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 짧은 시기를 잊지 못하고 있다. 가장 행복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왜 순수의 시대인가? 선입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본 것이다. 당연히 사람에 대한 호불호와 쾌불쾌도 있을 수 없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 세상이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점차 괴로움도 늘어 나는 것 같았다. 지식이 생겨날수록 비례하여 괴로움도 커져 갔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였던 같다. 세상이 너무 괴롭다고 느껴졌다. 현실의 삶이 어려웠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유년시절 순수의 시대를 떠 올렸다.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을까?”라고.

 

박완서 작가는 소설에서 유년시절에 저녁노을을 보고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작가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앞으로 전개될 험난한 운명에 대한 눈물로 본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울면서 나온다. 이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아는 울음으로 볼 수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에서 갑순이는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갑돌이를 그리워하는 눈물일까? 앞으로 운명적 삶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영화 박하사탕은 시간역행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 말미에 주인공은 청년의 모습이다. 터널로 들어가는 철로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앞으로 전개될 운명적 삶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작가의 유년시절 울음도 그런 맥락으로 보았다.

 

작가는 유년시절 저녁노을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작가의 운명적 삶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았다. 소설을 보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운명적 삶이 묘사되어 있다. 이런 생각을 블로그에 써 놓았었다. 그러나 최근 칸트의 숭고에 대한 것을 보고서 달리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인지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 이에 해당된다. 해외여행 가서 스펙터클한 자연을 접했을 때 경이롭다. 그런데 경이로운 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숭고해 보인다는 것이다. 상상력 밖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보는 꽃은 아름답다. 작년에도 보았고 그 이전에도 보았던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말하지 경이롭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전 처음보는 스펙터클한 자연경관을 접했을 때는 사정은 달라진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경이롭기까지 한 것이다. 때로 신비하기 까지도 하다. 이는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 경이롭다. 허블 망원경으로 촬영된 우주사진을 보면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공존한다. 한번도 본 적도 없고 한번도 겪어 보지 않은 거대한 것을 접했을 때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일어난다.

 

유년시절 이른 아침에 해를 보았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또래들과 해맞이를 한 것이다. 동쪽 구릉에서 떠 오르는 해는 찬란했다. 눈이 부셔서 눈을 비비며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눈물 때문일지 모른다고 기억을 왜곡해 보기도 한다.

 

매일 보는 해였지만 그날 본 해는 장엄했다. 초록의 온 대지가 빛나 보였다. 찬란한 햇살에 온 대지가 축복에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이를 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말로 숭고이다.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일지만 이내 전율과 감동과 환희로 바뀌는 경외감을 말한다.

 

당근마켓에서 박완서 작가의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3천원에 샀다. 책의 상태는 새책처럼 깨끗하다. 책은 1992년에 최초로 발간되었지만 출간연도를 보니 2012년 판이다. 대충 그 무렵 오디오북으로 들은 것 같다.

 

책을 판 사람은 박완서 작가와 인연이 있었다. 당근마켓에 이런 글을 올려 놓았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죠.

유년시절부터 일제강점기 말과 해방을거쳐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섬세한 필력으로 그려낸 책이지요.

싱아의 맛이 궁금하시죠~

시끔하고도 살짝 단맛이 곁들여져있다는걸로 기억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글을 좋아해서 이분 작품은 거의 읽었는데 의왕에 있는 성라자로마을에서 처음뵙을때가 엊그제같습니다.

20년이 지난일인데 말이죠.

 

라자로돕기후원회원이신 작가님이 신부님 영명축일 축하차오셨을때 전 봉사자 신분으로 뵈었을뿐이구요^^

 

이분의 글은 인간내면 깊숙한 치부까지도 솔직담백하게 담아내는 심리묘사에 감탄하게 하죠.

 

죄송하게도 책 값을 저렴하게 양도합니다.”

 

 

 

책을 판 사람은 봉사활동하다 박완서 작가를 만났다고 했다. 싱아가 어떤 맛인지에 대해서도 써 놓았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했다. 유년기에 대한 언급이 많아서 성장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책을 내 놓은 사람과 당근마켓에서 채팅을 했다. 그리고 약속장소를 정했다. 마치 접선하듯이 만나 교환했다. 초면에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책 주인은 박완서 작가 좋아하시죠?”라고 물었다. 이에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블로거라는 말을 빼먹었다. 혹시라도 소설가나 시인으로 오해할지 모르겠다. 글 쓰면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책이 되었다.

 

박완서 작가를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작가의 사위를 만난 적은 있다. 김광하선생이 바로 그분이다.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음식봉사할 때 만났다. 그리고 테라가타 출간회 때 만났다. 그때 공동 편집위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광하선생은 전재성선생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고 교정편집자이다.

 

 

김광하선생이 주도하는 봉사단체 작은손길에서 두 달 봉사활동했다. 노숙자봉사 회향할 때 부인이 왔었는데 그분은 박완서 작가의 세째딸이었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의 내용이다. 유년시절 순수의 시대에 대한 기록이다.

 

오디오북으로 들었지만 들을 때뿐이다. 남아 있지 않다. 블로그에 후기로 남아 있을 뿐이다. 후기 쓸 때 녹취하면서 썼다. 이제 책이 생겼으니 언제든지 열어 볼 수 있다.

 

 

오디오북도 좋지만 단행본으로 된 책만 못하다. 인터넷으로 보는 것 보다 종이책으로 보는 것이 더 낫다. 우연히 당근마켓에 들어 갔다가 횡재했다.

 

 

2020-07-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