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세상을 잘 아시는 분, 세간해(世間解)와 상카라(行)의 세상

담마다사 이병욱 2010. 9. 14. 20:53

 

세상을 잘 아시는 분, 세간해(世間解)와 상카라()의 세상

 

 

 

스티븐 호킹박사의 최근 발언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우주는 중력과 같은 물리법칙이 존재하므로, 우주는 무로부터 스스로 창조 될 수 있으며, 창조 될 것이라 한다. 이 말은 우주를 창조하는 신이 따로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킹박사의 발언은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을, 불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었다.

 

 

 

Big Bang

사진  http://pincel3d.deviantart.com/art/Big-Bang-Theory-91300874

 

 

 

쓸모 없는 이야기

 

불교와 과학이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부처님은 우주의 생성의 원리나 소멸에 대하여 말씀 하지 않으셨다. 그런 질문이 있으면 침묵으로 답변하셨다. 왜냐하면 쓸모 없기 때문이다. 만동자(Malunkyaputta)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우주는 영원한가, 영원치 않은가? 등등(열 가지 견해;十無記)을 설명하지 않았다. 말룽꺄뿟따야, 왜 나는 그것을 설명치 않았는가?그것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정신적인, 거룩한 삶에 근원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더러움에 대한〕혐오와  〔집착을〕여읨, 〔둑카()의〕그침,  평안, 〔지혜를〕깊이 꿰뚫음, 완전한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네게 그것들을 말하지 않은 이유이다.

 

 

부처님은 우주에 대하여 설명하지 않은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주를 설명하는 대신에 지금 당면하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말씀 하셨고,  고통의 일어남, 고통의 소멸, 고통의 소멸을 그치도록 인도하는 길을 설명하였는데 그 것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전지하지만 전능하지 않은

 

부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다. 이 세상 이치 뿐만 아니라 저 너머에 있는 우주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이라서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운다.  이를 한자어로 세간해(世間解)’라고 하고, 빠알리어로는 로까위두(Lokavidu)’라 한다.

 

부처님은 모든 방면에 대하여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인데, 그렇다고 해서 전능한 분은 아니다. 만일 부처님이 전능한 존재라면 이 우주도 창조 하였을 것이고, 모든 이들의 소원도 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형성된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연기법칙을 아신 것이다.

 

연기법칙은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에도 있었다. 다만 부처님이 출현하기 전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다. 부처님이 통찰지로서 그 사실을 보고 깨달으셨을 뿐 없는 것을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요소는 항상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가지 세상이 있는데

 

부처님의 별칭이 세상을 잘 아시는 분인데 그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또 그런 세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부처님이 세상을 잘 안다는 뜻은 우주와 같은 거시적인 세계를 잘 안다기 보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잘 안다는 뜻이다. , 법이 고유성질에 따라, 일어남에 따라, 소멸에 따라, 소멸에 이르는 방법에 따라 모든 방면에서 세상을 아셨고, 경험하셨고, 통찰 하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아신 세상은 정신과 물질을 가진 이 한 몸안에 세상이 있고, 세상이 일어나고, 세상의 소멸이 있고, 세상의 소멸로 인도 하는 도 닦음이 있음을 아신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세가지 세상이 있다고 한다. 상카라()의 세상과 중생의 세상, 공간의 세상을 말한다. 이 세가지 세상을 다 아시는 분이 부처님이다.

 

상카라()의 세상

 

상카라의 세상은 법이 고유의 성질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세상이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상카라의 세상

 

세 상

  

  

1

하나의 세상

모든 중생은 음식으로 생존

 

2

두 가지 세상

정신과 물질

 

3

세 가지 세상

세가지 느낌

 

4

네 가지 세상

네 가지 음식

 

5

다섯 가지 세상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가지 무더기

5(五蘊)

6

여섯 가지 세상

여섯가지 안의 감각장소

6내입(眼耳鼻舌身意)

7

일곱 가지 세상

일곱가지 알음알이의 거주

 

8

여덟 가지 세상

여덟가지 세간법

획득, 손실, 명성, 오명, 비난, 칭찬, 행복, 고통

9

아홉 가지 세상

아홉가지 중생의 거처

 

10

열 가지 세상

열가지 장소

 

11

열두 가지 세상

열두가지 감각장소

12

12

열여덟 가지 세상

열여덟 가지 요소

18

 

출처; 청정도론

 

 

 

이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중생의 세상

 

세상은 영원하다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등과 같은 사변적이고 비현실적인 문제와 형이상학적 질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것이 중생의 세상이다. 따라서 부처님이 중생의 세상을 안다고 한 것은 모든 중생들의 습성과 잠재성향, 행위, 결심등 중생들의 생각하는 바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공간의 세상

 

또 하나의 세상이 있는데 그것은 공간으로서 세상이다. 부처님은 또한 중생의 세상을 아는 것처럼 공간의 모든 방면을 다 아신다. 부처님이 아는 공간의 세상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표현 된다.

 

 

달과 해가 운행하여

사방을 비추고 빛나는 한

천 개나 되는 세상, 그 곳까지도

그대의 지배력은 미칠 것이다.”

(M.i.328)

 

 

흔히 말하는 삼천대천세계를 모조리 샅샅히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런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 져 있을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불교의 우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하나의 우주(cakkavala, 輪圍山)는 종횡으로 12백만345십 유순(yojana)이다.

 

 

여기에서 유순은 요자나(yojana)를 음역한 것인데, 이는 소에 멍에를 메워 쉬지 않고 한번에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대략 11Km로 본다.

 

이와 같은 우주에 수미산(Sineru, Sk.Sumeru)이 있다. 수미산은 대해속에 84천 유순이나 잠겨 있고, 그 만큼 수면위로 솟아 있다. 이 수미산의 절반크기인 유간다라(4만유순), 이사다라(2만유순), 까라위까(만유순), 수닷사나(5천유순), 네미다라, 위나따까, 앗사깐나의 큰 산맥 중심이 같은 이 일곱의 큰 산들이 수미산을 에워싼다. 달리 표현 하면 이 일곱의 산들이 차례대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각각 에워 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염부제(閻浮提) 라 하는데 이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 세계를 동서남북, 4개의 주로 나누고 그 중에서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남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여 남염부제라고 한다

 

 

 

 수미산

사진 ; http://zh.wikipedia.org/zh-tw/File:Shumisen.jpg

 

 

 

불교TV의 불교과학프로그램

 

불교TV를 보면 특이한 프로가 있다. 이른 바 불교과학프로그램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뇌와 생각의 출현’ ‘천문학자 우주에서 붓다를 찾다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불교와 과학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가 돋 보인다.

 

미시적으로는 반야심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현대물리학에서 원자이론으로 설명을 시도 하려는 것이라든가, 거시적으로는 법성게의 ‘일중일체(一中一切) 다중일(多中一), 일즉일체(一卽一切) 다즉일(多卽一), 일미진중(一微塵中) 함시방(含十方), 일체진중(一切塵中) 역여시(亦如是), 무량원겁(無量遠劫) 즉일념(卽一念), 일념즉시(一念卽是) 무량겁(無量劫)’ 을 우주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 같은 것이다. 주로 대승경전에 있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불교이론을 과학과 접목시켜 불교가 매우 과학적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으나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현재 당면한 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이다. 만동자 이야기에서와 같이 우주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등과 같은 10가지 물음은 쓸데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은 침묵으로 답을 하였을 뿐 만 아니라 독화살의 비유로 멋지게 설명하였다.

 

무수히 화살을 맞으며

 

사람들은 매일 화살을 맞고 있다. 그 것도 한 방 만 맞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을 맞고 있다. 먼저육체적 화살이라는 제1의 화살을 맞고, 이어서 정신적 화살이라는 제2 화살을 맞는다.  그런데 사실은 두 방의 화살을 더 맞아 총 네 방의 화살을 맞는다.

 

갈애의 집착으로 인한 욕망의 화살이라는 제 3의 화살과 무지하기 때문에 화살을 피하는 방법을 몰라서 맞게 되는 무지의 화살이 있는데 이것이 제 4의 화살이다. 이처럼 네 방의 화살을 무수히 맞으면서 살아 간다.

 

화살을 맞았으면 빼 내야 한다. 지금 화살을 맞아 죽을 지경인데 그 화살이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가를 물어 보는 것은 우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저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 세상과 허무주의

 

이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죽어서 완성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유일신교의 천국을 비롯하여 정토신앙의 극락도 그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고통뿐인 현실에 대하여 이 세상을 부정하고, 죽어서나 가는 저 세상을 동경한다면 허무주의’라 볼 수 있. 따라서 대부분의 종교는 허무주의라 볼 수 있다.

 

허무하다는 것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을 말한다. 의미 없는 일을 한다거나, 전혀 가치 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해탈과 열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초기불교는 죽어서 완성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에서 완성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열반은 이 생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몸과 마음을 오온, 12처, 18계의 세상으로 보고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셨다. 마음이 현재에 머물러 있는 한 결코 허무주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한 몸 안에 세상이 있고, 세상의 일어남이 있고, 세상의 소멸도 있고,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 있다고 하였다. 바로 그것이 오온 12 18계의 세상으로서 우리가 아는 진정한 세계라는 것이다.

 

세상을 잘 아시는 분 세간해께서는 다음과 같은 멋진 게송으로서 이 세상을 말씀 하셨다.

 

 

여행으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에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아는 자, 슬기로운 자

세상에 끝에 도달한 자, 청정범행을 완성한 자

고요한 자, 그는 세상의 끝을 알아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는다.(S.i.62)

 

 

필사적으로

 

오늘도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생각으로 부터 무수한 화살을 맞는다. 육체적 화살과 정신적 화살 뿐만 아니라 욕망의 화살, 무지의 화살을 맞았다면 어떻게 빼 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맞지 않을 것인가. 방법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필사적으로알아차리는 수 밖에 없다.

 

 

 

2010-09-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