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파트 한채 보다 더 가치 있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0. 5. 21. 11:59

 

아파트 한채 보다 더 가치 있는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지금까지 십여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쓰고 있다. 마치 숙제하듯이 쓴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찜찜하듯이, 글을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한 것 같다. 이 정도가 되면 ‘집착’단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에 2008년도에 쓴 글을 하나의 파일로 묶었다.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을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이용하여 긁어서 만든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글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서 인쇄하고 제본하여 책의 형태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블로거의‘삶의 결실’로 남기고자 함이다.

 

책의 제목을 ‘진흙속의연꽃 2008 I’라고 했다. 앞으로 2권(II)이 출간 예정되어 있다. 2008년도에 쓴 글이 너무 많아서 상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었다. 상반기 글은 2008년 1월 3일에 쓴 글부터 6월 30일까지 쓴 총 140개의 글이다. 이쯤 되면 거의 하루에 하나씩 쓴 것이다. 다른 폴더에서도 해당 기간에 쓴 글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만들기 위하여 가장 먼저 목차를 만들었다. 목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욱 한번 훝어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2전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아이들 크는 것을 보면 세월을 실감할 수 있다.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이고,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일을 소환했다.

 

가장 아끼는 글이 있다. 139번째 글인 ‘촛불, 조중동의 프레임에 넘어갈까?’(2008-06-29)라는 제목의 글이다. 글은 광우병 관련 6.28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것을 후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글과 사진과 동영상을 곁들였다. 이렇게 글을 남긴 것은 어쩌면 먼 훗날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28일 촛불집회는 축제와도 같았다. 시청앞 광장에서부터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이전까지 해방구와 같았기 때문이다. 갖가지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커다란 광목 천에 MB의 얼굴을 그렸는데, 그림이 완성되고 나서는 찢는 행사가 있었다. 그때 당시 사람들은 민주정부 10년이 허무하게 다시 보수정권으로 회귀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퍼포먼스는 민주진영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무적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글쓰기를 계속한 이유는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글은 글일 뿐이다. 글에 쓰여 있다고 해서 그 상태라고 볼 수 없다. 경전에 있는 금구성언을 써놓았다고 해서 그 상태가 아닌 것과 같다.

 

성찰(省察)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말로 꼰대 같은 말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일을 반성하고 살핀다는 의미를 가진 성찰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찰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이 있다. 선도회의 박영재 선생이 그런 것 같다. 글 마다 ‘성찰한다’는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성찰이 될 수밖에 없다. 글쓰기를 통하여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성찰이라는 말은 니까야에서도 보인다. 맛지마니까야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M61)에 따르면 부처님은 외동아들 라훌라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은 어떤 쓰임새를 갖고 있느냐?”(M61)라고 물었다. 이에 라훌라는 “세존이시여, 성찰을 그 쓰임새로 갖고 있습니다.”(M61)라고 말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비춘다. 이런 거울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이숙(異熟)’으로 설명한다. 행위에 대한 과보가 익어서 거울에 비추어지는 것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숙적 마음은 거울의 표면에 비추어진 얼굴처럼 수동적이고, 착하고 건전한 마음은 얼굴처럼 능동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Vism.14.100)라고 했다.

 

라훌라는 나이가 어려서 거짓말을 하는 등 장난을 했다. 이를 지켜본 부처님은 이 시점에서 교계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라훌라에게 다가가서 가르침을 준 것이다. 이때 거울의 비유를 들어 성찰이라는 말을 했다.

 

성찰은 빠알리어 ‘paccavekkhitvā’를 번역한 말이다. 이 빠알리어는 영어로 ‘having considered; having reviewed; having contemplated.’의 뜻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반조’라고 번역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액면 그대로이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과거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거울에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울을 보듯이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게 된다면 성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하나 밖에 없은 외동아들에게 “그렇다. 라훌라여,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신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언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정신적으로 행위해야 한다.”(M61)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성찰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편한 시간에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들길 때 자연스럽게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그런 성찰의 기록을 이제 열한 번째 책으로 만들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한일상사 문구점에 맡긴 것이다.

 

 

 

 

이번에는 책의 두께가 꽤 된다. 2008년도 상반기에 쓴 글을 책으로 만드니 모두 576페이지에 달한다. 두 권을 인쇄하고 제본했다. 비용은 5만7천원 들었다. 비용이 들긴 하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오래 간다. 블로거에게는 이것이 재산이다. 아파트 한채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

 

 

2020-05-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