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쩌자구요?
에스엔에스 상에서 넋두리를 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마치 독백하듯이, 마치 하소연하듯이 써 놓았다. 이럴 때 나오는 말은 “그래서 어쩌자구요?”라는 말일 것이다.
에스엔에스, 특히 페이스북에서 갖가지 인생군상을 본다. 사람들의 생긴 모습만큼이나, 사람들 성향만큼이나 다양한 글을 접한다.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는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 같다. 커다란 글씨를 보면 고함 치는 것 같다.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회에 대한 불만, 정당에 대한 불만,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다. 특정 정치인을 지목하여 저격하기도 한다. 오늘날 페이스북은 욕망과 분노의 배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만 나열해 놓으면 “그래서 어쩌자구요?”라는 말을 듣기 쉽다. 보고서 작성하는 것처럼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또는 문제해결을 위한 극복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유익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말과 같다. 듣기와 읽기는 개인적인 것에 해당되지만 인터넷에 쓰는 행위는 공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럼에도 문제만 잔뜩 나열해 놓는다면 무책임한 것이 된다.
부처님 가르침을 보면 항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만일 부처님이 “이것이 괴로움이다.”라 하여 여덟 가지 괴로움에 대해서만 설했다면 염세주의자로 몰렸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가르침이 전승되어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그래서 어쩌자구요?”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라 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말했다. 또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 하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 하여,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방법을 제시했다.
부처님은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말했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에 대해 말했다. 어느 것 하나 문제제기로 끝난 것이 없다. 반드시 해법을 제시했다. 그래서 결론은 항상 ‘해탈’로 귀결된다. 요즘말로 하면 ‘기승전해탈’이라 할 것이다.
“세존께서 잘 설하신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가르침이며,
시간을 초월하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가르침이며,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가르침이며,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가르침이다.”(S11.3)
2020-10-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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