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유발자를 만나면
분노유발자가 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했던 말을 또하고 또하고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지만 두 번, 세 번 들었을 때 슬슬 짜증이 난다. 세 번 이상 들었을 때 화가 난다. 분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때가 중요하다. 알아차리면 선업이 되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 불선업이 된다.
조폭영화를 보면 참을성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장면을 보면 즉각적이다. 조금이라도, 한순간이라도 불쾌하게 하면 즉각적 반응을 보인다. 한번까지는 참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가지 않는다. 즉각적인 액션이 따른다. 사소한 말다툼이 폭력이 된다. 더 나아가면 살인이 뒤따른다.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이제까지 쌓은 공덕도 분노함으로 인하여 물거품 될 수 있다. 가족간에도, 친구간에도, 고객간에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한순간 참지 못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분노에는 일곱 가지 불이익이 따른다고 했다. ‘분노의 경(A7.64)’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추악해진다.
2)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괴롭게 잠을 잔다.
3)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으로 이끌어진다.
4)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정당한 재물을 얻더라도 왕들은 그것을 국고에 귀속시킨다.
5)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명성이 있더라도 그는 명성에서 멀어진다.
6)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을 지녔더라도 그들을 그를 멀리 회피한다.
7)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A7.64)
분노하면 일곱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했다. 모습이 추악해지고, 잠을 못자고, 불이익과 고통이 따르고, 재산을 빼앗기고, 친구와 친지들이 멀리하고, 명예가 실추되고, 결국 악처에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화를 낼 수 있을까?
인내해야 한다. 힘 있는 자가 인내해야 한다. 인내할 줄 아는 힘이 있는 자이다. 힘이 없는 자는 인내할 줄 모른다. 그래서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S11.4)라고 했다. 수행의 힘을 것이다.
법구경에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 최상의 고행이다.”(Dhp.184)라고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고행은 계행을 지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최상의 고행은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연쇄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교화되어서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현세에 지은 살인업으로 인하여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때 부처님은 “수행승이여, 그대는 인내하라. 수행승이여, 그대는 인내하라. 그대가 업의 과보로 수 년, 아니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그대가 지금 여기서 받은 것이다.”(M86)라고 했다.
아라한이 되었어도 현세의 업보는 피해갈 수 없다. 아라한이 되면 다시는 재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생에서 받게 되는 과보를 피해 갈 수 있지만 현생에서 받게 될 과보는 피해 갈 수 없다. 설령 이 생에서 피해 가더라도 다음생에서, 즉 악처에서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인내하라.”라고 말하면서 이번 생에서 받을 업보를 피해 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 순간을 참지 못하여 폭발하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면 그는 더욱 악해지리.”(S11.5)라고 했다. 분노를 유발하더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래서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네.”(S11.5)라고 했다. 결국 참는 자가 승리자가 된다.
분노하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덕이 물거품이 된다. 퇴전하게 되어서 처음부터 다시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참사람이 최상의 이익을 성취하려면, 인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네.”(S11.5)라고 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분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놀랍게도 부처님은 분노에 대한 해법을 내 놓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라도 다음과 같은 원한을 제거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새기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지 모른다.
“1)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자애를 닦아야 한다.
2)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연민을 닦아야 한다.
3)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평정을 닦아야 한다.
4)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
5)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행위가 주인이라는사실을 이와 같이 ‘ 이 사람에게 행위가 주인이고, 행위가 상속자이고, 행위가 모태이고, 행위가 친족이고, 행위가 의지처이다. 선하거나 악한 행위를 하면, 그것이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인식해야 한다.” (A5.161)
앙굿따라니까야 ‘원한의 제거에 대한 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사무량심에 기반한 것이다. 다만 기쁨(mudita)이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노유발자에게 기쁨의 마음을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제거하기 전에는 기쁨이 일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분노유발자에게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내면 마음의 평정이 유지될 것이다. 무엇보다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이를 “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신경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만 나기 때문에 다른 곳에 마음 돌려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 사람의 업으로 보는 것이다. 분노유발자의 업으로 보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이는 업이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서라도 자신이 지은 행위는 자신이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그 과보는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일 수도 있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의 평정은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다. 분노유발자를 만나면 그 사람의 업으로 생각해야 한다.
2020-10-07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은 자연 앞에서 티끌 (0) | 2020.10.10 |
---|---|
오늘 해야 할 일감이 있음에 (0) | 2020.10.08 |
언제나 그 자리에 (0) | 2020.10.06 |
그래서 어쩌자구요? (0) | 2020.10.05 |
세상에 한마리 모기가 되고자 (0) | 2020.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