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2. 3. 13. 19:35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 가지 세계가 있다. 짝까발라로까, 삿따로까, 상카라로까를 말한다. 각각 공간계, 중생계, 조건계라고 말한다.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먼저 눈에 보이는 세계, 기세간에서 나는 살고 있다. 이 세계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이고, 내가 눈을 감아도 계속될 것이다. 이를 짝까발라로까, 공간계라고 말한다. 경에서는 "여래는 세상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성장한다."(A4.36)라고 표현되어 있다.

세상은 공간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은 중생계도 있고 조건계도 있다고 말씀 하셨다.

삿따로까, 즉 중생계란 무엇일까? 이는 꽃의 경에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경에서 “수행승들이여,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S22.94)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과 싸우고 있는가? 불의와 부조리와 불공정에 분노하여 싸우고 있다면 중생계에 서 산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은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세상이 나와 싸운다."라고 했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왠 일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세상과 불화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은 탐, 진, 치로 살지만 부처님은 무탐, 무진, 무치로 살라고 했다. 이는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은 역류도이다. 세상과 불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역류도로서 부처님 가르침은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무상, 고, 무아, 부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을 상, 락, 아, 정으로 본 것이다. 이것들도 정반대이다. 이렇다 보니 세상이 나와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상카라로까, 조건계란 무엇일까? 세상에는 세상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원리가 있을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 원리가 있다고 했다.

"수행승들이여, 이득과 불익,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가 세상을 전재시키고, 세상은 여덟 가지 세상의 원리 안에서 전개 된다."(A8.6)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원리를 세속팔풍이라고 한다. 세상을 바람부는 대로 살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들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조건으로서의 세상, 조건계(Saṅkhāraloka)라고 말한다.

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공간계로서 세상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계에서도 살고 있고, 조건계에서도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바라문이여, 예를 들어, 청련화나 홍련화나 백련화가 물 속에서 생겨나 물 속에서 자라지만, 물을 벗어나서 물에 젖지 않고 피어있듯,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나는 세상 속에서 생겨나 세상 속에서 자라지만,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지냅니다. 바라문이여, 깨달은 님이라고 나를 기억하시오.”(A4.36)

부처님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다고 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 살지만 오염되지 않음을 말한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야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최근 자타카 교정작업을 하면서 단서를 발견했다. 그것은 업에 물들지 않음을 말한다.

과거 지은 업이 있다. 전생에 지은 업도 있을 것이다. 업대로 살면 세상에 물들어 살게 된다. 세속팔풍에 바람부는 대로 살게 된다. 또한 세상과 싸우며 살게 된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진리의 말씀을 따르다 보니 세상이 나와 싸운다.

공간계에서 태어나 중생계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자 한다. 업대로 살면 중생으로 사는 것이고, 업에 물들지 않고 살면 부처로 사는 것이다.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세상이 자꾸 싸움을 걸어 온다.

2022-03-1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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