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오신날과 종교화합
겨울이 무척 깊은가 보다. 지는 해는
시대와 함께 시청 앞 장식조형물도 바뀌나 보다. 불과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연시에는 시청 앞 광장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의례히 장식되어 불 밝히는 것이 상식화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환경도 바뀌는 것 일까. 지금은 부처님오신날에도 시청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은 규모로 불교장식물이 설치되는 것을 보면 시대가 바뀌었다는 확실한 증거 일 것이다.
최근에는 연말연시의 조형물은 단연 루체비스타 와 같은 주제를 가진 화려한 조형물이 압권이다. 오히려 크리스마스트리는 한쪽으로 쳐져서 과거의 영화를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아마도 기독교가 칠팔십년대에 고속성장한 시대적 상황과는 확실히 다른 시대에 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 해주는 것이 아닐까.
공영방송에는 나오지 않은 이야기지만 종교간의 화합에 관한 훈훈한 기사가 있었다. 불교방송과 불교신문에서 나온 이야기 인데
그 두분의 모임을 소개하는 불교방송의 기사내용이 참으로 의미 심장 하였다. 방송에서는 성탄절이라 부르지 않고 ‘예수님오신날’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였다. 사실 성탄절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특허 받은 독점어는 아닐 것이다. 어디 이런 말 한 두가지 인가. 성경이라는 말도 알고 보면 기독교 경전을 지칭하는데 마치 전매특허품 처럼 사용하는 것이 현실인 것 이다. 이러한 성탄이니 성경이니 하는 말들은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시대에 외세에 의하여 만들어 졌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요즈음 일부 사람들은 종교용어 바로 잡아 주기 운동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예로 들면 성경을 ‘기독경’으로 하나님 또는 하느님을 ‘야훼’신으로 하는 식이다. 이와 같이 부르는 것이 상대종교에서는 불쾌 하게 생각 될지 모르나 이제까지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 주는데 있어서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방송이 성탄절을 ‘예수님오신날’로 부르는 것이 일종의 파격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 한다.
이번에 천주교 수장과 불교의 대표자가 서로 만나서 축하의 메세지를 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왕이면 개신교측 하고도 교류가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런 종교화합 분위기에도 불구 하고 개신교측의 대응자세는 매우 전투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즉 부산에서의 불교말살기도회 라든가 또 최근에는 성북구청장의 이해 할 수 없는 선교와 불교비방 행위등 끊임없이 긴장과 갈등을 유발 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전투적이고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까. 교리가 문제일까 아니면 사람들 됨됨이 문제일까. 종교 화합으로 가는 시대에 있어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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