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라따나경(보배경)1
몇 년 전의 일이다. 어느 스님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종종 방문하였다. 거기에는 빠알리로 된 라따나경에 대한 해석과 해설이 연재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마우스 버튼 허용에 대하여
스리랑카에서 20년 가까이 초기불교 교학을 공부하였다는 스님 사이트에는 볼만한 자료로 가득 하였다. 특히 빠알리 단어에 대한 해설이 상세하게 되어 있었는데, 그 때 당시만 해도 빠알리어에 대하여 무지 하였으므로 매우 관심 있게 보았다.
글을 가져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글도 가져 갈 수 없도록 조치 해 놓았다.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허용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풀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인터넷 시대에 공유에 대한 필요성을 말하고 많은 불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 것이다. 이렇게 필요한 부분을 가져 가서 매일 듣다시피 하는 Imee Ooi의 라따나경 음악과 함께 공부해 볼 작정이었다. 내용을 알고 들으면 더 감동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면박당하다시피한 답글을 받았다. “가져 가서 무엇에 쓸려고 하느냐?” “서구에서는 스크랩해 가는 것은 범죄행위에 해당된다” 는 식의 답변을 받았다. 이런 댓글 공방을 지켜 보고 있던 미국에서 공부하였다는 어느 불자 역시 스님을 거들어서 미국에서도 범죄행위에 해당된다고 말해 주었다.
오른쪽 마우스 버튼을 이용하여 긁어 가는 행위가 범죄 행위에 해당 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인터넷에 올려진 것이라면 공개된 자료와 다름 없어서 가져가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하였고,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면 문제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미국의 불자와 여러 차례 댓글 공방을 벌였다.
‘진흙속의연꽃’이라는 필명에 대해서
또 스님은 ‘진흙속의연꽃’이라는 필명에 대해서 몰랐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진흙속의 연꽃’이라는 말이 부처님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부처님에게 불경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명을 바꾸려고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랐다. 이제 까지 올린 글의 서명을 모두 바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 하였다.
진흙속의 연꽃이라는 필명이 진짜 부처님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스님의 지적대로라면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음에 틀림 없으나 아직까지 진흙속의 연꽃이라는 말이 부처님을 직접적으로 지칭한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누구나 진흙속에 피어난 연꽃에 대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불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미천한 자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하여 격려도 받지만 때로 질타도 받는다. 때로 후한무치하고 파렴치한 존재로 취급 될 때도 있다. 아마도 재가불자가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하여 글 ‘같잖게’ 본다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글을 써 왔다. 그런 글쓰기는 격식을 갖춘 논문이나 형식을 갖춘 글쓰기와 거리가 멀다. 격식도 형식도 없는 자유로운 글쓰기이다. 그날 그날 느낀 것에 대하여 “이럴 경우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경전을 뒤적여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격식도 없고 형식도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그런 글쓰기는 철저하게 비주류 입장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B급, 삼류 글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배웠다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잡문(雜文)에 지나지 않을 것임에 틀림 없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하여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바쁜 세상에 해야 할 것도 많은데 글이나 쓰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인터넷 룸펜이나 인터넷 폐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사실 시간이 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하게 할 일이 없는 자들이 끄적이는지 모른다. 그런 자들이 쓰는 글은 잡문에 지나지 않고 그런 글을 쓰는 자들 역시 ‘잡것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쌓을 것 같은 라따나경(보배경, Sn2.1)
주류측 입장에서 본다면 인터넷에 글을 쓰는 자들은 잡것들이고, 잡것들이 쓰는 글은 고려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잡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스스로 공부도 하고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지금 쓰려고 하는 것은 라따나경에 대해서이다.
라따나경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Imee Ooi음악을 알고 나서 부터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궁금해졌다. 놀랍게도 테라와다 불교의 예불문이었다. 가장 고층 경전이라고 불리우는 숫따니빠따에 있었고 테라와다 불교 불자들이 늘 독송하는 수호경임을 알 수 있었다.
라따나경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찬탄에 대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듣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꾸 듣다 보니 외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2011년 17개의 게송을 모두 다 외웠다. 마치 신묘장구대다라니 외우듯이 우격다짐, 막무가내로 외웠다. 그러나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빠알리 단어 자체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빠알리 사전을 찾아 가며 단어를 정리해 보았다. 먼저 1번부터 3번 게송에 대한 것이다.
라따나경이 나오게 된 배경
먼저 라따나경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라따나경 해제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 경은 베쌀리(vesali)의 악귀들을 쫓아내기 위해 설해졌기 때문에 수호경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 경은 테라바다 불교권에서는 일상적인 예불 문에 속해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prj I. 158-165에는 리차비 족의 유래와 베쌀리 건국에 대한 신화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 주석에 따르면, 리차비 족의 수도 베쌀리에는 심한 가뭄이 들어 여러 가지 기근과 역병과 잡귀의 공포에 의한 환란이 생겨났다. 농작물이 모두 말라죽고 나무들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사람들은 굶주려 죽었다. 그리고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베쌀리에는 시체 썩는 냄새로 가득 찼고 그 악취가 많은 악귀들을 불러들였다. 사람들은 악귀의 공포에 떨어야했다.
그래서 시민들은 이러한 혼란을 물리치기 위해 공회당에 모여 회의를 한 결과 부처님을 초대하기로 했다. 그들은 왕실의 바라문과 왕자들로 사절단을 구성하여 라자가하의 빔비싸라왕을 찾아가 부처님을 초대하고자 한다고 말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사절단은 부처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자 부처님은 초대에 응했다. 빔비싸라 왕은 라자가하에 계신 부처님께서 갠지스 강을 건너 베쌀리로 가는 8요자나의 거리를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조취를 취했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갠지스강을 건너자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가뭄으로 인해 쌓였던 먼지가 씻겨나가고 풀과 나무들이 되살아나고 시신과 오물들은 강으로 씻겨져 내려갔다. 갠지스 강에서 베쌀리로 여행하는 삼일 동안 비가 내려 리차비 족의 밧지 국 전체가 가뭄에서 벗어났다. 부처님이 베쌀리에 도착하자 제석천이 권속을 거느리고 마중 나오자 악귀들도 물러서기 시작했다.
부처님은 이 보배의 경을 먼저 아난다에게 가르쳐주고는 리차비의 왕자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니며 이 경을 읽고 부처님의 발우에 물을 담아 뿌리도록 했다. 그러자 모든 악귀들이 도시에서 물러나고 사람들은 질병에서 벗어났다. 리차비 족들은 시의 공회당에 모여 여러 가지 공물을 준비하여 부처님을 그곳으로 인도했다. 그 모임에서 베쌀리의 주민들뿐만 아니라 제석천을 우두머리로 하는 천상계의 신들도 와 있었다. 부처님은 이 수많은 대중에게 이 보배의 경을 설했다.
(라따나경, 전재성박사)
라따나경은 수호경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경이라 한다. 라따나경을 설하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보면, 비인간을 비롯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모여든 천신과 인간 등의 대중을 위하여 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라따나경 게송1,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구 분 |
라따나경 게송1 |
비 고 |
빠알리 |
Yānīdha bhūtāni samāgatāni |
야니-다 부-따-니 사마-가따-니 붐마-니 와- 야-니 와 안딸릭케 삽베와 부-따- 수마나- 바완뚜 아토삐 삭깟짜 수난뚜 바-시땅 |
전재성님역 |
여기 모여든 모든 존재들은 지상에 있는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여 지이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이제 말씀을 들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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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역 |
여기 모인 모든 귀신들은 지상의 것이건 공중에 있는 것이건 다들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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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村元역 |
ここに集まった諸々の生きものは、地上のものでも、空中のものでも、すべて歓喜せよ。そうしてこころを留めてわが説くところを聞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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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
Whoever beings assembled here, on earth or in space, May all of them be mentally well and may they listen attentive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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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따(bhūtā)란?
여기서 모든 존재들은 일반적으로 비인간 (非人間)을 말한다. 각주에 따르면 비인간에는 신들, 야차, 나찰, 다바나, 건달바, 긴나라, 마호라가들이다. 숫따니빠따에 자주 등장하는 야차는 비인간에 속하는 무리로 아귀보다는 약간 높은 단계의 귀신으로 인간과 건달바 사이의 존재라 한다. 영혼이나 유령, 도깨비, 요정, 괴물이 여기에 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비인간을 뜻하는 부따(bhūtā)에 대하여, 전재성박사는 ‘존재’이라 하였고,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는 ‘살아 있는 것(生きもの)’이라 하였다. 나까무라 하지메역을 중역한 법정스님은 ‘귀신’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설법을 듣기 위하여 수 많은 대중을 향하여 먼저 비인간들에 대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경청해 줄 것(Athopi sakkacca suṇantu bhāsitaṃ)’을 말하고 있다.
‘삽베와 부따 수마나 바완뚜’와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번역에서 ‘행복하여지이다’라고 하였는데, 행복과 관련된 말이 ‘sumanā’이다. 사전에 따르면 ‘sumanā’는 기쁜(glad) 이라는 뜻이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환희 (歓喜)라 하였다. 이렇게 부처님은 비인간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은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이라고 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의 모든 존재(비인간들)에 대한 자애의 마음이 잘 표현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문장이‘삽베와 부따 수마나 바완뚜(Sabbeva bhūtā sumanā bhavantu)’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말이 멧따경에 있다.
이와 유사한 말이 멧따경(자애경, Sn1.8)에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이다. 이는 ‘모든 중생들이 행복해지이다’라고 번역된다. 그런데 라따나경에서는 그 대상이 모든 존재들(비인간들, bhūtā)이고, 멧따경에서는 뭇삶들(중생들, sattā)인 것이 다르다. 수마나(sumanā, 기쁨 또는 행복)과 대응되는 말이 수키땃따(sukhitattā , 행복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라따나경에서는 비인간들(존재들, 부따)에 대하여 모두 행복하기를 기원한 것이고, 멧따경에서는 모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렇게 1번 게송에서 모든 존재들은 모든 중생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야차, 나찰, 아귀 등과 같은 비인간(bhūta)들이다. 이는 2번 게송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단어 정리
Ya: 어느 것, 무엇이라도
Yānī: ya의 n, pl, nom, acc
idha: [adv.] here; in this world or existence.
bhūta: [pp. of bhavati] become; existed.
samāgata : [pp. of samāgacchati] met together; assembled.
Bhumma: n. 땅의, 지상의
Bhummā: 지상의 것들, 지상의 신들, 특히 수신(樹神)이나 야차
vā : (particle of disjunction), or; either- or.
Va : a short form of iva or eva.
antaḷikkha : [nt.] the sky. :n. [Sk. antarikṣa] 空間, 空中, 虚空.
sumanā , (f.), jasmine; a glad woman.
sumana : [adj.] glad.
Bhavantu , (‹bhavati)【3复.命】,愿他们,希望他们是
bhavati : [bhu + a] becomes; to be; exists.
Atho: ind.=atha
Atha: 그리고, 또한
sakkacca : [abs.] having well prepared, honoured, or respected.
suṇanta : [pr.p. of suṇāti] hearing.
bhāsita : [pp. of bhāsati] said; spoken; shone. (nt.), saying.
라따나경 게송2, 인간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구 분 |
라따나경 게송2 |
비 고 |
빠알리 |
Tasmā hi bhūtā nisāmetha sabbe |
따스마- 히 부-따- 니사-메타 삽베 멧땅 까로타 마-누시야- 빠자-야 디와- 짜 랏또 짜 하란띠 예 발링 따스마- 히 네 락카타 압빠맛따- |
전재성님역 |
모든 존재들은 귀를 기울이시고. 밤낮으로 제물을 바치는 인간의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방일하지 말고 그들을 수호하도록 하여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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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역 |
귀신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밤낮으로 재물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함부로 하지말고 그들을 지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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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村元역 |
それ故に、すべての生きものよ、耳を傾けよ。昼夜に供物(そなえもの)をささげる人類に、慈しみを垂れよ。それ故に、なおざりにせずに、かれらを守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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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
Therefore, all beings, listen, develop lovingkindness to humanity Day and night they bring gifts, so protect them diligently. |
|
2번 게송에서 부처님은 비인간들에게 귀를 기울여 달라고 거듭 요청한다. 부처님은 어떤 말을 하고자 하였을까.
부처님은 낮(divā)과 밤(ratto)으로 제물(bali)을 바치는 인간의 후손들(mānusiyā pajāya)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는 인간의 후손이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자비(metta)를 베풀고 수호(rakkhati) 하라고 말한다. 이때 조상들은 누구를 말할까.
대규모 동물희생제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라문들의 대규모 동물희생제와 같은 근거 없는 제사를 경계하였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게송에서 알 수 있다.
말을 희생하는 제사, 사람을 희생하는 제사
나무봉이 던져진 곳에 제단 쌓는 제사, 승리의 축배를 드는 제사,
무차(無遮)의 제사는
많은 수고만 있을 뿐, 공덕은 크지 않네.
(얀냐경 –Yaññasutta-제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3:9(1-9),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사람을 희생하는 제사에 대한 것은 초기경에 보이지 않으나 동물을 희생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종종 보인다. 이런 제사 방식은 바라문이 타락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원래 예전의 바라문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 동물희생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본 것은 많은 생명을 희생하여 베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공덕은 크지 않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권장한 제사는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제사를 권장하였을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알 수 있다.
현자들은 살생이 없는 제사를 행하니
그 제사는 큰 공덕을 가져오네.
훌륭한 제사를 행하는 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은 없네.
살생이 없는 제사는 위대한 것
하늘사람조차 기뻐한다네.
(얀냐경 –Yaññasutta-제사의 경, 상윳따니까야 S3:9(1-9), 전재성님역)
이와 같이 부처님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장하였다. 더구나 제사를 지내면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제사에 사용되는 공물은 생명을 희생하여 만든 것은 안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제사를 지내도 좋다고 한 것일까.
누구에게 제사지내야 하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천도재는 있을 수 없다. 존재가 죽자 마자 업력에 따라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상에 곧바로 태어나거나 화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은 자를 위한 제사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허용하는 것이 있다. 아귀의 세계이다.
아귀의 경우 자신의 영역이 따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숲이나 습지나 묘지 등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같이 산다고 한다. 인간으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들 스스로 모습을 드러 낼 수도 있고 천안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이처럼 보시에 의하여 먹고 살아가는 아귀를 ‘빠라다뚜 빠지위까 뻬따(Paradatu-Pajivika Peta)’라 한다.
자신의 조상중에 아귀가 된 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아귀계에 떨어진 조령신에게 공덕을 베푸는 것이 제사를 하는 목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제사의 공덕도 아귀가 공덕을 받아 들이지 않는 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살아 생전에 좋지 못한 관계이었거나, 원한을 품고 죽었다면 아무리 공덕을 배풀어도 찾아 오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위하여 할 일은 무엇인가.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그를 위해서 ‘선업(善業)’을 쌓는 일이라 한다. 선업공덕을 쌓는 것이 죽은 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라는 것이다.
불쌍한 조상신들에게
1번과 2번 게송을 보면 비인간(부따)에 대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라따나경이 설해지게 된 배경에 나오는 악귀를 말한다. 그런 악귀는 좁은 의미로 보면 굶주린 악귀들이라 볼 수 있다. 일정한 영역이 없는 존재들로서 인간들의 조상신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존재들에게 먼저 “행복하기를!” 하고 기원하면서, 다음으로 제물을 바치는 인간의 후손들에게 자비를 내고 수호할 것을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악귀 또는 아귀라고 하여 쫒아버리는 대상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야할 불쌍한 중생으로 본 것이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숲이나 음습한 곳에 사는 존재들은 불쌍한 조상신들이기 때문에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 주는 것 자체가 커다란 공덕을 쌓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 주면 불행한 조상신이라 볼 수 있는 존재들(부따)들은 후손에게 헤꼬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신 자비를 베풀어 주고 보호 해 줄 것이라 한다.
이렇게 부처님은 천신과 인간들에게 설법하기 전에 먼저 조상신과도 같은 존재(부따)들에게 먼저 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어 정리
Ta: pron. 그, 그것 tam, tassa, Tasmā, ta, te, tesam, tesu, tehi, yasu
mase :, smi=asmase, asmi → atthi.
nisāmeti : [ni + sām + e] listens to; observes; attends to.
Metta: 친절한, 자애로운, 우정
karoti : [kar + o] does; acts; makes; builds.
manussa : [m.] a human being.
pajāyati : [pa + jan + ya] is born or produced.
Diva: 날, 낮, 하늘
ratto : [ratta または ratti の loc.] 夜に. divā ca ~ ca 昼夜に.
haranta : [pr.p. of harati] carrying; taking away.
bali : [m.] religious offering; revenue; tax.
ne :=te [ta の m. pl. nom. acc.] 彼等は, 彼等を.
rakkhati : [rakkh + a] protects; guards; observes; preserves.
appamatta : [adj.] (a + pamatta:) vigilant; careful; alert. (appa + matta:) slight; insignificant.
(계속)
2013-02-17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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