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쌍계사 파초를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15. 11. 4. 20:16

 

쌍계사 파초를 보며

 

 

 

천장사 순례팀은 쌍계사로 향하였다. 용화사에서 일박 한 후 오전 일찍 출발한 것이다. 화엄사와 용화사에 이어 세 번째 순례지가 된다.

 

쌍계사는 이전에 한번 와 보았다. 지난 2012년 벗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순례법회를 가졌다. 이에 대하여 쌍계사 ‘벚꽃’구름터널을 달리며, 육조혜능 ‘정상(頂相)’의 진실(2012-04-160’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이번에는 천장사 순례팀과 두 번째 방문에 해당된다.

 

엄마품처럼  포근한

 

다시 쌍계사에 섰다. 이번에는 깊어 가는 가을이다. 그러나 가을 같지 않다. 온통 푸르름 뿐이기 때문이다. 드문 드문 단풍이 보이기는 하지만 초록이 대세이다. 특히 입구에서 본 파초가 이곳이 남국임을 증명해 주는 것 같다.

 

 

 

 

쌍계사 대웅전 앞에 섰다. 지난 번 왔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안은하다는 것이다. ‘안은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엄마품처럼  포근하다는 의미도 있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안은한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지형과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지형 때문이다. 탁 트인 너른 공간에 전각이 덜렁 몇 개 있는 것과는 다르다. 작은 공간이지만 요소 요소에 전각이 잘 배치 되어 있다. 그리고 전각 사이에는 커다란 상록수가 심어져 있어서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처럼 적재적소에 배치 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안정감이 있어서 보이고 포근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른 오전 쌍계사에 도착하였을 때 한적 하였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북적이지않는다. 그런데 도량에 맞이 해 주는 스님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는 스님이 아니다. 나이가 지긋한 노스님이다. 노스님은 우리 순례단을 향해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 사찰순례 다니다 보면 스님 만나기 힘든데 이렇게 마당에서 친절하게 맞이 해 주고 심지어 가이드가 되어 주는 경우는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스님은 우리 팀만 아니라 다른 순례팀도 친절하게 맞이 하는 것이었다. 마치 집에 찾아 온 손님을 대하듯 한다.

 

금강계단이 조성된 이유는

 

대웅전 후원에 가면 계단이 있다. 통도사에서 보았던 금강계단과 유사한 것이다. 왜 이곳에 사리탑 모양의 계단이 있을까? 안내를 받지 못하여 검색해 보았다. 검색해 보니 “2007년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이 진신사리를 모시고 금강계단을 조성했다.”라는 글을 보았다.

 

 

 

 

 

쌍계사는 13교구 본사이다. 2013년 총림으로 지정되었다. 총림의 조건은 선원과 강원과 율원, 그리고 염불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쌍계사는 계율과 관련된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 그것은 이곳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이 율사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금강계단이 조성 되었을 것이다.

 

이 꽃 이름은 무엇일까?

 

쌍계사는 아름다운 절이다. 또 늘 푸른 절이다. 주변을 보면 온통 녹색이다. 더구나 꽃까지 피어 있다. 11 1일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계절에 꽃을 보았다. 가을에 피는 국화가 아니다. 마치 인공으로 만든 조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꽃을 보았다. 금강계단 입구에 피어 있는 이 꽃 이름은 무엇일까?

 

 

 

 

 

 

 

 

 

 

 

이 꽃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카톡방에 공유하였다. 그러자 어느 법우님이 다알리아라 하였다. 다알리아를 검색 해 보니 맞다. 여러 종류의 다알리아가 있지만 계단에서 보는 동글동글한 다알리아도 있었다. 검색해 보니 Victoria Dahlias로 되어 있다.

 

금당선원 가는 길에

 

쌍계사에 가면 꼭 가 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그것은 육조 혜능대사의 두상이 있다는 곳이다. 그곳은 금당선원이다.

 

한국의 사찰에서 선원이 있는 곳은 금지구역이다. 선원 입구에는 늘 이곳은 스님들이 정진중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팻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해제철에는 들어 갈 수 있다. 현재 해제철이므로 금당선원에 들어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금당선원은 저 높은 곳에 있다. 계단을 타고 꽤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조금도 지루하다거나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원인을 생각해 보니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가람과 나무가 적재적소에 배치 되어 있어서 짜임새가 있었다. 마치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면 조직이 잘 돌아 가듯이 전각은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해 있고, 적절한 장소에 여러 수종의 나무가 서 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모두 푸르다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감에도 마치 한 여름 같은 녹음이다.

 

 

 

 

 

팔상전이 있는 이유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면 한 숨 돌린다. 그러나 육조정상이 있는 곳 까지는 또 다른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계단과 계단의 중간에 전각이 하나 서 있다. ‘팔상전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금지구역인 이곳에 왜 팔상전일까? 스님들만의 공간에서 팔상전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하여 허정스님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스님들이 안거를 하며 정진을 하지만 늘 부처님의 행적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것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지금 수행을 하고 있지만 수행의 목적을 잊지 않게 해준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팔상전 내부를 보았다. 법당안에는 주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상이 모셔져 있다. 뒤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상도가 있다. 그런데 다른 법당과 달리 법당 3면에는 부처님의 여덟 가지 행적이 그림으로 표현 되어 있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부처님 일대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절에서 보는 팔상도는 대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특히 법화경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사상이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팔상도를 보면 니까야에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설산수도상만이 차이가 있다.

 

설산수도상은 사실일까?

 

한국절에서 보는 설산수도상을 보면 부처님이 눈속에서 수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니까야에서는 눈속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고행림이 있었던 인도날씨가 눈이 쌓일 정도로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이 눈 내리는 히말라야 산중에 들어가 수도 하였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는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조계사 대웅전 탱화

 

 

설산수도상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맛지마니까야에 보인다. 그것은 사리뿟따여, 나는 한겨울 차가운 밤이 서리가 내리는 팔일간에 찾아오면, 나는 노천에서 밤을 지새우고 숲에서 낮을 보냈다. (So kho aha sāriputta yā tā rattiyo sītā hemantikā antaraṭṭhake himapātasamaye) ”(M12)라는 내용이다.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한 것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서리가 내리는 팔일간(antaraṭṭhake himapātasamaye)’라는 말은 부처님이 고행한 장소의 기후를 짐작케 해 준다. 각주에 따르면 “12월말과 1월초에 북인도의 차가운 기후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눈이 올 정도일까?

 

빠알리어 Himapātasamaya가 있다. 이는 ‘hima+pāta+samaya’  결합어이다. 이는 Hima‘snow; ice’의 뜻이고, paa‘a cloth; garment’의 뜻이고, samaya‘time; congregation; season’의 뜻이다. 따라서 복합어 Himapātasamaya는 눈 또는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라는 뜻이 된다. 그 계절이 불과 8일에 불과 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은 히말라야와 같은 설산에서 수도한 것이 아니다. 우르벨라 지역의 고행림이다. 그런데 가장 추운 겨울 8일 동안 서리가 내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관련 문구에 대하여 초불연에서는 추운 겨울 서리가 내리는 시기인 중간 8일 동안이라 번역하였다. 빅쿠 냐나몰리와 빅쿠보디의 MDB에서는 “When those cold wintry nights came during the ‘eight-days interval of frost”라 하였다. Hima에 대하여 서리의 뜻은 ‘frost’로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팔상도에서 보는 설산수도상은 잘못된 것이다. 북방불교에서 북방의 겨울 날씨를 생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는 믿음이고 신앙이기 때문에 설산에서 눈을 맞으며 고행하는 부처님 상을 접하는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 원음이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설산수도상도 시대의 산물로 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극단적 고행

 

현대판 팔상도를 만든다면 설산수도상대신 다른 이미지를 넣어야 할 것이다. 설산수도상이 6년간의 고행을 상징한다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처님 이미지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 고행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에서는 사리뿟따여, 나는 네 가지 범주의 청정한 삶을 실천했다. 나는 참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구차한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삼가는 삶을 살았다.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는데, 극단적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M12) 라고 표현 되어 있다. 이렇게 6년간 고행한 결과 부처님의 몸은 어떤 상태가 되었을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사리뿟따여, 하루 하나의 콩을 먹자 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포도줄기나 대나무 줄기의 옹이처럼 되었고,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사지는 아씨띠까 풀의 마디나 깔라 풀의 마디처럼 되었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엉덩이는 낙타의 발처럼 되었고, 나의 척추는 회전하는 사슬처럼 울퉁불퉁해졌다. 나의 갈빗대는 오래된 지붕 없는 헛간의 흔들리는 서까래처럼 섬뜩하게 튀어나왔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눈빛은 눈 구멍에 깊숙이 가라앉아, 깊은 우물에 멀리 가라앉은 물빛으로 보았다. 또한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머리가죽은 주름지고 시들어서, 푸르고 맛이 쓴 호리병박이 바람과 햇빛에 주름지고 시든 것과 같았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나의 창자가 나의 등에 붙어버려, 내가 창자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졌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가 만져졌다.” (M12)

 

 

하루에 콩알 하나로 버티게 되었을 때 몸은 극도로 쇠약해 졌음을 말한다. 그래서 나의 창자가 나의 등에 붙어버려, 내가 창자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졌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가 만져졌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고행은 부처님의 고행상으로 표현 되어 있다.

 

 

 

THE EMACIATED GANDHARAN BUDDHA IMAGES

 

 

고행상을 보면 맛지마니까야에 표현 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하지만 뼈만 앙상하게 남은 고행의 결과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래서 이와 같이 고행을 했어도, 나는 인간의 상태를 뛰어 넘고, 고귀한 분에게 적합한, 탁월한 앎과 봄을 성취하지 못했다.” (M12) 라 하였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토굴에 가 보면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하였다. 그래서 초전법륜경에 따르면 극단적 고행에 대하여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S56.11) 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극단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 역시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가지의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양극단을 떠나 중도를 설한 것이다. 그 중도가 다름아닌 팔정도이다.

 

팔상도에서 설산수도상은 부처님의 고행기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북방불교에서는 눈내리는 설산에서 고행하는 부처님 상으로 정형화 되어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눈속의 부처님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초기경에서 설명된 것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부처님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이것이 간다라 양식으로 표현된 고행상이다.

 

스님들의 토굴에 가 보면 의외로 뼈가 드러난 고행상을 종종 보게 된다. 아마 수행 도중에 나태와 게으름, 권태, 무기력에 빠지면 스스로 경책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만일 현대판 팔상도를 새로 만든다면 설산수도상 대신 간다라식 고행상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육조두상을 신라인들이 가져 왔다는데

 

팔상전 바로 위에 금당이 있다. 또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야 한다. 계단에 올라 서면 정면에 보이는 전각이 금당이다. 법당이라 하지 않고 금당이라 하였다.

 

대웅전이라는 말 대신 금당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불교가 이땅에 도입 된지 몇 세기 되지 않은 시기에 사용되었다. 대웅전이라는 말은 후대에 사용된 말이라 보여진다. 그래서 금당하면 부처님을 모셔 놓은 대웅전과 같은 곳이다. 그러나 쌍계사 금당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육조 혜능대사의 두상이 모셔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은 불교방송에서 월호스님의 법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2004년 불교방송 불교강좌시간에 쌍계사 월호스님이 법화경 법문을 하였다. 불교에 입문한 첫 해이다. 이때 열심히 불교방송을 들었는데 그때 당시 월호수님은 국사암에 주석하고 있었고 승가대학 강주로 있었다. 월호스님 육조두상에 대하여 실감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육조 두상을 신라인들이 가져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셔 놓은 곳이 이곳 쌍계사 금당이라 하였다. 과연 사실일까?

 

지난 2012년 쌍계사를 순례하고 남긴 순례기에서 육조혜능정상의 진실이라는 글을 남겼다. 이야기는 부다피아에 있는 일지스님의 감춰진 불교이야기라는 글을 참고 한 것이다. 글에 따르면 육조 혜능의 머리를 훔쳐 온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전설 같은 이야기는 허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육조 혜능의 두상은 중국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07년 연합뉴스 (<중국 선종사찰 탐방>-④남화선사ㆍ국은사(종합) 기사에서 알 수 있다.

 

선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금당에 앉아 있는 법당보살에게 물어 보았다. 정말 저 탑안에 육조 혜능의 두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저 탑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금당 안에는 삼층석탑이 모셔져 있다. 석탑 안에 육조혜능 두상과 관련하여 무엇인가가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공개를 하지 않으니 정말 두상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 금당선원에서 안거를 보냈던 선일스님에 따르면 두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육조혜능의 두상이 쌍계사에 있다는 것은 쌍계사가 선의 종찰임을 말한다. 그러나 글러벌 시대에 육조두상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넌센스라 볼 수 있다. 설령 있다고 해도 부처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두상을 훔쳐 왔으므로 오계에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계율을 강조하는 쌍계사의 사풍과도 맞지 않는다. 금당 좌측 현판에 육조정상탑은 육조의 두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조를 기리는 석탑에 지나지 않는다.

 

금당 우측 현판에 세계일화종육엽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이 깨달은 자리인 불법의 세계(한 송이 꽃)가 초조 달마에서 6조 혜능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금당의 탑은 육조의 선사상에 대한 것이다. 육조의 선사상을 계승하고 구현하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절에 왜 파초를 심어 놓았을까?

 

쌍계사 선원 금당선원은 다른 선원과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금당을 중심으로 하여 동과 서의 두개의 선방이 있기 때문이다. 대게 커다란 선방에서 한데 모여 정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곳 금당선원은 금당을 중심으로 서방장과 동방장으로 나뉘어 있다. 서방장에 있는 입승스님이 죽비를 치면 동방장까지 들려서 행동이 통일 된다고 하였다.

 

해제철에 보는 금당선원에 정진하는 스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결제철이 되면 금지구역이 되어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의 세상이 될 것이다. 스님들이 머무는 곳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 파초가 우거져 있었다.

 

 

 

 

 

 

이곳 쌍계사의 특징은 파초가 많다는 것이다. 전각 이곳 저곳에 파초가 보인다. 그것도 한 두 구루가 아니라 무더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늘 푸른 느낌이고 남국에 온 것 같다. 그렇다면 절에 왜 파초를 심어 놓을까?

 

절에 가면 종종 파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부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아마 날씨 탓일 것이다. 그러나 남쪽 지방으로 내려 갈수록 절에서 파초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선원이 있는 곳이다. 선과 파초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이조 혜가스님과 관련이 있다. 이는 혜가의 단비로 유명하다.

 

혜가의 단비와 파초

 

선종에서 초조는 달마대사이다. 이조는 혜가대사이다. 달마대사가 소림사 인근의 굴에서 9년간 면벽수행할 때의 일이다. 이때 훗날 이조가 되는 혜가스님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다. 그러나 달마는 말대꾸도 하지 않고 수행만 하였다. 이에 혜가는 다음날 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자 달마는 혜가에게 너의 신심을 보여달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혜가는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그러자 얼어붙은 땅에서 파초잎이 자라나 그 잎으로 자신의 왼팔을 달마에게 건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절에 가면 선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청도 운문사 단비 탱화

 

 

단비에 대한 탱화를 보면 반드시 파초를 볼 수 있다. 그런 파초는 신심과 구도에 대한 열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선수행을 하는 절에서 법당탱화로 볼 수 있다. 또 절에 파초를 굳센 믿음과 구도의 상징으로서 파초를 재배하고 있다.

 

파초에 열매가

 

쌍계사에서 파초를 많이 볼 수 있다. 대웅전 앞, 팔상전 앞, 그리고 선방 앞 등곳곳에 파초가 있다. 그렇다면 쌍계사에서는 왜 이렇게 파초가 잘 자라는 것일까? 그것은 남해안 인근 남쪽지역에 위치해 있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쌍계사 터는 기온이 높은 곳이라 한다.

 

이곳 금당선원에서 안거를 보낸 바 있는 선일스님에 의하면 쌍계사 터는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대의 섬진강 주변 보다 기온이 2 내지 3도 높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쌍계사는 늘 푸르다. 더구나 파초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런데 팔상전 파초를 자세히 보니 열매가 맺어져 있다.

 

 

 

 

 

 

열매를 보니 작은 럭비공모양이다. 줄기와 닿은 부분을 보니 작은 바나나처럼 생긴 열매가 여럿 달려 있다. 그러고 보니 파초는 바나나나무의 한 종류라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는 바나나에 대하여 파초과에 속한다고 소개 하고 있다.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들

 

선종에서는 파초에 대하여 신심과 구도의 상징으로 중시하고 있다. 그런 파초는 초기불교경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오온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형성은 파초와 같고(sakhārā kadalūpamā)” (S22:95)라 표현 되어 있다. 이는 오온 중에 형성의 다발이 실체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파초는 가지를 벗기면 벗길수록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심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로 보지 않는다. 다년생 풀의 한 종류로 보고 있다. 바나나가 열매를 맺고 나면 죽어 버리듯이 파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파초와 대나무와 갈대는 자신의 열매가 자신을 죽이네. 수태가 노새를 죽이듯. 명예가 악인을 죽이네.(S6.12) 라는 게송이 있다.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이 바나나이다. 바나나와 파초는 같은 종이기 때문에 파초 역시 열매를 맺으면 죽게 된다. 이렇게 열매 맺으면 죽는 것에 대하여 악행으로 비유하였다.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오로지 스스로에게 생기나니 악한 마음을 지닌 자는 스스로를 죽이네. 대나무가 열매를 맺으면 죽듯이.(S3.2)라 한 것이다.

 

열매를 맺으면 죽게 되는 것이 파초를 비롯한 바나나, 대나무이다. 그러나 뿌리 밑둥치 주변에서 어린 파초나 바나나, 대나무가 새롭게 나와 자란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에서 파초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악행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비유적으로 설명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종에서 파초는 믿음과 구도의 상징이다.

 

파초의 비유를 보면

 

파초는 선종과 달리 초기불교에서는 부정적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오온에서 형성의 다발에 대한 것이다.

 

오온은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 이렇게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모두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이 중 형성의 다발에 대하여 파초의 비유를 들었다. 포말의 경에 따르면 파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한사람이 나무심이 필요해서 나무심을 구하려고 나무심을 찾아다니며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가 거기서 새로 자라 속대도 없는 높고 커다란 파초를 보고 그 뿌리를 자르는데, 뿌리를 자르고 나서 꼭대기를 자르고, 껍데기를 벗겨낸다고 하자. 그가 거기서 나무껍질도 얻지 못하거늘 하물며 나무심을 얻을 수 있겠는가?” (S22.95)

 

 

파초는 나무심, 심재, 속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높게 커다랗게 자라서 나무처럼 보이지만 줄기는 포피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형성의 다발 역시 마찬가지이다.

 

형성의 다발은 고유한 특성을 지닌 많은 현상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고유한 특성이란 탐욕, 성냄, 양심, 수치심과 같은 52가지 마음부수를 말한다. 이 중에 느낌과 지각을 제외한 50가지가 형성의 다발에 속한다. 이런 형성(마음부수)은 각기 고유한 성질이 있어서 마음상태를 결정한다.

 

대상을 보았을 때 분노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밀쳐 내려 하는 고유한 성질을 가진 성냄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50가지에 대하여 마음부수, 형성, 상카라들이라 한다. 오온에서 형성의 다발은 이렇게 50가지 고유한 마음부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파초 껍질로 비유하고 있다.

 

파초의 껍질을 벗겨 내면 심재가 나오지 않듯이 형성의 다발은 실체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실로 형성의 실체일 수 있겠는가?”(S22.95) 라고 말씀 하셨다.

 

대승불교가 시대에 따라 진화 해 온 것이라면

 

쌍계사에 가면 안은하다. 그것은 지형과 가람배치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는 쌍계사는 언제 가 보아도 정겹다. 무엇 보다 초록이 반갑다. 남쪽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상록수와 곧게 뻗은 대나무가 반겨준다. 그런데 가장 이국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파초이다. 이곳 저곳에 있는 파초를 보면 남국에 온 것 같다. 실제로 기온이 다른 곳 보다 이삼도 높다 하니 특이한 지역임에 틀림 없다.

 

쌍계사에서 본 것 중에 파초가 인상적이었다. 혜가단비에서 알 수 있듯이 파초는 선의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절집에서 특히 선원이 있는 절집에서 많이 재배한다. 이는 수행자로서 신심과 구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는 파초는 부정적으로 묘사 된다. 악행을 하여 그 과보로 받는 것에 대하여 파초에 열매가 맺는 것으로 묘사 되는가 하면, 오온에서 형성의 다발을 설명할 때 실체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파초의 비유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다. 오래 전에 그려진 팔상도 설산수도상을 보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가 시대에 따라 진화 해 온 것이라면 설산수도상 대신 간다라식 고행상으로 대체 해야 하지 않을까? 쌍계사 순례를 하면서 과거의 유산에 대하여 객관적 관점으로 보면 폐기 해야 될 것, 개선해야 할 것 등이 나타난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전통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모든 것이 오픈되고 공유되는 인터넷 시대, 그리고 교통의 발달로 인한 글로벌 시대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2015-11-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