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썻노라! 백권의 책을 예술제본 하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13. 08:01

나는 썻노라! 백권의 책을 예술제본 하고자


요즘 일감이 없다. 철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글을 쓰는 것은 기본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인터넷잡문을 말한다.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이 잡혀 지지 않는다. 잡담 비슷한 것이고 좋게 봐주면 세속철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눈이 높아진 것 같다. 빠알리삼장을 접하니 세상의 이야기는 잡담처럼 보이고 철학도 세속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탐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이 없으면 대상이 외부로 향하기 쉽다. 감각으로 향하기 쉬움을 말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과 같은 감각을 말한다. 그래서 감각을 즐기는 삶이 되기 쉽다. 이를 흔히 감각적 욕망이라고 한다. 눈으로는 매혹적인 형상을 하고, 귀로는 아름다운 소리를 탐하는 것 등을 말한다.

감각을 탐하다 보면 허망해진다. 실체도 없는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것과 같다.

읽어야 할 책이 많다. 선물로 받은 책이 꽤 된다. 책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독후기를 남겨야 한다. 그럼에도 방치해 놓고 있다보니 세월만 흘러 간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읽어 보려 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양이 차지 않는다. 경전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왔다. 일감이 없는 날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유튜브이다. 정치관련 유튜브는 손절했다. 잡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사잡담이 대표적이다. 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뒷담화이기 쉽다.

 

뒷담화는 사람을 안주 삼는 것이다. 듣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허망한 것이다. 끊임없이 관심 끌기 위해 인물이야기 해 보지만 갈증만 날 뿐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서는 멀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팔정도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한다. 팔정도에 삼마와짜가 있다. 정어(正語)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언어인가? 네 가지가 있다. 무사와다, 삐수나야, 파루사야, 삼팝빨라빠가 키워드이다. 이는 거짓말, 이간질, 거친말, 꾸며대기를 말한다. 잡담을 하다 보면 이 네 가지에 걸리게 되어 있다.

정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뒷담화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인물평을 하다 보면 장점 보다는 단점을 말하기 쉽다. 자연스럽게 이간질이 되어 버린다.

수행자들 사이에서도 인물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근황을 물었을 때 인물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정말 그런지는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듣고 나면 이미지에 대한 상이 형성되어 있다.

철철 남는 시간에 글을 정리했다. 블로그에 쓴 글을 파일에 담는 것을 말한다. 쓴 글이 인터넷에 보관되어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자료가 어느 날 랜섬에 걸려 불능이 되었을 때 무상함을 느꼈다. 십년 작업했던 파일이 못쓰게 되고 십년 찍었던 사진이 사라졌을 때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은 안심해도 될까? 누군가 해킹해서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올해 들어서 다운 받는데 박차를 가했다. 틈만 나면 다운 받아 놓는 것이다. 그러나 글이 너무 많다. 2006년부터 쓴 글이 5,748개 가까이 되어서 다운 받는데 절대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블로그에는 여러 카테고리가 있다. 일상에 대해 쓴 것이 가장 많다. 글은 2,527개이다. ‘진흙속의연꽃카테고리로 묶어 놓았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담마에 대한 것으로 1,103개이다. ‘담마의 거울카테고리로 묶어 놓았다. 이 두 카테고리 글은 블로그 글 대부분을 차지한다. 2021년 현재 글까지 모두 다운 받아 놓았다. 나머지 카테고리 글도 시간만 되면 다운 받는다.

어제는 국내성지순례에 대한 카테고리 글을 다운 받았다. 2007년부터 쓴 것으로 200개의 글인데 5권 분량의 파일이 되었다. 바로 이전 작업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후기를 작성한 카테고리가 있는데 116개의 글로 3권 분량의 파일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다운 받은 글은 88개 파일에 달한다. 한파일은 사오백 페이지가량 된다. 이 중에서 18개 파일은 책으로 만들었다. 남은 카테고리 글을 모두 다운 받으면 파일이 100개가 될 것 같다. 백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목차를 만드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다운 받는 것과 비교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편집이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책같이 만들려면 서문을 써야 한다. 백권의 책에 대해서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쓰는 것은 단기간에 되지 않는다. 몇 년 걸릴 것 같다. 동시에 pdf파일로도 만든다. 원하는 사람에게 이메일로 무상으로 줄 것이다.

글을 다운 받으면 뿌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 시절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느낌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결과로서 남은 것에 대해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일과 반을 바쳐 썼기 때문에 애착이 있기도 하다. 특히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한 담마에 대한 글을 보면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감각을 즐기며 산다. 특히 먹는 것을 즐긴다.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을 것이다. 인생을 먹는 것으로 보냈을 때 나는 먹었노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술독에서 살았다면 나는 마셨노라!”가 될 것이다. 누군가 일생동안 달리는 삶을 살았다면 나는 달렸노라!”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먹은 것은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똥이 되어서 나온다. 물론 몸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을 때 남는 것은 무었일까? 맛에 대한 추억은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에만 있을 뿐이다. 남과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은 써 놓으면 남는다. 인터넷글쓰기도 남는다. 무엇보다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블로그에 올린 글이 이곳저곳에 퍼져 있다.

글을 쓸 때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또한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고자 한다. 이제까지 쓴 글이 그랬다.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뜻에서 반드시 날자와 함께 서명을 한다. 이렇게 15년을 하루 같이 썼다. 쓰다보니 글이 6천개 가까이 되었고 파일로 만들어 보니 100개가량 될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썼노라!”라고 외칠 수 있다.

흔히 말하길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다. 대부분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남기는 것이 있다.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학생은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저는 기필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유전자는 남긴다. 그것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할 바를 다 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업()을 남기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서 신체적 행위, 언어적 행위, 정신적 행위를 남기는 것이다.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의 상속자인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살 수 없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 일생동안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면 역시 먹는 것에 대한 과보를 받는다. 감각적으로 살았다면 감각적 욕망에 대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감각에 의존하는 존재로 태어나기 쉽다. 그러나 마음을 내부로 돌려 내적인 기쁨과 행복, 평화를 얻었다면 그 과보를 받을 것이다. 인간을 뛰어 넘는 세계에 태어날지 모른다.

일생을 먹는 것으로 보낼 수 있다. 일생을 감각의 즐거움으로 보낼 수 없다. 마음이 늘 외부대상에 향해 있으면 감각적 삶이 되기 쉽다. 감각적 삶을 살다 보면 남는 것이 없다. 남는 것이라고는 자손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을 내부로 돌리면 충만해진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느끼듯이, 마음을 내부로 향하면 내적 즐거움이 있다. 외적 즐거움과 비할 바가 아니다. 거친 감각적 즐거움과 비교되지 않는다. 섬세하고 잔잔한 즐거움이 있다. 글쓰기도 그런 것 중의 하나라고 본다.

틈만 나면 썼다. 기록을 남기고자 쓴 것이다. 이름은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기록은 남는다. 그것이 반드시 책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 인터넷 시대에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면 출간된 것이나 다름없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행위는 공유를 전재로 하는 것이다. 모두 가져 가라는 것과 같다. 하루일과 반을 할애하여 애써 작성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모두 가져가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모두 다 가져 가십시오. 모두 다 그대들의 것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글쓰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올린 글이 인터넷의 바다에 떠 돌고 있다면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누군가 가져 가서 활용했다면 역시 기록으로서 남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허전하다. 그래서 책의 형태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일생에 걸쳐 백권의 책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책이다. 문구점에 인쇄 의뢰하여 만드는 것이다. 만들되 예술작품처럼 만들고자 한다. 오래된 고서처럼 가죽표지로 만들고자 한다. 가죽제본 하는 방법을 배워서 예술제본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제본된 책이 책장 가득 있는 것을 상상해 본다. 글 쓰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책을 만드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소일 거리로 취미로 책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백권의 책을 책장 가득 채웠을 때 기록을 남겼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2021-04-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