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48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말한다. 인식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르게 분별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접하고 있는 세상은 나의 여섯 가지 감각영역에 따른 것이다. 눈이 있어서 세계를 보고 귀가 있어서 세계를 듣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눈이 있어서 세계가 열리고 귀가 있어서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한순간에 두 개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의 경우 시각대상과 만나면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래서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M148) 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

담마의 거울 2021.06.30

해남 황토에서 생산된 감자 맛은 어떨까?

해남 황토에서 생산된 감자 맛은 어떨까? 감자가 도착했다. 무려 10키로나 된다. 비용은 택배비 포함 17,000원이다. 거저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페친(페이스북친구) 신평호 선생이 보내 준 것이다. 요즘 감자철이다. 하지감자라 하여 하지를 전후하여 감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자 한박스가 이미 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페이스북에서 20박스 한정 판매라는 글을 보고서 속된 말로 "잽싸게" 구매했다. 오늘 택배로 받은 감자는 해남감자이다. 황토감자라 해야 할 것이다. 해남은 황토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칠팔년전 해남으로 귀촌한 친구부부가 있다. 산이면에서 해남 특산품 밤호박과 꿀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다. 매년 6월이 되면 밤호박 홍보 글을 써주고 매년 10월이면 꿀고구마 홍보 글을 써 ..

진흙속의연꽃 2021.06.30

사이비정법이 출현할 때

사이비정법이 출현할 때 한국불교에 이상한 풍조가 있다. 경전을 근거로 해서 글을 쓰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마음과 마음으로, 뜻에서 뜻으로 전승되는 것이라며 문자로 전승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견월망지’라 하여, 달을 가리켰으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본다고 말한다. 한국불교에서 빠알리니까야는 거의 완역되었다. 쿳다까니까야 계열의 일부 몇 개 경전을 제외하고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심오한 내용도 있지만 현실적 삶에 대한 것들도 많다. 이런 가르침을 지금 여기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대의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법이 오염되기 때문이..

담마의 거울 2021.06.29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 어떻게 써야 할까?

오늘 하루 주어진 시간 어떻게 써야 할까?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이전에 일어 나야 한다. 6시가 되면 이미 늦다. 새벽은 사색의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떠 오른 생각을 지켜 본다. 강한 생각이 있다. 마치 위빠사나 수행에서 강한 대상을 마주 하는 것과 같다. 위빠사나 수행은 관찰 대상이 있다. 몸관찰, 느낌관찰, 마음관찰, 현상관찰을 말한다. 호흡으로 몸관찰 하다가 통증이 발생되면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느낌 관찰하는 것이다. 생각도 관찰 대상이 된다. 사띠를 놓쳤을 때 생각이 떠 오른다. 떠 오른 생각은 흘러 간다. 이럴 때 현상관찰 해야 한다. 생각도 법이기 때문이다. 생각에도 강한 것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은 강한 것을 대상으로 한다. 대상의 생멸을 관찰해야 한다. 부정적 생각이 일어 났..

숲속 저수지에서

숲속 저수지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아득하다." 법구경 60번 게송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어리석은 자에게 왜 윤회는 아득할까? 주석을 참고하지 않으면 그 뜻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지혜로운 자에게 윤회는 없다. 있어도 몇 생 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가 있다. 어리석은 자는 윤회하는 줄도 모르고 산다. 태어나 보니 강아지일수도 있고 돼지새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가 아득한 것은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이다. 주석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유익한 것을 모르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종식시킬 수 없고, 윤회를 끝내는 서른일곱 가지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길을 모른다.”(DhpA.II.12)라고 했다...

진흙속의연꽃 2021.06.28

늙어서 슬프다고 하는데

늙어서 슬프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세상을 볼 수 있는 창 중의 하나인 페이스북에서는 늙음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가 많다. 시인의 시를 보면 늙음과 슬픔이 주제이다. 기승전결이라는 말이 있는데 ‘기승전슬픔’으로 끝나는 것 같다. 늙음에 대하여 일관되게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늙어 가는 것을 자조적으로 묘사한 글이다. 늙어 버린 자신을 보면서 “어떻게 하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표현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본다면 늙음이라는 것은 ‘삶의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부처님도 늙음에 대해서 말했다. 부처님은 나이가 들어 노쇠한 자신을 발견하고서 “부끄러워할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 주는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담마의 거울 2021.06.28

나는 블로그 권력이 되었나?

나는 블로그 권력이 되었나? 평온한 아침이다. 일요일임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터로 달려 간다. 일터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차분하다. 절구질하여 절구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자판을 두두리며 하루일과를 또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누구도 예외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페이스북을 열어 본다. 글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반가운 이름을 보면 새로운 알림을 본다. 이어서 어제 올린 글에 대하여 공감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본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생소한 이름도 있다. 반가운 이름을 보면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다. 글이 무척 길다. 어제 쓴 글도 A4로 네 장 되는 긴 길이의 글이다. 이런 긴 글을 누가 읽어 줄까?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에스엔에스(SNS)에서는 ..

진흙속의연꽃 2021.06.27

세속출가를 위하여

세속출가를 위하여 욕망을 욕망으로써 극복할 수 있을까? 마치 독을 독으로써 제독하듯이 쾌락을 쾌락을 통해서 쾌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수행승들이여, 잠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곡주나 과일주 등 취기가 있는 것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성적인 교섭은 즐기더라도 만족은 없는 것이다.”(A3.104) 아무리 즐겨도 만족이 없는 것 세 가지가 있다. 경에서는 잠, 취기 있는 것, 섹스를 말한다. 마치 마셔도 마셔도 갈증만 나는 갈애와도 같다. 여기 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 욕망에 지배된 것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노예가 ..

강연회 2021.06.26

견월망지(見月忘指)는 담마에 대한 무지

견월망지(見月忘指)는 담마에 대한 무지 견월망지,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이다. 달을 보자는데 대체 무엇을 보자는 것일까? 참나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종정스님도 참나를 말한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煎 本來面)이라 하여, 부모가 있기 전에 어떤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 어느 교회에서 법문했는데 영어로 "What is your true self?"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진제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왜 감격하고 감동했을까? 진제스님의 참나에 대한 법문을 보고서 어느 기독교인은 바이블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에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분..

담마의 거울 2021.06.25

죽음의 시간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죽음의 시간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언제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 꺼려 한다. 애써 피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남의 일인 것처럼 여긴다. 죽음이 은폐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도 죽음을 볼 수 없다. 직계 가족이 아닌 한 죽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저 건너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천년만년 갈 것처럼 보인다. 무병장수를 꿈꾸어 보지만 유튜브에서 죽음에 대한 프로를 보았다. 불교TV(BTN)에서 ‘지혜의 다락방’을 본 것이다. 한림대 ..

수행기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