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160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2, 치아사리의 수난, 폴론나루와 불치사 유적에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2, 치아사리의 수난, 폴론나루와 불치사 유적에서 여행기 쓰기가 쉽지 않다. 한편의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수많은 검색이 이루어진다. 이를 종합하여 하나의 글로 만들어 내야 한다. 여기에다 구도의 열정까지 추가해야 한다. 나는 왜 이런 여행기 작성하는데 집착하는 것일까?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다. 해외를 동네 마실 다니듯이 다녀 올 수 있다. 단지 보고 듣고 즐기는 여행이 된다면 여행기는 필요 없다. 굳이 여행기를 작성한다면 사진 몇 장 남기면 될 것이다. 여행기를 남기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책을 읽을 때 새기며 읽는 것과 같다. 마치 무협소설 읽듯이 책을 읽을 수 없다. 경전 읽듯이 책을 읽어야 한다. 새기며 읽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글로 남기는 것이다..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1, 불교개혁을 이룬 위대한 군주 파라크라마바후, 폴론나루와 왕궁유적에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1, 불교개혁을 이룬 위대한 군주 파라크라마바후, 폴론나루와 왕궁유적에서 어떻게 해야 여행기를 잘 쓸 수 있을까?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는 써도 그만이고 안써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흔적을 남기는 것은 의무감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폴론나루와에 대하여 써야 한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나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와 관련된 책도 읽어 보았지만 단편적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얻는 것이다. 폴론나루와를 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 결과 상당한 자료를 확보 했다. 무엇을 쓸 것인지에 대한 방향도 정해 졌다. 모두 4부작이 될 것 같다. 그것은 왕궁구역, 불치사가 있었던 사원구역,..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0, “돈, 돈”“빨리, 빨리”라고 말하지 않는 스리랑카 사람들, 길거리에 시골식당에서 점심을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0, “돈, 돈”“빨리, 빨리”라고 말하지 않는 스리랑카 사람들, 길거리에 시골식당에서 점심을 성지순례라 하여 반드시 엄숙하고 경건함 만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순례를 다녀도 먹어야 산다. 근사한 식당에서도 먹을 수 있고 길거리 음식점에서 먹을 수도 있다. 이번 순례기는 어느 시골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리랑카에서 현지 시점은 2022년 12월 13일(화) 점심 무렵이다. 순례자들을 태운 승용차는 미힌탈레를 출발하여 폴론나루와로 향했다. 미힌탈레에서 폴론나루와까지는 100키로 거리에 1시간 50분가량 걸린다. 거의 두 시간 걸리기 때문에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쾌청했다. 왕복 2차선의 국도 주변은 전형적인 스리랑카 시골풍경..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9, 미힌탈레 산정에서 밀림의 지평을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9, 미힌탈레 산정에서 밀림의 지평을 여행기 쓰기가 쉽지 않다. 자료를 찾아 보고 검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주로 성지순례다니기 때문에 경전 문구도 넣어 주어야 한다. 이런 여행기를 쓰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고생을 사서 하고 있다. 여행기를 쓰는 것은 고통이다. 누가 쓰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기는 당연히 써야 되는 것으로 의무 지우고 있다. 스리랑카 성지순례를 다녀온지 한달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나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행기를 다 써야 여행이 끝난다. 모두 40편 예상한다. 지금까지 18편 썼다. 앞으로 한달 더 써야 할 것 같다. 성지중의 성지 미힌탈레를 향하여 순례자들은 아누라다푸라 시내를 빠져 나왔다. 승용차에는 네 명 있다...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8, 스리랑카 비구니 계맥은 복원되었을까? 위하라마하데비승원에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8, 스리랑카 비구니 계맥은 복원되었을까? 위하라마하데비승원에서 여행을 가면 반드시 기록을 남긴다. 후기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귀중한 시간과 비싼 돈을 들여서 여행한 것이다. 어찌 헛되이 버릴 수 있을까? 기록을 남겨 두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 바다에 띄워 놓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연 있는 사람이 읽어 보게 될 것이다. 스라랑카 현재 시점은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 아침이다. 아누라다푸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날이 밝았다. 날씨는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이다. 건기이어서일까 하늘은 푸르고 녹음은 우거졌다. 이국적인 야자수가 이곳이 이지(異地)임을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출근길 활력넘치는 아누라다푸라 게스트하우스는 녹음이 우거진 곳에 있다. 평일 아침이..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7, 기도 대신 불공(佛供)을, 자야 스리 마하보디 보리수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7, 기도 대신 불공(佛供)을, 자야 스리 마하보디 보리수 해외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 일년에 한번은 외국 성지순례하기를 발원했다. 그 결과 몇 군데 성지순례했다. 어느 나라가 가장 마음에 들까? 스리랑카를 순례하고 나니 다른 나라는 시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불교의 발생지 인도도 그다지 큰 감동이 아니다. 사대성지 또는 팔대성지 근처에만 불교가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 현지 시점은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제따바나 불탑을 보고 난 후에 보리수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는 ‘스리 마하보디(Sri Maha Bodhi)’사원에 있는 보리수를 말한다. 이 사원의 보리수에 대하여 ‘자야 스리 마하보디(Jaya Sri Maha Bodhi)’라고도 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6,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폐사지 제따바나라마야에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6,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폐사지 제따바나라마야에서 즐기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치앙마이 한달살이 또는 두달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팔자 좋은 사람들이리고 생각한다. 은퇴자들이 풍족한 연금으로 물가가 싼 나라에서 왕족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 세계를 유랑하면서 몇 달씩 할 일 없이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즐기는 여행을 단호히 거부한다. 여행은 구도여행이 되어야 한다. 해외에 나가는 것은 순례여행이기도 하지만 구도여행이기도 하다. 그 옛날 구법승이 그랬던 것처럼 구법승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번 스리랑카 성지순례도 그렇게 하고자 했다. 쌍둥이 연못에서 악어를 스리랑카 현지에서 날자는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아..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5, 부처님은 불상에 동의했을까? 아바야기리 사마디불상을 보고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5, 부처님은 불상에 동의했을까? 아바야기리 사마디불상을 보고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Dhp.204) 법구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열반은 지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왜 행복이라 했을까? 행복은 즐거운 상태를 말라는데 적멸의 고요에 대해서 왜 궁극적 행복이라고 했을까? 순례자들은 아바야기리 대탑을 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스리랑카 현지인 가이드는 사마디불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대탑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럼에도 차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었다. 숲속에 덩그러니 불상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마디불상1'이라고 한다. 현지 시점은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이날 점심이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아누라다푸..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4, 아바야기리(無畏山寺) 대탑은 왜 붉은색일까?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4, 아바야기리(無畏山寺) 대탑은 왜 붉은색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기를 남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도 그랬다. 만약 옛날에 여행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는 줄 조차 모를 것이다. 다만 남겨진 유적을 통해서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여행을 가면 여행기를 남긴다. 이런 일은 나에게 있어서 의무적인 것이다. 여행기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다. 일상에 대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자가 해외여행과 같은 찬스를 놓칠 수 있을까? 이번 스리랑카 순례 역시 후기 형식으로 여행기를 남기고 있다. 스리랑카 현지시점은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아바야기리 사원(無畏山寺)의 식당, 연못, 불상 유적지 등을 둘러..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3, 법현스님의 구도열정의 현장 아바야기리 유적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2, 법현스님의 구도열정의 현장 아바야기리 유적 순례자들은 왕궁유적에서 문스톤을 보고 난 다음 식당 유적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구역이 넓어서 이동할 때마다 렌트한 승용차로 이동해야 했다. 왕궁 유적에는 석축물과 붉은 벽돌만 남아 있었다. 이동한 식당 구역 역시 석축물과 벽돌뿐이었다. 현지 시각은 2022년 12월 12일 중간 오후이다. 아바야기리 식당 유적을 보았을 때 그 규모에 놀랐다. 가이드에 따르면 아바야기리에 5천명의 스님들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석재로 만든 커다란 구유였다. 입간판 설명에 따르면 식당유적은 BC 1세기 때부터 네 단계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식당유적은 10세기 때 까쌋빠 왕(914-923 A.D) 비문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