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들이 입바른 소리해도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한다. 자신이 속한 진영에 대하여 비판하면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깜냥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자가 뱉어내었을 때 발끈한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작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톡방에서 어느 교수의 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최근 논란이 된 ‘빼고’에 대한 글이다. 이런 글에 대다수는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했다. 글쓴이는 무모하든지 아니면 정략적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자기과시를 한 것으로도 보인다. 마치 조회수 올리려고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내는 것 같다. 상대방을 자극시켜 이익을 보자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지식인들이 있다.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주로 글로서 비판한다. 입으로 하는 경우도 많다. 아는 것이 많으니 말 할 것도 많을 것이다. 대체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 헌법을 들먹이며 언론자유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여론을 끼워 넣는다. 너무 진영논리로 나가면 중도층 표심을 잡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현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쉬운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식인들은 본래 말이 많다. 그러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들은 지식인들 보다 행동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5.18 당시 도청을 사수한 사람들 대다수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었다. 작년 서초동과 여의도에 나온 사람들 대다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의는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다. 모두가 분노하면 그것이 정의인 것이다. 지식인들은 말은 잘하지만 목숨까지 거는 것 같지 않다. 살아 남아서 후대에 전할 의무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인들의 지적은 뼈아프다. 많이 알기 때문에 한수 앞을 보는 혜안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어떤 지식인은 이제 민주화 이후를 보자고 한다. 산업화도 이루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니 이제는 그 다음을 보자는 것이다. 이를 계절의 비유로 설명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온다. 이렇게 계절은 가만 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산업화가 가고 민주화가 왔다. 민주화가 왔으니 그 다음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민주화만 잡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와 같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본다면 민주화를 붙잡고 있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마치 계절의 변화를 거부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마치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산업화시기의 사람들이 그때를 못잊어 그시절로 되돌아가자고 했을 때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주화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때 당시만 말한다면 피곤해 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쉽다. 지식인들의 뼈아픈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과거의 상처가 너무 크기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아직은 아니다. 지식인들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그들이 다시 들어올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켜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회한과 눈물의 세월을 보낼지 모른다. 지식인들의 말대로 순순히 내 줄 수 없다. 그렇게 하기에는 아직 덜 여물었다. 이대로 한세대는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정치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작년말과 연초에 경험한 바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그토록 외쳤던 것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다. 언제 어떻게 또 바뀔지 모른다. 제도개혁으로 확실히 묶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지식인들이 원론적 이야기를 하지만 당분간 접어 두어야 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뉴스에 관심가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투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투표하는 행위야말로 정치적 행위의 결정판이다. 아무리 정치에 초연해한다고 하지만 투표하면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은 투표에 관심 없을 것이다. 그들은 누가 되든 상관없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만 생각하면 된다. 이민 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된다. 투표권이 없는 사람이 남의 나라 정치에 관심 가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많다. 외국인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나라의 주인이 바뀌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주인이 되든, 미국이 주인이 되든, 중국이든 자신과 무관한 일로 볼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무관심할 것이다. 판단능력이 없어서 투표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산업화시기를 지나서 민주화시기를 살고 있다. 지식인들은 민주화 이후를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제도해야 한다. 제도개혁을 하지 않고 의식개혁만 이야기한다면 노무현의 비극이 재현될 것이다. 그래서 힘을 길러야 한다. 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올 봄에 일전을 치루어야 한다. 또다시 좌절과 회환과 눈물의 시기를 살 것인지는 선택에 달려 있다. 지식인들이 제아무리 입바른 소리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몰입하면 애만 탄다. 무관심하면 외국인이나 다름없다. 불가원불가근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너무 가까이해서도 곤란하고 너무 멀리해서도 안된다. 평소 은인자중하지만 때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한다. 투표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한일전이 열리면 열렬히 응원하다. 한일전에 관심 갖는 것처럼 때로 선거를 축구경기 보는 것처럼 관전할 필요도 있다.
2020-02-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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