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도 꿰어야 보배, 2008년 하반기 글쓰기를 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늘 가방에는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늘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왼쪽 바지 주머니에는 늘 디카를 가지고 다녔다. 늘 찍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다만 디카가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법회에 참석하면 노트를 꺼내 든다. 법문을 노트해 놓으면 나중에 글을 쓸 때 도움이 된다. 노트를 보면서 그때 상황을 떠 올리면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받아 적을 것이 없는 법문이 있다. 즉흥적 법문이 그렇다. 법문이라고 하면 부처님 말씀 한마디 정도는 있어야 하나 자신의 신변이야기나 가십 등을 이야기 하는 경우 받아 적을 것이 없다.
강연에 가면 반드시 노트한다. 주제를 가지고 강연하는 경우 받아 적을 것이 많다. 글로서 정리하면 일석삼조가 된다. 현장에서 듣고, 노트한 것을 보면서 회상하고, 글쓰기 하면서 정리가 된다. 자연스럽게 내것이 되는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여행 가면 반드시 노트한다. 이동 중에 가이드가 열심히 떠드는데 귀를 쫑긋하며 받아 적는다. 잘 들리지 않으면 물어 본다. 대부분 듣는둥 마는둥 한다. 심지어 조는 사람들도 있다. 현장에서는 가이드 뒤를 바싹 따라다니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메모해 놓은 것은 나중에 여행기를 작성할 때 활용된다. 이제까지 국내성지순례이든 해외성지순례이든 모든 여행에서 여행후기를 작성했다.
하루 한 개씩 의무적 글쓰기를 하다 보니 모든 것이 글쓰기 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두 다 쓸 수 없다. 그날 일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경전 문구를 곁들여 쓴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경전을 열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답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매일 의무적 글쓰기를 하다 보니 글이 쌓이고 쌓여서 5천개가 넘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글쓰기 14년에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책으로 펴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파일로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는 2008년 하반기에 쓴 것을 책으로 만들었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으로 블로그 ‘진흙속의연꽃’ 폴더에 있는 것이다. 2008년 7월 1일부터 2008년 12월 31일까지 6개월간 쓴 글이다. 모두 130개의 글이다.
2008년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 당시 이명박 정부하에서 불교가 탄압 받던 시기였다. 지관총무원장 시절 불교는 수난의 시대였다. 광우병 촛불의 여파로 불교계에서도 시국법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른바 7.4시국법회를 말한다.
7.4시국법회에 참석했다. 조계종에서는 종단차원에서 참여했다. 문수스님 소신공양도 있어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던 때 였다. 그때 당시 수경스님이 연설했는데 마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었다.
7.4시국법회는 불교도들이 처음 대규모 시위를 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개신교 장로 대통령이 탄생함에 따라 위기 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에 자신이 생겨서인지 불교계에서는 더 큰 집회를 준비 했다. 이것이 이른바 8.27범불교도 대회이다.
8.27불교도 대회 때 삼십만명이 모일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 정도로 많이 모일 수 있을까? 의문과 함께 지켜 보았다. 날자가 다가올수록 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역사적 순간이 될지 모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8.27범불교도대회 후기에서 이렇게 써 놓았다.
“2시에 시작된 대회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 찬 모습이다. 프라자 호텔은 물론 소공로 대한문 태평로 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발디딜 틈도 없다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소공동에서 대한문으로 가기 위해서 가로 질러 가야 하는데 오로지 사람 하나 다닐 정도만 길이 있어서 빠져 나가지 못할 정도로 빼곡 하였다. 이런 인파를 보면 주최측 추산 20만명 이니 경찰추산 6만명이니 하는 말이 의미가 없다. 이미 한계를 넘어 버린 마당에 몇만 보태는 것은 의미 없는 셈법인 것이다.” (8.27 범불교도대회, 지관스님도 바닥에 앉아, 2008-08-28)
8.27불교도대회를 블로그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사진과 동영상도 곁들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불교계 대규모 시위였다. 총무원장 지관스님도 바닥에 앉아서 경청했다. 지관스님 옆에는 그때 당시 종회의장이었던 자승스님도 보인다. 자승스님은 나중에 2선까지 하면서 8년동안 총무원장을 했다. 한국불교가 크게 후퇴한 시기가 되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대회가 끝난 후에는 수만명의 불교인들이 조계사까지 행진했다. 오랜만에 불교의 한을 푼 듯한 느낌이었다. 평일이었음에도 일부러 시간 낸 것은 역사적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도 하반기에 있었던 일상을 책으로 엮었다. 모두 640페이지에 달한다. 이제까지 12권째 책을 냈는데 가장 페이지수가 많다. 2006년부터 쓰기 시작한 글쓰기가 2년째 되었을 때 본격화된 듯하다. 하루 일과 중의 반은 글쓰기로 연소했는데 그 습관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아마 이후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2020-07-02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0) | 2020.07.14 |
---|---|
여름철 노출의 계절에 (0) | 2020.07.07 |
자연에서 삶을 꿈꾸지만 (0) | 2020.06.30 |
불교를 종교로 갖는 이유 (0) | 2020.06.26 |
사진은 폭력이다 (0) | 2020.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