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맛본 것은
먹거리를 보면 먹기 전에 올리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는다.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에스엔에스시대에 사람들은 먹거리를 올린다. 근사하게 차린 식단을 페이스북에 올려 놓았을 때 그림의 떡이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시대이다. 유튜브에는 볼거리로 넘쳐난다. 대부분 쓰레기들이다. 마치 오물장에서 잡동사니를 보는 것 같다. 그런 것들 중에서 먹방이 있다.
유튜브에서 본 먹방은 놀라웠다. 그 작은 몸에 다 들어 간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몇십만원치를 먹었다고 자랑한다. 사람들은 먹는 모습을 보고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야동을 보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음식만 반찬일까? 이른바 ‘식식(識食)’이라는 것이 있다. 지혜의 반찬을 말한다. 근사하게 한상 차려 놓은 것보다 사구게하나라도 올려 놓은 것이 더 풍요롭다. 이를 가르침의 밥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가르침도 반찬이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우이(Imee Ooi) 음악을 들으면 힐링되듯이, 좋은 음악은 훌륭한 치료제가 된다. 우울할 때 약을 먹는 것보다음악을 들어서 기분전환 되었다면 약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사구게 하나로 인해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미 가르침의 반찬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감각적인 것을 좋아한다. 보고 듣고 맛보고 감촉을 즐기는 것이다. 음식만한 것이 없다. 음식은 오감을 만족시킨다. 그러나 에스엔에스에 올려져 있는 음식은 맛볼 수도 감촉할 수도 없다. 오로지 볼 뿐이다. 시각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다. 그럼에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도 작품이다. 정성들여 만든 만든 음식은 예술작품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단지 ‘잘 먹었다’라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것이 아쉬워서일까 사람들은 사진으로 남겨 놓는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근사하게 한상차린 음식은 먹어야 한다. 눈으로라도 요기해야 한다. 먹거리방송을 보면 군침이 돈다. 남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런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껴 먹방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눈으로 먹는 것도 좋지만 가르침으로 먹는 것이 더 맛 있다. 가슴을 울리는 것을 넘어서 인격의 변화를 초래하는 사구게는 최상의 가르침의 반찬이다. 그래서 “가르침의 맛은 일체의 맛을 이긴다.”(Dhp.354)라고 했다.
“오늘 내가 맛본 것은
백 가지 맛의 청정한 음식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이니,
앎과 봄이 한량없으신,
고따마 부처님께서 설한 가르침이다.”(Thag.91)
2020-09-18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약돌에서 그 섬의 기억을 (0) | 2020.09.22 |
---|---|
군산에서 접한 식민지 문화유산 (0) | 2020.09.21 |
햇살 가득 빛나는 아침에 (0) | 2020.09.13 |
그녀의 십자가 목거리 (0) | 2020.09.13 |
그 사람을 이익 되게 했을 때 (0) | 2020.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