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더기 자갈에서 그 섬을
대회가 필요하다. 늘 보는 대상이지만 깊은 대화는 하지 못한다. 가장 좋은 것은 일대일로 차(茶)를 마시는 것이다. 한사람은 팽주가 되어 끊임없이 서비스한다. 차가 매개가 되어 대화는 끊임없이 전개된다.
깊은 대화를 할 때는 커피보다 차가 더 났다. 커피는 다 마시면 일어나야 하지만 차는 리필되기 때문에 시간의 제한이 없다. 때로 침묵도 대화가 된다. 커피잔을 마주했을 때 말이 끊기면 어색하다. 그러나 찻잔을 대하면 무언의 대화가 된다. 팽주는 차를 따라주는 액션을 취한다. 가족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족여행을 떠났다. 1박2일로 고군산군도를 다녀왔다. 대장도 섬마을팬션에서 하루밤을 보냈다. 이동중에 대화를 했다. 그렇다고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적 이야기이다. 길이 막히면 이야기할 거리는 더 많아 진다. 사소한 것도 좋은 이야기거리가 된다. 평소 단답형으로만 끝나던 대화가 다소 길어진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이것도 대화소재가 된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말 하는 것이 된다. 가족간의 대화는 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패키지여행은 편리함만을 추구한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서비스만 받다 보니 할 것이 없다. 그저 먹으라면 먹고 타라면 타는 것이다. 그러나 길거리여행은 다르다. 도중에 발생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다.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다. 목적지를 찾아 가면서, 그리고 목적지에서 취사를 하면서 무수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가족간의 대화에 길거리여행만한 것이 없다.
싸우는 여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쪽으로 갈 것인지 저쪽으로 갈 것인지 의견이 갈릴 때 세게 주장하면 충돌이 일어난다. 이럴 경우 한편이 양보해야 한다. 한두번 얘기해서 먹히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돌아서 가면 그 뿐이다. 1박2일 코스에 시간은 철철 남아 있어서 바쁠 것이 없다.
먹거리로 다툴 때도 있다. 이것을 살 것인지 저것을 살 것인지 의견이 갈렸을 때 양보해야 한다. 그것 먹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못 먹으면 다음에 먹으면 되는 것이다.
선유도 해변에서 조약돌을 채취했다. 공기돌 같은 자갈도 있고 콩알만한 것도 있다. 조개껍질도 있다.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오계중에 불투도(不偸盜)를 어긴 것이 된다.
불투도는 ‘도둑질하지말라’라는 뜻이다. 본래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주지 않는 것을 가져 가는 것은 모두 도둑질에 해당된다. 꽃향내가 좋다고 하여 코를 댄다면 이것도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 된다. 욕심내는 것은 모두 다 불투도죄를 어기는 것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사항을 잘 알고 있음에도 해변 자갈무더기를 두 세 움큼 채취했다. 최근 분갈이한 화분에 올려 놓기 위함이다.
함부로 자갈조약돌을 가져가서는 안된다. 자갈조약돌을 가져가지 말라는 팻말은 보이지 않아도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다.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꺽거나 채취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같다. 만약 오천만 국민이 자갈조약돌을 한움큼씩 가져 간다면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투도죄를 저지른 것은 ‘나하나쯤이야’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사실 좋은 추억도 남기고 싶은 욕망도 작용했다.
이번 1박2일에서 자갈조약돌은 유일하게 남은 여행의 실체적 흔적이다. 달리고 머문 기억은 있지만 지나가 버린 것이다. 먹거리를 샀으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똥과 오줌이 되어 나온다. 사진으로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것은 볼 때뿐이다. 그러나 해변에 널려 있는 자갈조약돌 한무더기는 유일하게 섬에 갔다 온 증거가 된다. 한무더기 자갈조약돌에서 그 섬을 기억하는 것이다.
2020-09-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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