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가져 가십시오
하루일과를 커피로 시작한다. 아지트에 도착하자 마자 물부터 끓인다. 약수터에서 떠 온 물이다. 사무실 근처 20여분 거리에 있는 ‘수리천약수터’에서 떠 온다.
배낭에 페트병 네 개 가득 떠 오면 뿌듯하다. 노력의 댓가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깨끗한 물을 확보한 것이다. 물값절약도 되고, 운동도 되고, 깨끗한 물도 마시게 되어서 일석삼조라 해야 할 것이다.
커피원두를 절구에 빻는다. 이른바 ‘절구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절구질 할 때 튀어 나가므로 한쪽 손으로 입구를 틀어막고 절구질한다. 미세한 가루가 될 때까지 빻는다. 그러나 빻는데 한계가 있다. 그라인더나 전동기계에 훨씬 못 미친다. 거칠게 빻아진 가루를 종이 필터에 올려놓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절구커피가 완성된다.
아침에 커피한잔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향긋한 카페인이 온 몸에 퍼져 나갈 때 몸과 정신이 깨는 것 같다. 특히 글쓰기 할 때 커피한잔은 막힌 것을 뚫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쯤 되면 커피중독자라 해야 할 것이다.
어제 커피선물을 받았다. 페친이 커피 한박스를 택배로 보내 준 것이다. 페이스북친구는 먼저 메신저로 의사를 물었다. 이런 경우 거절하지 않는다. 돈을 보낸다면 당연히 거절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낸 것에 수용한 것이다.
페친은 평소 글을 잘 보고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이 영향을 준 것 같다. 대부분 글이 너무 길어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읽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좋아요’추천이나 댓글을 달지 않아도 읽는 사람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커다란 박스안에는 커피가 가득 들어 있다. 원두로 된 것과 분쇄된 것이다. 원두로 된 것은 볶은 것으로 5백그램짜리이다. 분쇄된 것은 개별포장 되어 있는데 20개들이 두 봉지이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 보였다. 수입산 커피라고 했다. 회사에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는데 선물로 주고자 한 것이다. 아마도 의사결정권자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을 내 준 페친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도 ‘좋아요’추천을 많이 눌러 주었는데 이번 일로 이름이 각인되었다. 한번도 대면한 적이 없음에도 이렇게 마음 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것은 글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보통불자의 일상적 글쓰기, 의무적 글쓰기가 타인의 삶에 변화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쓴 글은 네 시간 반가량 걸렸다. 오전 8시부터 시작된 글쓰기가 오후 12시 반가량 되서야 끝났다. 글쓰기에 몰입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화장실 한번 가지 않고 내리 네 시간 반을 집중한 것이다. 이렇게 한번 글쓰기 삼매에 빠지면 아픈 줄도 모른다. 마치 신들린 것처럼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긴다. 경전을 근거로 글쓰기 하기 때문에 책상에는 경전 펼쳐 놓은 것으로 가득하다.
최근 유튜브에서 고미숙선생의 글쓰기 강연을 들었다. 선생은 글쓰기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30대 후반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취업이 안되어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사실상 백수로 산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년백수로 삶을 산 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고 한다. 백수로 살아 시간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책을 썼다고 말했다.
글을 쓰게 된 것은 더 이상 취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십대 중반에 백수가 되고 나서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부자가 되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자 글쓰기한 것이다. 만일 직장생활 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정년까지 직장생활 했다면 글쓰기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고미숙선생에 따르면 글쓰기에는 재능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누구나 읽을 줄 알면 쓸 줄 안다고 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회사 다닐 때 기안서 작성해 본 것이 고작이다. 중학교시절 일기장을 써 본 이래 글쓰기를 해 본 적도 없고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다. 철철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끄적거려 본 것이 오늘날에 이르렇다. 고미숙선생 말 대로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하면 서로 좋은 것이다. 나에게도 이익되고 타인에게도 이익된다. 나도 행복하고 타인도 행복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멸(不滅)이다. 한번 써 놓은 글은 남는다는 것이다. 물건처럼 닳지도 않고 돈처럼 없어지지도 않는다. 한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인류의 역사는 글쓰기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접하고 있는 수많은 책은 인류문화유산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쓰여진 글을 보고서 공감한다면 과거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경전을 보고서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면 인류의 외장하드와 접속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은 고뇌의 산물이다. 한 존재의 처절한 삶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과 사상을 접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도 공감했다면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서 나의 처지에 비추어 보아 이해했다면 경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즉문즉설하는 스님은 결혼도 해 보지 않았고 자식도 가져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 부모자식간의 갈등에 대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남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것이 바탕이 된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게 되었을 때 이해하게 된다. 비록 언어차원으로 이해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설령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공감하고 이했다면 경험한 것이나 다름없다. 스님이 신도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아래에서 부터 위로 관통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가족간의 갈등에 대하여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전읽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처님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를 설했다. 어느 누구도 부처님이 설한 여덟 가지 괴로움에 대한 진리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이 고통이고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남이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보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어느 누구도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라며 자신 있게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비추어 보아 이해하고 공감했을 때 비로소 진리로서 받아 들이게 된다. 그래서 맹신이 아닌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게 된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인용하여 글을 쓰고 있다. 개인의 신변이야기나 세상이야기를 쓴다면 그다지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경전이나 주석에 있는 문구를 인용해서 쓰기 때문에 건질 것이 있는 글쓰기가 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종종 선물을 받는다.
물질은 나누면 줄어든다. 그러나 공덕은 나누어도 줄어 들지 않는다. 공덕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마법이 있다. 물질적 재산은 나누면 나눌수록 줄어 들지만, 정신적 재산은 나누면 나눌수록 늘어난다.
아름다운 마음 낸 것에 찬탄한다면 내가 낸 것이나 다름없다. 보시한 사람에게 “참 잘 하셨습니다. 훌륭합니다.”라며 수희찬탄하면 내가 보시한 것이 된다. 말한마디 거들어서 공덕 짓는 것이다. 애써 쓴 글에 ‘좋아요’ 추천하면 자신이 쓴 것이나 다름 없다.
글을 쓰고 나면 모두 오픈한다. 다 가져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모두 다 가져 가십시오. 당신 것입니다.”라고.
2020-09-2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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