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自尊)의 삶을 위하여
점심시간이다. 매일 집으로 향한다. 주차터워에서 차를 빼내는 것이 일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매일 나가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이 미안해서 경비원들에게 선물했다. 작년에는 토마토 한박스를 했고 올해에는 복숭아 한박스를 보시했다.
사는 곳에 대형마트가 가까이 있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서 직선거리로 100미터 가량 되는 곳에 이마트가 있다. 작년 이맘때 여기로 이사 온 후 이마트 들르는 것이 생활이 되었다. 점심 때도 들르고 저녁때도 들른다. 하루 두 번 들렀을 때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하지 않는다. 두 손으로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이다. 평균해서 하루 만오천원 드는 것 같다.
식비 비중이 높다. 이를 엥겔지수가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식비가 차지 하는 비중이 높으면 삶이 팍팍하다고 했다. 나의 삶은 팍팍할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식비 이외 쓰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다 보면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오로지 식비에만 돈을 쓰다 보니 돈이 그다지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마트 들어갈 때 발걸음이 가볍다. 시장에 갈 때 약간 들뜬 기분을 말한다. 수천, 수만가지 상품을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늘은 무얼 살까?"라고.
큰소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지하에 있는 식품매장에서 보내는데 만원 이하짜리가 많다. 수천, 수만가지 상품은 대부분 만원 이하인 것이다.
식품매장에는 진귀한 것도 있다. 특히 열대과일이 그렇다. 경전에서만 보던 망고도 접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름 모를 열대과일도 있다. 만원이내이기 때문에 부담 없다. 언젠가 도전해 보리라고 마음먹어 본다.
수산매장도 즐겨 찾는다. 사지 않더라도 일없이 휘리릭 둘러본다. 종종 거의 반값에 건지기도 한다. 다른 매장과 달리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다. 날자가 지날수록 꼬리표가 붙는데 처음 10프로 부터 시작하여, 20프로, 30프로로 가다가 막판에는 거의 반값이다. 저녁 9시경에 가면 싸게 살 수 있다. 대형마트가 가까이 있어서 좋은 점이다.
대형마트만 이용하지 않는다. 재래시장도 종종 다닌다. 현대화되고 기계화된 대형마트와 달리 활력이 넘친다. 호객행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시장이다.”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주차하기가 불편하다. 만원어치 사자고 재래시장가면 시간이 아까운 것 같다. 그럼에도 재래시장 것을 팔아 주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은 있다.
또 하나 즐겨 찾는 곳이 있다. 가판마트를 말한다. 채소와 과일만 파는 일종의 반짝시장 같은 곳이다. 점심을 전후하여 사람들이 몰린다. 바로 맞은편 이마트에 비해 30-40프로 저렴한 것 같다. 어떤 것은 반값이다. 그러나 품질은 떨어진다. 그럼에도 단골 고객이 많은 것 같다. 70세 정도 되는 노인들이 작은 손수레를 가져와서 이것 저것 많이 사간다. 오후 두세시만 되면 물건이 거의 다 팔린다.
이마트에서도, 재래시장에서도, 가판마트에서도 살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버스 정류장 한켠에 있는 노상 좌판의 먹거리를 말한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그날 팔 먹거리를 내다 파는 것이다. 주로 사는 것은 고구마줄기 벗긴 것과 호박잎, 둥근 호박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데서 사기 힘들다. 버스정류장 좌판에서만 볼 수 있다.
고구마줄기 벗긴 것 있으면 사려 했으나 보이지 않는다.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으면 최상의 맛이다. 둥근호박과 호박잎을 샀다. 호박잎은 사는 김에 두 바구니 싰다. 한바구니에 이천원이다. 사천원어치 샀더니 푸짐하다. 한 양푼 되는 것 같다. 이번 기일 때 형제들에게 삼합을 해 주기 위해서 산 것이다. 돼지고기 수육과 절단낙지와 호박잎이 어우러진 삼합을 말한다. 이를 호박잎 삼합이라 해야 할까?
오늘도 집에서 공양했다. 사 먹기 보다는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기를 즐긴다. 저녁 식사 준비도 내가 한다. 된장국을 끓이고 스페셜 요리를 한다. 매일 이렇게 하다 보니 이제 도사가 되었다.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생활화된 것이다. 먼저 집에 오는 자가 준비하는 것이다. 나중에 오는 자는 뒷정리하면 된다.
매일매일 소비를 하고 있다. 이마트가 가까이 있어서 예전 보다 소비를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써 보았자 2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런 삶을 누군가는 쪼잔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자존심을 말할지 모른다.
자존감이 있다. 자존감은 돈이 개입되었을 때 떨어진다. 이런 것이다. 누군가 나보다 돈이 많다면 나의 자존감은 낮아 진다. 누군가 나보다 큰 차를 타고 다니면 역시 나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무엇이든지 소유개념으로 비교하면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소유를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 모두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 한사람 빼놓고 모두 자존감이 떨어질 것이다. 나보다 돈 많은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자존감은 무엇일까?
진정한 자존감은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나타난다.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은 높아진다. 이는 소유와 관련 없는 것이다. 청소부가 거리를 쓸지만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자존감은 높아진다.
버스정류장 좌판에서 채소를 팔아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힘든 일을 하고 퇴근한 아내를 위해 저녁상을 차려 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된다. 기일날 형제들에게 호박잎삼합을 준비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이렇게 글을 써서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된다. 모두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에 해당된다.
2021-08-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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