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1263

영원한 저 세상과 자아가 있다는데

영원한 저 세상과 자아가 있다는데 불교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의심의 여지 없이 스님과 학자라고 볼 수 있다. 스님은 수행을 전문으로 하고 학자는 학문을 전문으로 한다. 수행과 교학에 있어서 스님과 학자를 따라 갈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보기 힘들다. 스님과 학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게시판 등 커뮤니티에서는 그들을 볼 수 없다. 페이스북, 카톡방, 밴드 등과 같은 에스엔에스에서도 그들의 글을 볼 수 없다. 그들은 글을 쓰지 않는 것일 것? 그들은 쓸 줄 모르는 것일까? 이 글은 보통불자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행경력이 깊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글이 인터넷에 퍼지게 되었..

담마의 거울 2022.10.21

큰스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큰스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 때가 있다. 스님에 대한 글이다. 스님들이 부처님 가르침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때 침묵해야 할까? 할 말을 하면 비방이 되고 비난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불교에서는삼보를 비방하는 것이 된다. 스님은 승보로서 부처님과 동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다. 진리는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물(施物)을 받았을 때 스님의 언어가 있다. 천인사,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라 불리우는 스님은 말을 할 때 신중해야 한다. 신도들로부터 시물(施物)을 받았을 때 “고맙습니다.”라든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축원을 해 주어야 한다. 법구경에 “아유 반노 수캉 발랑”(Dhp.109)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

담마의 거울 2022.10.20

주기만 하는 사람과 받기만 하는 사람

주기만 하는 사람과 받기만 하는 사람 만안구청 앞에 구두 수선 부스가 있다. 오래 되었다. 아마 내가 이 지역에 있기도 전에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15년도 더 전에 있었을 것이다. 구두 수선 부스는 한평도 되지 않는다. 매우 작은 철제 박스이다. 아마도 시에서 생계 유지를 위해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딱 두 번 가 보았다. 한번은 구두 뒷굽을 교체할 때 가 보았고 한번은 구두를 닦을 때 가 보았다. 구두수선 하는 남자는 발에 장애가 있다. 오른쪽 발에 장애가 있어서 뒷뚱뒷뚱 걷는다. 그럼에도 구두수선도 하고 구두도 닦고 하여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 오늘 아침 구두수선 부스를 지나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구두수선을 하는 자는 주기만 하는 사람 ..

담마의 거울 2022.09.28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시간이 없다. 몹시 바쁘다. 정년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생업이 있어서 바쁘다. 납기는 지켜 주어야 한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작업했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럼에도 글은 써야 한다. 매일 한 개 이상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글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경전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고 게송을 외우는 것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고 외운 것을 암송하는 것도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다. 요즘 자타카 교정본을 보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에 교정본을 보았지만 이제 마지막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교정이 될 것 같다. 통합본으로 출간될 것이기 때문에 인쇄와 제본하는데 한달 보름 걸릴 것이라고 한다. 잘 하면 연말에는 한..

담마의 거울 2022.09.27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

슬퍼하지 마라, 무엇을 근심하는가? 나는 세상사에 얼마나 초연할 수 있을까? 사람이 죽었을 때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이 들어 돌아가신 어른들은 그다지 슬프지 않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죽으면 무척 슬퍼진다. 자신의 자식이라면 어떠할까? 난다마따는 아들이 죽었을 때 조금도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존자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들이 붙잡힐 때나 붙잡혀 있을 때나 포박되었을 때나 상처받을 때나 살해될 때나 살해되었을 때 저는 저의 마음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A7.53)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난다마따의 평정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경을 읽어보면 난다마따의 수행력으로 본다. 난다마따는 부처님의 재가여제자중에서 ‘선정을 닦는 님 가운데 제일(jh..

담마의 거울 2022.09.20

심청정이면 왜 중생청정인가?

심청정이면 왜 중생청정인가? 오늘 아침 절구커피를 만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사람의 마음도 청정한 것 아니냐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제 새벽 글을 쓴 것에서 한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에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는 말이다. 유마경에 ‘심청정국토청정’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는 말이다. 이 말의 유래를 니까야로 본다. 바로 상윳띠나까야 ‘가죽끈에 묶임의 경’에 있는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에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아침에 머리를 감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아침에 커피를 만들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 올랐을 때 좋은 글쓰기..

담마의 거울 2022.09.13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진실선언

진실을 고백하여 힘을 불러오는 진실선언 “와로 와란뉴 와라도 와라하로~”이미우이 음악이 흐르는 아침이다.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라따나경을 들었다. 매일 아침 듣는 것이다. 벌써 15년되었다.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듣는다.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는 승리의 노래를 듣는다. 자야망갈라가타를 말한다. 라따나경 13번 게송은 부처님에 대한 예경과 찬탄에 대한 것이다. 게송은 “와로 와란뉴 와라도 와라하로~ (Varo varaññū varado varāharo)”(Stn.234)로 시작된다. 이 말은 “위없는 것을 알고, 위없는 것을 주고, 위없는 것을 가져오는, 위없는 님께서”라는 뜻이다. 위없는 담마를 설하신 부처님에 대하여 훌륭한 보배라는 뜻이다. 이는 다름 아닌 진실선언이다. 라따나경 17게송은 후..

담마의 거울 2022.09.12

내가 경전읽기 하는 것은

내가 경전읽기 하는 것은 요즘 유튜브에서 싸띠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다. 싸띠에 대해서만 말하기 때문에 싸띠스님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법문을 들어보면 싸띠로 시작해서 싸띠로 끝난다. 싸띠 하나만 가지고 한시간을 말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마치 ‘이것’을 말하는 자들이 이것 하나만 가지고 한시간 말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싸띠스님이 말하는 싸띠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마음에 대한 것이다. 본 것을 아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두 번 아는 것이 된다. 보고 알고, 보고 알고, 이렇게 끊임없이 보고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마음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마음보는 수행, 심념처라고 한다. 보는 마음 아는 마음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나중의 마음이 이전의 마음을 알았을 때 싸띠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상을 ..

담마의 거울 2022.09.09

맛지마니까야 완독 대장정을 마치고

맛지마니까야 완독 대장정을 마치고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 이 말은 숫따니빠따 ‘라훌라의 경’(Sn.2.11)에 나오는 말이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외아들 라훌라에게 왜 세상을 아주 싫어하여 떠나라고 했을까? 세상을 싫어하면 염세주의자가 된다. 부처님은 세상을 싫어하여 따나라고 했다. 부처님은 염세주의자일까? 부처님이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하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를 설했을 때 부처님을 염세주의자로 볼 수 있을까? 부처님은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싫어하여 떠나라고 했다. 이렇게만 말했다면 부처님은 염세주의자로 몰려서 담마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만 설한 것이 아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해법까지 제시해 주었다. 그..

담마의 거울 2022.09.08

고귀한 우정에 대하여

고귀한 우정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하다. 그 중에 우정의 가르침이 있다. 어떤 우정의 가르침인가? 이는 고귀한 우정에 대한 것이다. 친구는 있어도 절친은 없다. 친구중의 친구, 베스트 프렌드는 아직 나에게 없는 것 같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는 아직 없다. 또한 목숨까지 걸 친구는 아직 없다. 아직까지 최상의 친구는 없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친구라면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될 것이다. 함께 길을 가는 절친이 있다면 그것은 고귀한 우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귀한 우정은 어떤 것일까? 요즘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매일 한두경 읽다 보니 이제 거의 다 읽어 간다. 현재 149경까지 읽었으니 총15..

담마의 거울 2022.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