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1263

호불호와 쾌불쾌가 일어날 때 외는 주문

호불호와 쾌불쾌가 일어날 때 외는 주문 한번 아닌 것은 아닌 것일까?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다. 오늘 아침 불현듯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그마에 사로잡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 사람에 대해 안다면 얼마나 알까? 함께 살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연애와 결혼이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럼에도 그 사람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생각했을 때 실망하기 쉽다. 그 사람의 결점이나 단점을 보고서 전체로 보는 착각이 일어날 수 있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단점이 있다. 누가 판단하는가?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럼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결점이나 단점은..

담마의 거울 2021.07.29

불교학자는 불교철학하자는 건가?

불교학자는 불교철학하자는 건가? 불교학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그가 업과 윤회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으면 불교학자라고 볼 수 없다. 불교철학자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이 불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삼법인이다.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가 아닌 것은 불교가 아닌 것으로 보면 틀림없다. 자아, 아뜨만, 영혼, 불성, 참나, 진아 같은 것을 말한다면 불교가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교 비슷한 것일 수는 있다. 그가 불교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그가 삼보에 귀의하지 않았다면 그는 불교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Buddha)과 가르침(Dhamma)과 승가(Sangha)를 귀의처, 의지처, 피난처로 삼지 않는다면 어떻게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

담마의 거울 2021.07.27

자만의 계급장을 떼어라

자만의 계급장을 떼어라 꽃이 피었다. 온갖 열대식물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보는 꽃이다. 마치 흰 잎사귀처럼 생긴 꽃 안에 꽃다발이 형성되어 있다. 흰 잎사귀처럼 보이는 꽃은 아마 잎사귀일 것이다. 마치 방패가 꽃을 보호하는 듯한 형상이다. 이 꽃이름은 무엇일까? 꽃에는 이름이 있다. 누군가 붙였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전파되다 보니 꽃이름이 된 것이다. 산이름도 강이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도 이름이 있다. 사람은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 아이디가 있다. 글을 쓰면 필명이 있다. 사람에게는 번호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없이 주민등록번호가 있다. 군대에 가면 군번이 있다.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자등록번호가 있다. 이름이 있어서 구별된다. 이름이 있어야 ..

담마의 거울 2021.07.23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천 개의 달, 만 개의 달이 있지만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말한다. 인식하는 것이 다른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르게 분별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접하고 있는 세상은 나의 여섯 가지 감각영역에 따른 것이다. 눈이 있어서 세계를 보고 귀가 있어서 세계를 듣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눈이 있어서 세계가 열리고 귀가 있어서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은 한순간에 두 개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각의 경우 시각대상과 만나면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래서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난다.”(M148) 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

담마의 거울 2021.06.30

사이비정법이 출현할 때

사이비정법이 출현할 때 한국불교에 이상한 풍조가 있다. 경전을 근거로 해서 글을 쓰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리는 마음과 마음으로, 뜻에서 뜻으로 전승되는 것이라며 문자로 전승된 것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견월망지’라 하여, 달을 가리켰으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본다고 말한다. 한국불교에서 빠알리니까야는 거의 완역되었다. 쿳다까니까야 계열의 일부 몇 개 경전을 제외하고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볼 수 있다. 심오한 내용도 있지만 현실적 삶에 대한 것들도 많다. 이런 가르침을 지금 여기에서 접할 수 있는 것은 시대의 행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법은 오래 가지 않는다. 언젠가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법이 오염되기 때문이..

담마의 거울 2021.06.29

늙어서 슬프다고 하는데

늙어서 슬프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세상을 볼 수 있는 창 중의 하나인 페이스북에서는 늙음에 대한 한탄의 목소리가 많다. 시인의 시를 보면 늙음과 슬픔이 주제이다. 기승전결이라는 말이 있는데 ‘기승전슬픔’으로 끝나는 것 같다. 늙음에 대하여 일관되게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늙어 가는 것을 자조적으로 묘사한 글이다. 늙어 버린 자신을 보면서 “어떻게 하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표현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본다면 늙음이라는 것은 ‘삶의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부처님도 늙음에 대해서 말했다. 부처님은 나이가 들어 노쇠한 자신을 발견하고서 “부끄러워할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 주는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담마의 거울 2021.06.28

견월망지(見月忘指)는 담마에 대한 무지

견월망지(見月忘指)는 담마에 대한 무지 견월망지,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것이다. 달을 보자는데 대체 무엇을 보자는 것일까? 참나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종정스님도 참나를 말한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煎 本來面)이라 하여, 부모가 있기 전에 어떤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 어느 교회에서 법문했는데 영어로 "What is your true self?"라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은 진제스님의 법문을 듣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왜 감격하고 감동했을까? 진제스님의 참나에 대한 법문을 보고서 어느 기독교인은 바이블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에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보다 더 위대하시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분..

담마의 거울 2021.06.25

테라가타를 아무 곳이나 펼쳐 보았더니

테라가타를 아무 곳이나 펼쳐 보았더니 저녁시간이다. 저녁이 되면 약간 흥분되는 것 같다. 약간 들뜬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도시의 불빛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에서 네온싸인은 화려하다. 어둠이라 하여도 같은 어둠이 아니다. 새벽 어둠은 차분하다. 곧 여명이 밝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녁의 어둠은 혼돈과 혼란의 어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음이 들떠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눈으로 귀로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TV시청하는 것이 고작이다. 집에서 뛰쳐나왔다. 저녁시간이라도 집에 있으면 안될 것 같았다. 사무실로 향했다. 작은 일인사무실이야말로 피난처이다. 저녁에 할 일 없어도 시간 보내기 좋다. 대개 유튜브시청으로 시..

담마의 거울 2021.06.17

새벽에 홍삼꿀차를 마시니

새벽에 홍삼꿀차를 마시니 지금은 새벽 4시. 참 좋은 시간이다. 너무 이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다. 앞으로 6시 까지는 내 시간이다. 24시간 내 시간 아닌 때가 없지만 잘 자고 난 다음 깨어 있는 시간은 두 배, 세 배 가치 있는 시간이다. 탁자 위에 있는 물을 마신다. 어제 준비한 것이다. 자기 전에 홍삼과 꿀을 넣은 것이다. 보리차 보다도 홍삼꿀차가 훨씬 좋다. 마시고 나면 만족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럴 때 준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보시된 것이 커다란 열매를 거두는 곳에 기꺼운 마음으로 보시하라.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되리.”(A5.36) 공덕은 저 세상에서 의지처가 된다고 했다. 보시공덕을 말한다. 지금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다음 생에서는 의지처가 됨을..

담마의 거울 2021.06.14

나는 불꽃 같은 존재

나는 불꽃 같은 존재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를 어제의 나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오늘의 나도 지금의 나는 아니다. 나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나일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과거의 것이다. 과거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보고 있다. 학창시절 보았던 친구의 이미지가 있다. 40년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미지는 젊다. 20대 초반의 청춘 이미지이다. 그때 이미지와 함께 그의 행위를 떠올려 본다. 몇가지 사건이 기억에 남았을 때 그 사람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4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만일 40년만에 그를 만났다면 당황할 것 같다. 나만큼이나 늙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살았던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지 수정작업에 ..

담마의 거울 2021.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