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1263

앗따굿따(attagutta), 왜 자신이 자신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가?

앗따굿따(attagutta), 왜 자신이 자신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하느님이 나의 안전을 책임져 줄까? 관세음보살이? 부처님이? 어느 누구도 나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나는 나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 남이 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왜 그런가? 나는 착한 존재이니까? 그렇다고 남에게 나의 안전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흔히 백세시대를 말한다. 보험회사에서는 기대수명을 발표한다. 기대수명대로 산다는 보장이 있을까? 십년을 더 살지 이십년을 더 살지 알 수 없다. 아니 당장 오늘을 알 수 없다. 기대수명은 기대일 뿐이다. 누구..

담마의 거울 2021.05.25

타인에 대한 보시는 결국 자기자신에게 하는 것

타인에 대한 보시는 결국 자기자신에게 하는 것 어제 잠결에 들은 것이 있다. 담마끼띠 스님의 법문이다. 한국명상원에서 상윳따니까야 1권을 강의한 것인데 유튜브로 들었다. 잠결에 들은 말 중에 “보시는 탐, 진, 치를 소멸하는 행위입니다.”라는 말에 사무쳤다. 담마끼띠 스님은 스리랑카 스님이다. 아산에 있는 담마위하라 창건주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님은 한국말이 유창하다는 것이다. 듣다 보면 한국사람 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다. 더구나 교학적 토대가 탄탄하여 법문을 하면 하나도 놓칠 것이 없다. 마흔살 안팍의 젊은 스님은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몇 번 만나 본 적 있다. 보시는 주는 행위를 말한다. 불교용어이다. 요즘엔 베풂 또는 나눔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선물하는 것도 보시에 해당된다. 사심..

담마의 거울 2021.05.24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이 꽃이름은 뭐일까? 어제 점심시간에 명학공원 귀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꽃이다. 순백의 큰 꽃이 눈길을 끌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기에 어떤 꽃인지 궁금했다. 모야모에 물어 보았다. 꽃이름 알려 주는 앱이다. 불과 몇분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꽃이름은 ‘큰꽃으아리’이다. 큰꽃으아리, 매우 생소하다. 이런 이름이 꽃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인터넷검색을 해보았다. 백과사전에는“낙엽성 반관목의 덩굴식물로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숲에서 자란다.”라고 되어 있다. 토종꽃임을 알 수 없다. 이제까지 이런 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고 보면 아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조금 아는 것 가지고 아는 채 하면 경솔한 것..

담마의 거울 2021.05.13

인생이 괴로운 이유는

인생이 괴로운 이유는 행위를 하면 과보가 따른다. 이런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대개 괴로움이기 쉽다. 설령 즐거운 것이라도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불만족이다. 이래저래 괴롭다. 이를 행위의 두려움이라 해야 할까? 행위의 두려움은 결국 존재의 두려움이 된다. 왜 존재가 두려움일까? 그것은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오온은 괴로움 덩어리임을 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부처님은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이라고 했다. 이어서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를 말했다. 최종적으로 “줄여서 말하지면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이 모두 괴로움이다.”(S56.11)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오취온(pañcupādānakkhandha)이 괴로움인 것이다. 우리는 괴로운 존재이다. 이..

담마의 거울 2021.05.11

바히야 다루찌리야의 드라마틱한 삶

바히야 다루찌리야의 드라마틱한 삶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달리기 하는 장면이 있다. 수염을 기른 주인공이 미국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라 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붙었다. 시간이 갈수록 차츰 늘어난다. 그가 멈추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기대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뒤따르는 무리들도 따라서 뛰기 시작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뛰기 시작한 것은 괴로운 일을 잊기 위해서였다. 가만 있으면 참을 수 없어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몇날 몇일을, 그리고 몇 달을 뛰었을 때 사람들은 무언가 있어 보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도인이 출현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면도를 하지 않아서 수염까지 더부룩하..

담마의 거울 2021.05.04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의 상베가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의 상베가 “당신은 살아오면서 남을 감동시킨 적이 있는가?” 이 말은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나온 말이다. 수많은 대사 중에서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과연 나는 남을 간동하게 한 적이 있을까?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1순위는 히말라야 등정이다. 그 많고 많은 것 중에서 하필이면 히말라야일까? 죽기 전에 꼭 해 보아야 할 것,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것이 많은데 왜 히말라야가 1순위일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경외이다. 이를 외경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쾌한 자연의 경이에 감동하지 않을 자 어디 있을까? 살아오면서 종종 경이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동반한 경이는 느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전율을 동반한 감동은 극히 드물다. 두려움과 전율과 감동이..

담마의 거울 2021.04.20

불수념(佛隨念)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불수념(佛隨念)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있다. 일감이 끊어진 지는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 살아남은 고객사로부터 종종 주문은 들어온다. 재주문이다. 그러다가 때 되면 새로운 주문이 들어올 것이다. 이전처럼 안달복달하지 않는다. 오늘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는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밥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여래십호에 대한 글을 썼다. 작년 봄에 쓴 것이 이제야 마무리되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여래십호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했으나 의외로 만만치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올해 부처님오신날 ..

담마의 거울 2021.04.19

연기법을 알면 백전백승

연기법을 알면 백전백승 자극받아 글을 쓸 때가 있다. 에스엔에스에서 본 글로 인하여 자극받았다. 그것은 교리에 대한 것이다. 교리에 대한 무지의 폐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명백히 보여주는 글을 보았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것이다. 글쓴이가 스님인지 재가자인지 알 수 없다. 페이스북임에도 실명을 쓰지 않고 얼굴도 감추고 있다. 만일 그가 스님이라면 수치이고 재가자라면 무지한 것이다. 불교의 기본교리조차 모르는 한심한 글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하나라면 기독교나 불교의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아쇼카선언이라는 것이 있었다. 종교평화선언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시절 불교계에서 추진했던 종교평화선언을 말한다. 선언문을 보면 열린진리관이 있었다. 진..

담마의 거울 2021.04.18

왜 이렇게 불상이 많은가? 바가와(世尊)의 의미를 알면

왜 이렇게 불상이 많은가? 바가와(世尊)의 의미를 알면 어느 해였던가 부산에 있는 포교당에서 템플스테이를 했었다. 담당 스님은 단체 참가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전세계적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부처님의 형상이 왜 이렇게 많은지 생각해 보십시오.”라는 취지로 말했다. 어디를 가나 불상이 있다. 절에 가면 당연히 불상이 있다. 집에 모셔 놓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로 대불을 보기도 한다. 높이가 수십미터에 달하는 불상을 세계 도처에서 본다. 부처님 입멸후 약 오백년 후부터 불상시대가 되었다.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시작된 불상은 불교를 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다. 불교인들은 왜 불상을 모시고 불상에 예배하는 것일까? 전세계적으로 부처님처럼 믿음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담마의 거울 2021.04.08

일체가 괴롭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일체가 괴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새벽이다. 눈을 떠서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3시 반이다. 좋은 시간이다.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온전히 내시간이다. 편안한 자세로 사유한다. 떠 오른 생각을 지켜본다. 결국 “어떻게 쓸까?”에 대한 것이다. 잠을 더 잘 수 있다. 더 자면 쓸데없는 꿈만 꾸게 된다. 때로 좋은 꿈도 꾸지만 대개 허망한 것이다. 차라리 깨 있는 것이 낫다. 그래서 선사들이 입적할 때 이 세상을 꿈속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좋은 생각이 올라오면 글로 남겨 놓고자 한다. 생각은 한번 지나가면 끝이다. 꿈속에서도 좋은 생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잡을 수 없다. 생각나는 즉시 잡아야 한다. 새벽에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이럴 땐 엄지에 맡겨야 한다. 엄지 가..

담마의 거울 202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