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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지속심의 근거가 되는 경을 발견하고

존재지속심의 근거가 되는 경을 발견하고 새벽에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법정스님에 따르면 잠에서 깨면 일어나라고 했다. 잠에서 깨었음에도 계속 자려 한다면 게으름이 될 것이다. 새벽에 몸이 찌뿌둥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방법이 있다. 암송하는 것이다. 앉아서 할 수도 있고 일어서서도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암송전과 암송후가 다르다는 것이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한동안 암송하지 못했다. 마치 모임에 빠지기 시작하면 계속 빠지게 되듯이, 한번 암송하지 않게 되자 계속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을 다 잡는데 암송만한 것이 없다. 경행을 하면서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암송하고 나면 확실히 다른 상태가 됨을 느낀다. 집중이 된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행선이나 좌선을 ..

수행기 2023.03.19

절구산수유차를 만들었더니

절구산수유차를 만들었더니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아침에 개었다가 저녁이 되면 흐려진다. 오전에 햇볕 났다가 오후가 되면 구름이 낀다. 벌써 사흘째이다. 변덕이 죽끓듯한 날씨에 꽃소식을 접한다. 삼월도 반절이 꺽어진 이때 매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때 꽃구경을 하고 싶었다. 이천 산수유마을로 차를 몰았다. 안양에서 이천까지는 58키로 거리로 1시간 5분가량 걸린다. 산수유축제가 1주일 남았지만 가보기로 했다. 남녘에는 산수유축제가 시작 되었다. 중부지방은 일주일 늦다. 마을에 도착해 보니 노란 산수유가 발화 일보직전이다. 날씨만 포근하면 삼사일 이내에 만개할 것 같다. 산수유 군락지에서 열매를 발견했다.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다. 열매와 꽃이 함께 있는 장면이 목격 됐다. 산수유 열매를 약간 채취했다..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5, 시기리야 숲속 오두막집에서

스리랑카 성지순례기25, 시기리야 숲속 오두막집에서 삶에는 방향이 있어야 한다. 청소년이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갖는 것과 같다. 학생이 법조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면 그 길로 매진 할 것이다. 물론 다른 꿈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방향성을 가졌을 때 좌절하더라도 금방 일어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삶에도 방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돈 버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기도 하다. 돈 버는 일에 올인하고, 돈 버는 선수가 되었을 때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룰지 모른다. 혹시 그 과정에서 불법과 편법, 탈법으로 큰 불로소득을 이룰지 모른다. 만약 그가 축적한 재산을 관리를 잘못해서 날렸다면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가르침의 상속에 대한 경’(M3)이 있다..

맛의 갈애로 인한 불평등의 기원

맛의 갈애로 인한 불평등의 기원 또다시 새벽이다. 새벽에는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런 생각을 놓칠 수 없다. 달아나기 전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 글로 써서 꽁꽁 붙들어 매어 두어야 한다. 사람은 발전이 있어야 한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어야 한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것이라면 변화가 없다. 아니 퇴보하고 말 것이다. 머리가 흰 사람이라면 나이만 먹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 보다 나은 삶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찰이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사유가 있는 삶이다. 새벽에 사유하면 성찰 있는 삶이 된다. 사유한 것을 글로 옮기면 최상이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제 보다 다른 삶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똑같은 글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담마의 거울 2023.03.16

내 삶의 정초(定礎)는

내 삶의 정초(定礎)는 고요한 새벽이다. 스마트폰 시계가 막 세 시를 표시했다. 한시간 반동안 암송과 좌선과 행선을 했다. 암송은 10분 가량했고 좌선은 20분, 나머지 시간은 행선을 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시적으로 가라 앉는 것 같다. 이틀 격정에 쌓였다. 그것은 이유가 있는 분노였다. 분노때문에 잠못이룬다는 말이 있다. 분노가 해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수행이 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보면 근심과 걱정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어서 정말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을 하면 더 걱정이 되어 더욱더 괴로워질 뿐이다. 분노를 해서 분노를 없앨 수 없다. 욕망을 욕망으로 다스릴 수 없다. 더욱더 갈증만 날 뿐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진흙속의연꽃 2023.03.15

87권 담마의 거울 2017 I, 단멸론자들을 참교육 시키기에 적합한 경은?

87권 담마의 거울 2017 I, 단멸론자들을 참교육 시키기에 적합한 경은?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매일매일 아침을 맞고 있지만 오전인가 싶으면 저녁이다. 올해가 시작 되었는가 싶었는데 벌써 3월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어느덧 연말이 될 것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 글을 남겨 놓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이제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기별로 주제별로 pdf파일을 만들어서 인터넷의 바다에 띄어 놓는 것이다. 이번에 만든 책의 제목은 ‘87권 담마의 거울 2017년 I’이다. 통산 87번째 책으로 2017년 1월 6일부터 4월 5일까지 약 3개월가량 담마에 대하여 쓴 것이다. 목차는 30개에 달하고 271페이..

책만들기 2023.03.14

지식인들을 참교육 시키기위하여

지식인들을 참교육 시키기위하여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이는 날씨이야기부터 한다. 오늘 날씨 상황을 알려주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날씨와 독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어제는 격정의 하루를 보냈다. 글을 써 놓고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분노의 마음을 쓰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글쓰기에 대하여 갑자기 ‘참교육’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참교육이란 무엇일까? 나이 든 세대라면 전교조의 참교육을 떠올릴 것이다. 1980년대 말 전교조가 결성되었을 때 참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요즘 참교육이라는 말은 전교조의 구호와 전혀 다른 용어가 되었다. 참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

지식인들의 사디스트적 가학에 대하여

지식인들의 사디스트적 가학에 대하여 나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 분노의 불길에 그 사람이 타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의 분노와 무관한 것 같다. 분노의 불꽃에 내가 타들어가는 것 같다. 이 분노의 불길을 어찌할 것인가? 3월 첫 번째 금요니까야모임은 분노에 대한 경을 합송했다. 분노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경을 합송하고, 담마에 대해서 듣고, 담마에 대해서 토론했다. 3월 첫 번째 니까야모임이 3월 10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서고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자는 전재성 선생을 비롯하여 홍광순, 이병욱, 장계영, 방기연, 안진현, 이성기, 김민희, 이혜림, 유경민, 정진영, 조규홍 선생이 참석했다. 모두 12명 참석했다. 멀리 원주에서도 참석한 분이 있다...

케세라세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케세라세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48분이다. 방금 좌선을 마쳤다. 새벽좌선은 거저먹기나 다름 없다.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집중이 잘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날그날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새벽 화장실 가는 소리에 깼다. 법정스님에 따르면 잠이 깼을 때 다시 잠을 자지 말라고 했다. 인생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 노숙인들은 늘 잠자는 듯한 모습인데 잠 밖에 잘 것이 없다면 이번 생은 망한 것이 아닐까? 고요한 새벽이다. 어제 있었던 일이 떠 올랐다. 천국과 같은 것도 있었고 지옥과 같은 것도 있었다. 감정이 교차된다. 분노의 마음도 일어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빠다나경을 암송하기로 했다. 속으로 암송하기 보다 소리내서 하기로 했다..

수행기 2023.03.12

고락중도가 팔정도인 이유는

고락중도가 팔정도인 이유는 양극단이 있다. 대표적으로 쾌락과 고행을 들 수 있다.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과 고행을 즐기는 것은 정반대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를 양극단이라 하여 부정했다. 양극단은 왜 문제가 되는가?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S56.11)라고 했다. 또한 고행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가르침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S56.11)라고 했다. 쾌락과 고행은 공통적으로 무익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수행자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여기서 극단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일반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 고행을 추구하는 ..

담마의 거울 202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