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385

사띠(sati)는 도와 과의 전제조건이자 전조현상

사띠(sati)는 도와 과의 전제조건이자 전조현상 목숨을 싸띠보다 우위에 두지 않는 것. 이 말은 혜송스님의 수행기에서 본 것이다. 현재 혜송스님의 밴드 ‘삿담마마마까’에서는 스님의 수행기가 연재되고 있다. 92회 째를 보면 “막상 수행의 한 과정을 경험해 보니 수행의 왕도(붓다의 말씀이 맞았다)는 완벽한 스승의 완벽한 법문을 듣고 건강, 목숨을 싸띳보다 우위에 두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에는 왕도가 있다 수행에도 왕도가 있을까? 어떤 이들은 그런 것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것’을 말하는 자들이 그렇다. 유튜브에서 ‘이것’을 말하는 자의 법문을 들어 보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미 다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도 방편이라 하면서 그 말에 속지 말라고 ..

수행기 2020.12.10

경을 외울 때는 입체적으로

경을 외울 때는 입체적으로 새벽 잠에서 깼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 일찍 깼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니 4시이다. 딱 적당한 시간이다. 새벽 일찍 깼을 때 무엇을 해야 하나? 좀 더 잘 수 있다. 그러나 꿈에 시달리기 쉽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면 동이 트고 심신이 피로 해진다. 이럴 경우 과감히 뿌리쳐야 한다. 새벽 잠은 자도 그만이고 안자도 그만이다. 보석같은 새벽시간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 좌선을 한다고 앉아 있을 수 있다. 막 잠에서 깨어 났으므로 마음을 집중하는데 대단히 유리하다. 그러나 게을러지기 쉽다. 좌선한다고 해도 ‘멍때리기’하거나 ‘잠선’하기 쉽다. 이래저래 귀중한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이럴 때..

수행기 2020.12.09

그윽한 고요

그윽한 고요 외롭다고 한다. 사람들은 외로워서 못살겠다고 한다. 홀로 되었을 때 고독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황혼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이다. 노인이 되었을 때 세 가지 리스크가 있다고 한다. 돈과 건강과 외로움이다. 이 세 가지는 좀처럼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내 주머니에 있어야 내 것이다. 부동산이 천문학적이라 해도 장부상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잉여라는 것이다.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는 것이다. 노인의 건강은 건강이 아니라고 한다. 오늘 밥 잘 먹고 건강해 보여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갑자기 악화되어 죽을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이런 얘기 많이 듣는다. 다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상처한 노인이 일년도 안되어서 여자를..

수행기 2020.11.22

마하시전통에서는 왜 호흡수행을 버렸을까?

마하시전통에서는 왜 호흡수행을 버렸을까?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경계에 부딪칠 때 산산조각 깨질 때가 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어떻게 해야 번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이런 가르침을 보았다. “수행승들이여, 호흡새김에 의한 집중을 닦고 호흡새김에 의한 집중을 익히면, 고요하고 승묘한 감로의 지복에 들어, 악하고 불건전한 현상이 생겨날 때마다 즉시 사라지고 그치게 한다.”(S54.9)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다. 호흡새김, 즉 아나빠나싸띠에 대한 것이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했다. 아나빠나싸띠상윳따(S54)에서 ‘베쌀리의 경(Vesālīsutta)’(S54.9)에 실려 있다. 호흡을 관찰하면 번뇌가 일어나는 즉시 사라진다고 했다...

수행기 2020.11.10

빤냐완따 스님의 경행예찬

빤냐완따 스님의 경행예찬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틈만 나면 앉아 있거나 거닐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요즘 좌선과 행선을 거의 하지 못한다.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수행하는 것에 대한 한계일 것이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틈틈이 ‘스쿼트’를 하고 있다. 한타임에 약 20번 하면 허벅지가 뻐근해서 하는 맛이 난다. 아마 108배도 이런 성과가 있어서일 것이다. 허리가 뻐근하게 해야 하는 맛이 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좌선이나 행선은 너무 정적이다. 운동을 즐겨 하는 사람들은 좌선과 행선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굴신 운동하듯이 절수행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좌선과 행선은 싱겁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특히 학춤 추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행선에 대해서는 무슨 재미로 하는지..

수행기 2020.11.07

아버지의 영역

아버지의 영역 사띠와 삼빠자나는 항상 함께 쓰인다. 이는 수행의 관점에서 그렇다. 일상에서의 삶도 수행과 다름 없다. 반드시 좌선과 행선을 해야만 수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사띠라 하여 일상에서도 알아차림 해야 함을 말한다. 정념이라 말하는 사띠와 정지라 말하는 삼빠자나는 늘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을 보면 “수행승들이여, 세상에 수행승은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새김을 확립하여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몸에 대해 몸을 관찰한다.”(S47.17)라고 되어 있다. 이는 네 가지 관찰 중에서 몸관찰(身念處)에 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구를 정형구라고 한다. 니까야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경을 보면 “올바로 알아차리며 새김을 확립하여”라고 되어 있다. 삼빠자나가 사띠 앞에 ..

수행기 2020.11.03

어떤 느낌이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어떤 느낌이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어떤 느낌이든지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 이 말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상윳따니까야 ‘느낌의 모음’(S36)을 보면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 가지의 느낌 곧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 관해 말했다. 나는 이러한 세 가지 느낌에 관하여 말했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고 했다.”(S36.11) 느낌에는 대표적으로 낙수, 고수, 불고불낙수가 있다. 그러나 확장하면 더 많다. 경에서는 108가지 느낌이 있다고 했다. 이는 “수행승들이여, 백여덟 가지 느낌이란 무엇인가? 서른여섯 가지 과거의 느낌, 서른여섯 가지 미래의 느낌, 서른여섯 현재의 느낌이다. 이것이 백여덟 가지 느낌이다.”(S36..

수행기 2020.11.02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생의 방향이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목표와 목적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수험생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목표가 된다.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여 학자가 된다면 인생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가난한 자 청소부가 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0억을 모으기로 생각했다면 인생의 목표이지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거리를 청소하면서 세상을 청소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는 인생의 목표라기 보다는 목적에 ..

수행기 2020.10.26

도무지 멈출 줄 몰라서

도무지 멈출 줄 몰라서 모든 것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이를 한자어로 생멸(生滅)이라 할 것이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꼰단냐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우주적 사건이 되었다. 초전법륜경에 따르면 ‘측량할 수 없는 빛이 우주 끝까지 이루고 일만세계가 진동했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꼰단냐에게 법안(法眼)이 생겨났다.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새로 생겨난 담마짝쿠(Dhammacakkhu), 진리의 눈을 말한다. 생멸의 지혜가 생겨난 것이다. 진리의 흐름에 든 것이다. 그래서 “양 낀찌 사무다야담망 삽반땅 니로다담만띠.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ntaṃ nirodhadhammanti)”(S56.11)에 대하여 수다원의 오도송이라고 한다. 생겨난 것..

수행기 2020.10.24

오늘도 천천히

오늘도 천천히 무엇이든지 천천히 해야 한다. 급하게 하면 사고난다. 걸을 때도 천천히 걷고 생각도 천천히 해야 한다. 선원에서 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수행센터에서 뛰는 것은 금물이다. 천천히 사띠하며 걷는 것이다. 뒤에서 누가 부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개만 “획”하고 돌리는 것은 수행자에게 있을 수 없다. 소리를 알아차림 하면서 몸과 함께 천천히 돌려야 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은 보기에도 좋다. 사띠를 하면서 걷는 사람은 보기에도 거룩해 보인다. 사리뿟따 존자가 처음 앗사지 존자의 탁발 모습을 보았듯이. 선원에서나 일상에서나 천천히 하는 것은 미덕이다. 급하게 했을 때 명상주제를 놓쳐 버린다. 기둥의 밧줄이 끊어진 것과 같다. 밧줄 끊어진 송아지는 이리저리 배회한다. 마음의 밧줄이 끊어지면 ..

수행기 202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