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385

어머니에게는 못난 아들도

어머니에게는 못난 아들도 어머니에게는 못난 자식도 자식이다. 자애의 마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멧따숫따(慈愛經, Sn.1.8)에서는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 자애의 마음을 닦으라고 했다. 수행은 대충 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 바쳐 하는 것이다. 목숨 바쳐 하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그것이 십바라밀에서 말하는 결정바라밀(adhiṭṭhāna-pāramī)일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자애수행도 목숨 바쳐 하라는 것이다. 이른바 자애바라밀(mettā-pāramī)이다. 어떻게 목숨 바쳐 하는가? 자애경에서처럼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Stn.149)하는 것이다. 자애수행은 ..

수행기 2021.04.21

더도말고 덜도말고 새벽만 같아라

더도말고 덜도말고 새벽만 같아라 몇 시나 되었을까? 세상이 고요하다. 하루 중에 가장 사랑하는 새벽시간이다. 더 이상 자는 것은 의미 없다. 깨어 있기로 했다. 대로 찻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려 25층으로 포개져 있는 공동주택에서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잠들었나 보다. 마음은 착 가라 앉아 있다. 파도치는 마음이 멈춘 듯하다. 그저 앉아 있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있다. 단지 일어나는 생각을 지켜볼 뿐이다. 경행을 해 보았다. 불과 오보 거리 밖에 되지 않는 방에서 왕복해 본다. 다리에 힘이 있다. 잘 지탱하고 있어서 비틀거리지 않는다. 발바닥 감촉을 느낀다. 한발 디딜 때 세상을 디딛는 것 같다.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찰나찰나 현재에 집중하라. 맛지마니까야 ‘한밤에..

수행기 2021.04.19

분노에 매인 사유가 일어날 때

분노에 매인 사유가 일어날 때 나에게 분노에 매인 사유가 일어났다. 이 분노는 어디서 온 것일까? 과거 수많은 인과 연이 맺어져서 일 것이다. 과거 직접적인 원인(因)이 간접적 조건(緣)과 맞아 떨어져서 지금 이렇게 결과(果)로 나타난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행위를 하면 과보를 받는다. 그렇다고 즉각적이지는 않다.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충분히 익었을 때 결과로 나타난다. 조건이 되었을 때 과보를 받는다. 이렇게 괴로운 것도 일어날 만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쐐기의 비유가 있다. 작은 쐐기를 이용해서 큰 쐐기를 쳐내는 것이다. 이럴 때는 경전을 열어 보는 것이 좋다. 경전을 여는 순간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는 눈녹듯이 사라진다. 왜 그런가?..

수행기 2021.04.18

오늘도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오늘도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가만 앉아 있다. 편한 자세로 앉아 사유한다. 떠 오르는 생각도 좋고 생가했던 것도 좋다. 어떤 것이든지 정리하고자 한다. 내버려 두면 흘러갈 뿐이다.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두고자 한다. 군대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농가에서 남자는 싯돌에 칼을 갈고 있었다. 한가한 농촌에서 진지하게 부엌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 시시하게 보였다. 돈도 안되는 전혀 가치 없는 행위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달라진다. 전에는 가치 있게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가치 있게 생각된다. 왜 그럴까? 사람도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일까? 이에 "그렇다."라고 볼 수 있다. 농부가 칼을 가는 행위도 그렇다. 무엇이든지 경제적인 측면, ..

수행기 2021.04.17

꼭 안아주며 “그래, 괜찮아.” 토닥토닥

꼭 안아주며 “그래, 괜찮아.” 토닥토닥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지혜와 자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본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지혜 있는 사람은 자비가 있고, 자비 있는 사람은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지혜 있는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에서도 최종단계는 궁극의 진리를 본 사람이다. 사향사과에서 아라한이 되면 모든 번뇌가 소멸되어 진리의 완성이자 깨달음의 완성이 된다. 동시에 자비 그 자체가 된다. 아라한은 탐욕을 부릴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다. 탐욕과 성냄의 뿌리가 뽑혀진 아라한에게 욕망과 분노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욕망의 자리에 관용이, 분노의 자리에 자애가 있다. 탐, 진, 치가 소멸된 아라한은 그 자리에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차지하게 된다...

수행기 2021.04.17

오늘 삼십분 앉아 보았는데

오늘 삼십분 앉아 보았는데 약속은 지켜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도 약속이다. 삼십분 앉아 있기로 했다. 오늘 오전 삼십분가량 앉았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삼십분 앉아 있기도 쉽지가 않다. 매일 앉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우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앉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고역이다. 이전에 집중수행 할 때는 억지로라도 앉아 있었으나 나홀로 있을 때는 여의치 않다. 어떻게 해야 잘 앉는다고 볼 수 있을까? 두꺼운 방석을 반을 말아 엉덩이를 받혀 주었다. 다리는 반가부좌를 했다. 이전에는 평좌를 했었다. 평좌를 하면 다리 저림이 심한 것 같다. 반가부좌가 좋다는 말을 듣고 실행한 것이다. 눈은 감았다. 이뭐꼬와 같은 화두선 할 때는 눈을 반개하라고 하지만 마하시 전통에서는 눈..

수행기 2021.04.14

고요를 즐기는 고독한 수행자

고요를 즐기는 고독한 수행자 전쟁과 같은 하루를 보냈다. 깊은 밤이다. 홀로 깨어 있다. 고요를 즐긴다. 그러나 고요도 나름이다. 단지 조용하다고 해서 고요가 아니다. 금방 깨질 것이라면 지혜없는 고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혜란 무엇인가? 생멸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어떻게 아는 것인가?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이다. 생멸하는 것은 변화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집착할 필요가 없다. 시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으로 괴로워한다. 괴로움은 실체가 있는가? 단지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괴로운 느낌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 즐거움도 느낌이다. 즐거운 느낌은 ..

수행기 2021.03.28

마음이 마음을 보는 수행을 하고자

마음이 마음을 보는 수행을 하고자 스마트폰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밖에 눈이 오나 보다. 어제 저녁 늦게 일터에서 귀가할 때 눈이 간간히 흩날리는 것을 보았다. 지금 새벽 4시대이니 많이 쌓였을 것 같다. 지하에 주차해 놓기를 잘 했다. 마음보는 수행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는 타심통이 아니다. 나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는가? 한마디로 “노팅한 것을 왓칭”하는 것이다. 노팅과 왓칭이라는 말은 2008년 12월 달에 처음 들었다. 논현동에 있는 한국위빠사나 선원 갔었을 때이다. 지금은 한국명상원으로 바뀌었다. 2008년도라면 불교수행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을 때이다. 수행을 해 보고 싶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글쓰기가 3년째로 접어 들어 물이 오를 때였는데 수행..

수행기 2021.02.03

나를 바꾸는 자가격리

나를 바꾸는 자가격리 미얀마 선원에서 본 것이 있다. 그것은 영어로 리트리트(retreat)라는 말이다. 미얀마 위빠사나 국제선원에는 외국인 수행자가 많은데 플레카드에 리트리트라는 말이 보였다. 처음 보는 단어이다. 리트리트의 뜻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 보았다. 퇴각의 뜻도 있지만 피정이라고도 한다. 천주교 용어이다. 위빠사나수행센터에서 보내는 것을 영어로 리트리트라고 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안거가 될 것이다. 또는 은거라고 말 할 수 있다. 외진 곳에서 그냥 놀고먹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피정과도 다른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여 자신을 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자발적 격리에 들어 갔다. 가능하면 에스엔에스, 특히 카톡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

수행기 2021.02.02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에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에 눈 떠보니 새벽 두 시, 이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다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꿈에 시달려야 한다. 깨고 나면 피곤한 일이다. 아침 6시까지 4시간 남았다. 이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엄지에 맡겨 보기로 했다. 먼저 스탠드 불을 켰다. 천정 형광등 보다 낫다. 유년시절 시골 살 때 등잔불 추억도 있다. 눈도 보호 된다. 스마트폰 밝기도 50%로 조정했다. 다음으로 물을 한잔 마셨다. 결명자 등으로 끓여 놓은 물이다. 그냥 찬 물을 들이키는 것 보다 부드럽다. 이럴 땐 감로수가 따로 없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엄지를 친다. 한줄 쓰고 사유하고, 또 한줄 쓰고 사유한다. 시간은 철철 남아 있다. 이 고요함을 사랑한다. 고요라기 보다는 평온함이 나을..

수행기 2021.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