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385

윤회에 출구가 있다

윤회에 출구가 있다 가르침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 넓고도 깊은 가르침의 바다에서 노닐다 보면 때로 진주와 같은 가르침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왔던 것이다. 다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회의론자 사리뿟따를 부처님의 진리에 세계로 이끌게 한 법문일 것이다. 율장대품 ‘크나큰 다발(大犍度)’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 당시 회의론자 산자야 벨라뿟따는 이백오십명의 큰 유행자 무리와 함께 있었다. 그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도 그 무리에서 청정한 삶을 닦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약속했다. “먼저 불사의 진리에 도달하는 자가 다른 자에게 알려 주자.”(Vin.I.39)라고. 뱀장어를 잡듯 혼란스러운 이론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전에 육사외도 스승이 있었다..

수행기 2021.08.22

허리아픈 환자처럼

허리 아픈 환자처럼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잠에서 깨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리 아픈 환자처럼”이라는 말이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에서 본 말이다. 우 쿤달라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자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에 있는 말이다. 마하시 사야도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사야도는 왜 허리 아픈 환자처럼 하라고 했을까? 이는 일상에서 사띠에 대한 것이다. 좌선이나 행선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는데 움직이는 것에 대하여 환자처럼 하라고 했다. 특히 허리 아픈 환자처럼 하라는 것이다. 허리는 몸의 중추이다. 허리가 삐끗해서 통증이 발생되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일어나는 것도 천천히 해야 하고 앉는 것도 천천히 해야 한다. 빠릿빠릿하게 할 수 없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날..

수행기 2021.08.17

귀신은 있을까 없을까?

귀신은 있을까 없을까? 집에 있으면 자세가 나온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를 말한다. 이런 자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을 나와야 한다. 갈 데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체휴일임에도 평시와 다름없이 일터에 나왔다. 일은 없다. 일감이 없어도 나오고 일감이 있으면 당연히 나온다. 할 일이 없어도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이 된다. 어느 것이든지 일 아닌 것이 없다. 오늘 해야 할 일, 즉 글을 하나 완성하고 요가매트에 앉았다. 앉아 있어 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내심 한시간을 기대하지만 30분도 힘들다. 잘해야 일이십분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효과는 있다. 모든 감각기관을 차단하고 마노(意識)의 문만 열어 놓았을 때 고귀한 자가 된 것 같다. 앉아 있으면 별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그 중에 하나가 ..

수행기 2021.08.16

전자공학으로 본 부처님 가르침

전자공학으로 본 부처님 가르침 새벽이다. 세시대에 깼다. 더 잘 수 있지만 많이 잔 것 같다. 흙탕물이 가라앉듯 정신이 맑은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스마트폰 자판을 똑똑 치는 것이다. 지상에서 편한 자세로 자판을 친다. 엄지가는 대로 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쓸 것인지는 정해졌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엄지에 달려 있다. 엄지 가는 대로 쓰는 거다. 한번 치고 생각하고 또 한번 치고 또 생각해 본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갈증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수행과 관련된 책을 보게 된다. 수행을 통해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찰나에 ..

수행기 2021.08.15

부부싸움 할 때 “들음들음”한다면

부부싸움 할 때 “들음들음”한다면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밥을 먹고 돌아온 것이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 본 영화 ‘그들만의 리그’에서도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라는 대사를 보았다. 시골에서 살기 보다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 고픈 것을 말한 것이다. 집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집 밖으로 나가고자 할 때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라고 한 것이다. 저녁시간은 들뜨기 쉽다. 집에서 TV나 시청하고 있으면 하루가 허무하게 끝나는 것 같다. 저녁시간도 활용해야 한다. 운동은 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도 좋고 글을 써도 좋고 명상을 해도 좋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차를 끓였다. 오늘 저녁 차는 ‘모은 암황..

수행기 2021.08.09

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근사해 보일 것 같았다. 페이스북에서는 너도 나도 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들끼리 호칭할 때 시인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블로그에 시를 썼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무수한 게송을 만나게 되는데 사구게로 이루어진 시는 이미 익숙한 상태였다. 법구경, 숫따니빠따, 우다나, 이띠붓따까, 테라가타, 테리가타는 주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윳따니까야 1권도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윳따니까야는 모두 7권으로 주제별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상윳따니까야 1권에 대해서는 사가타왁가상윳따(sagātha vagga saṃyutta)라고..

수행기 2021.08.01

깜박깜박할 때가 있는데

깜박깜박할 때가 있는데 깜박깜박할 때가 있다. 바로 이전 행위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 기억력을 의심하게 된다. 순간 공포의 마음이 밀려온다. 한달전에 책을 잊어버렸다. 그날 두 손에 물건을 들고 책도 들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다. 어느 순간 책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약화되어서 그런 것일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서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전혀 생각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주의력도 감소되었다. 캐드작업할 때 실크인쇄를 하기 해서 텍스트를 쳐 넣는다. 글자 한자가 빠져 있는 것을 나중에 물건을 받고서 알았다. 꼼짝없이 다시 해 주어야 했다. 사소한 부주의가 손실로 연결되었다. 자동차를 사무실 ..

수행기 2021.07.28

사띠는 담마를 기억하는 것

사띠는 담마를 기억하는 것 사띠는 기억이다. 오늘 새벽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왜 사띠가 기억인가? 사띠(sati)의 본래 뜻이 기억을 뜻하는 메모리(memory)인 것이 큰 이유이다. 무엇을 기억하는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담마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늘 머리 속에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담마를 왜 기억해야 하는가? 담마를 기억해야 수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앉아 있는 것만이 수행은 아니다. 가부좌하고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 수헹의 전부는 아니다. 일상에서도 수행해야 한다. 어떻게 일상에서도 수행이 가능할까? 그것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에서도 사띠하는 것이다. 어제 책을 읽었다. 수행과 관련된 책이다. 빤냐완따 스님이 준 위빠사나 수행에 대한 책이다. 받은지 오래 ..

수행기 2021.07.24

자타가 수호되는 암송(暗誦)의 행복

자타가 수호되는 암송(暗誦)의 행복 “에왕 메 수땅 에깡 사마양 바가와” 팔정도경(S45.8) 서문에 있는 말이다. 대부분 빠알리경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말로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라는 뜻이다. 요즘 팔정도경을 암송하고 있다. 하루에 한번 의무적으로 암송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외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전을 한번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독송하고 더 나아가 외우면 내 것이 된다. 내 것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전을 열어보지 않고서도 외운 경전을 즉각 가져올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외운 경전은 나의 재산이 된다. 이는 다름 아닌 ‘배움의 재물’이다. 일곱 가지 고귀한 정신적 재물 중의 하나이다. 경전은 늘 가까이하고 있어야 한다. 손 닿는 곳에 ..

수행기 2021.07.09

죽음의 시간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죽음의 시간이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나는 언제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지금 이대로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말하기 꺼려 한다. 애써 피하는 경향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남의 일인 것처럼 여긴다. 죽음이 은폐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도 죽음을 볼 수 없다. 직계 가족이 아닌 한 죽은 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저 건너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천년만년 갈 것처럼 보인다. 무병장수를 꿈꾸어 보지만 유튜브에서 죽음에 대한 프로를 보았다. 불교TV(BTN)에서 ‘지혜의 다락방’을 본 것이다. 한림대 ..

수행기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