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385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살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아침이다. 눈을 뜨자 마자 집을 떠나야 한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김치국을 만들어 밥을 말아먹었다. 빠른 속도로 뚝딱 해치우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여섯 시 반이 조금 되지 않았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일요일임에도 아지트로 나간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마음이 평화롭다. 벌써 내리 14년째이다. 그것도 같은 장소이다. 마치 산속의 암자처럼 고요한 곳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도심속의 은둔처라고 볼 수 있다. 절구커피를 만들었다. 원두를 20-30 알가량 넣고 절구질했다. 종이필터를 이용하여 내리면 세상에 가장 맛 좋은 커피가 된다. 마치 한약을 먹는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일과가 시..

수행기 2021.05.16

왜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야 하는가?

왜 그 사람의 장점만 보고 가야 하는가? 늘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강연이나 법문을 들으면 준비한 노트에 메모해 둔다. 메모지가 없으면 스마트폰 메모앱을 활용한다. 키워드라도 쳐 두면 나중에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지난주 토요일 백련선원 개원법회가 있었다. 그때도 메모해 두었다. 적다 보니 10페이지가량 되었다.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사무실 책장에는 메모한 노트만 100권가량 된다. 1987년부터 메모한 것이다.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녹음하지는 않는다. 메모가 더 편하다. 녹음해 보았자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녹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작업이 된다. 그래서 강연이나 법회내용을 잘 듣고 그 자리에서 기록해 둔다. 백련선원 개원법회 때 혜송스님이 이런 말을 했다. 나에 대..

수행기 2021.05.06

내가 미움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미움에서 벗어나기를! 아항 아베로 호미, 이 말은 “내가 원한에서 벗어나기를!”라는 뜻이다. 이미우이 음악에 있는 자비송의 한구절이기도 하다. 이 말에 사무쳤다. 분노는 고통이다. 분노가 왜 고통인가? 미워하는 마음을 내면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애관의 경송(mettābhāvanāpāṭha)’을 보면 “저는 원한을 여의고, 또한 고통을 여의고, 근심에서 벗어나길 원하오니, 제가 행복하게 자신을 수호하기를!”라고 발원하는 것이다. 며칠전의 일이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받았다.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이름을 아는 사람이다. 교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는 급하게 자료를 요청했다. 번역비교를 해 놓은 피디에프(pdf)를 메일로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평소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꺼..

수행기 2021.05.06

소리에 불타지 않으려면

소리에 불타지 않으려면 세상에 법(法) 아닌 것이 없다. 소리도 법이다. 당연히 소음도 담마(dhamma)인 것이다. 짜증을 유발하는 소리도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는 찬스가 된다. 소리 중에 최악은 무엇일까? 반복음일 것이다. 마치 고장난 녹음기를 틀 듯 무한히 반복되는 음은 참을 수 없다. 마치 고문하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새김을 확립하여 들으면 소리에 불타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그것에 탐착하지 않네. 그래서 소리를 듣더라도 이렇게 새김을 확립하고 지내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괴로움은 사라지고, 자라나지 않네. 이와같이 괴로움을 키우지 않는다면 그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하리.” (S35.95) 새김을 확립해서 들으라고 했다. 사띠(sati)를 확립하라..

수행기 2021.05.04

나는 살아 있는 한 매일 앉아 있으리라

나는 살아 있는 한 매일 앉아 있으리라 어제 오늘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마치 난공불락의 성을 공략하는 것 같다. 한두시간 간격으로 앉아 보았지만 30분을 넘기지 못했다. 혼침이 큰 이유이다. 앉아 있는다고 명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앉은지 20분 이면 결판 나는 것 같다. 20분 이내로 호흡을 잡지 못하면 괴로운 시간이 된다. 망상으로 시간 보내다 패퇴하기 마련이다. 또하나 강력한 적은 혼침이다. 흐리멍덩한 상태로 있다 시간 보내는 것이다. 망상과 혼침이야말로 명상의 최대 적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 대여섯번 시도 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실패했어도 계속 시도해 보았다는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다. 전에는 어쩌다 한번 앉았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앉았다. 그러다 보니 ..

수행기 2021.04.30

생멸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생멸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요즘 전기장판 없으면 잘 수 없다. 봄과 가을에는 난방이 중지되는 것 같다. 일종의 난방의 사각계절이라 볼 수 있다. 전기장판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거리의 노숙자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사유한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창 밖을 확인하지 않고서도 바깥날씨를 대충 알 수 있다. 이 새벽에 이런저런 생각이 샘솟는다. 어느 생각을 잡아야 할까? 죽음에 대해 사유해 보았다. 어떤 이는 죽음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이라는 명칭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죽음도 없다면 삶도 없을 것이다. 모든 언어적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언어적 행위를 부정..

수행기 2021.04.30

괴로움 오종세트에서 벗어나고자

괴로움 오종세트에서 벗어나고자 매일 새벽을 맞는다. 나에게 있어서 새벽은 사유하는 시간이다. 잠에서 깼을 때 마음은 깨끗한 상태이다. 흙탕물이 가라 앉은 것과 같다. 그래서 잘 보인다. 자신의 얼굴도 비추어 볼 수 있고 바닥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새벽에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어제 잘 살았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어제 과음 했다면 괴로운 새벽이 될 것이다. 어제 풀리지 않은 문제로 괴뇌했다면 일어나기 싫은 새벽이 될 것이다. 어제 조금 앉아 있었다. 호흡을 보았을 때 앉아 있을만 하다. 계속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근심도 걱정도 슬픔도 괴로움도 절망도 없는 세계에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명상의 세계는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로 부터 해방인 것 같다.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

수행기 2021.04.29

오늘 하루 이대로 보낼 순 없어서

오늘 하루 이대로 보낼 순 없어서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없다. 오전에 좌선을 시도했다. 준비가 안되어서 인지 망상으로 인하여 20여분만에 하차하고 말았다. 호흡을 보려 했으나 도무지 호흡에 집중되지 않았다. 앉아 있는다고 해서 모두 호흡을 보는 것은 아니다. 오후 점심 식사후에 다시 앉아 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했다. 앉은지 20여분만에 일어서야 했다. 아무래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이대로 그냥 보낼 순 없다. 예비동작이 필요했다. 가벼운 몸풀기를 했다. 어제 김우헌 선생이 알려 준대로 허리굴리기와 두발치기 요가 기본동을 했다.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이미우이 음악을 크게 틀었다. 자야망갈라가타이다. 부처님의 승리에 대한 여덟 게송을 말한다. 게송마다 후렴구가 “땅떼자사 바와뚜 메 자야망..

수행기 2021.04.28

호흡이 피난처

호흡이 피난처 오랜만에 오래 앉아 보았다. 어제는 한시간 이상 앉았다. 오늘 오전은 50분가량 앉았다. 평소와 다르게 집중이 잘 되었다. 그것은 호흡과 관련이 있다. 호흡을 따라 갔기 때문이다. 요즘 한가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감이 뚝 끊겨서 달리 할 것이 없다. 글쓰기는 매일 하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에이아이가 비슷한 것을 계속 연결해 준다. 정치와 관련된 것은 일체 보지 않는다. 영화와 관련된 영상을 주로 본다. 그러나 잡식성이다. 보다 보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는다.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광고는 짜증을 유발한다. 오래 보면 정신이 점점 황폐화되는 것 같다. 이럴 때 피난 가야 한다. 사무실 한켠에 있는 명상공간으로 향한다. 앉기 전에 예비동작을 취해야 한다. 바로 앉..

수행기 2021.04.27

희망을 노래하지 말자

희망을 노래하지 말자 사람들은 희망을 말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말한다. 작은 구멍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희망의 싹이 자라면 또 다시 번영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희망은 절망의 늪에서 피는 한송이 꽃과 같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 하나의 동아줄 같은 것이고, 암흑천지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정말 희망은 구원의 메신저일까? "괴로움을 보는 자는 괴로움의 발생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도 본다.” (S56.30) 여기 괴로움의 끝장을 본 자가 있다. 그는 일체가 괴롭다는 사실을 아는 자이다. 머리로 아는 자가 아니다. 절절하게 괴로움을 겪은 자이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괴로움 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즐거움은 발견되지 않는다. 괴로움을 보..

수행기 202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