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206

차폐(遮蔽)와 열개(裂開)의 가르침

차폐(遮蔽)와 열개(裂開)의 가르침 보리수는 불교의 상징이다. 부처님의 금강좌에 보리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보리수는 깨달음의 나무라 하여 불자들에게는 신앙시되고 있다. 특히 스리랑카에서 그렇다.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보리수가 있다. 부처님의 금강좌에 있었던 보리수가 이식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는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에서 이식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보리수 잎파리가 하나 있다. 보리수 잎은 도현스님이 준 것이다. 아누라다푸라에서 가져져 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금강좌에 있었던 바로 그 보리수와 같은 것이 된다. 귀한 보리수 잎을 영원히 보존하기 하고자 했다. 문구점에서 코팅 처리했다. 그리고 액자로 만들었다. 이 액자를 어떻게 해..

여인의 흰 치아를 보고서 아라한이 된 장로

여인의 흰 치아를 보고서 아라한이 된 장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글쓰기이다. 하루에 하나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요즘에는 몇 개 늘었다. 경을 암송하는 것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루에 한번 이상 해야 한다. 요즘 암송하고 있는 것은 빠다나경이다. 이를 ‘정진의 경’(Sn3.2)이라고 한다.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데 부처님이 마라 나무찌와 싸워 이기는 것에 대한 경이다. 경전읽기도 의무적으로 하고 있다. 요즘 읽고 있는 것은 맛지마니까야이다. 머리맡에 있어서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다. 매일 한두개의 경을 읽는다. 읽다 보니 125번경까찌 읽었다. 참고로 맛지마니까야는 152경이다. 금요니까야모임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는 것도 의무적으로 한다. 2017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5년째..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신들과 악마들과 하느님들의 세계에서 신은 있을까?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는 사람에게는 신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들이 듣지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시력이 약하다면 남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의 청력이 약하다면 남이 듣는 것을 듣지 못할 것이다. 후각도 그럴 것이다. 후각이 약하다. 남들은 냄새에 민감하여 금방 알게 되지만 강하게 자극할 때만 알게 된다. 남들이 냄새 맡을 때 나는 냄새 맡지 못할 수가 있다. 이럴 때 냄새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하여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도 그런 것 아닐까? 무언가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일반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

찰나삼매도 되고 출세간적 근본삼매도 되는 위빠사나 통찰수행

찰나삼매도 되고 출세간적 근본삼매도 되는 위빠사나 통찰수행 무엇이든지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다. 도중에 그만 두기 쉽다. 공부도 그렇다. 그래서 학문이 어려운 것 같다. 학업을 해서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은 각고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존경해 준다. 학위라기 보다는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인내에 대한 것을 더 높게 쳐 주는 것 같다. 모임에서 공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니까야공부모임이 있다. 이름하여 금요니까야모임이라고 한다. 매달 두 번째와 네 번째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고 하여 금요모임이다. 그러나 나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빠지지 않고 오는 사람들은 두 손으로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왜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칸다(蘊)는 무더기일까 다발일까?

칸다(蘊)는 무더기일까 다발일까? 나에게 아침은 시간은 황금시간이다. 집중을 요하는 일은 아침에 처리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아침 일찍 맑은 정신으로 하얀 여백을 대했을 때 존재감을 느낀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금요니까야모임에서 들은 것을 글로 써야 한다. 모임 후기를 쓰는 것이다. 오늘은 존재의 다발에 대해서 써 보기로 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번역본을 보면 오온에 대하여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로 번역했다. 왜 이렇게 번역했을까? 이에 대하여 5월 27일 금요니까야모임에서 전재성 선생으로부터 들었다. 부처님은 오온(五蘊)을 말했다. 그러나 브라만교에서는 영혼을 말했다. 두 가지 이론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부처님은 아뜨만과 같은 영혼을 부정했다. 그 대신 우리 몸과 마음은 다섯 가지 다발로 이루..

사띠에 대한 가장 정확한 번역어는

사띠에 대한 가장 정확한 번역어는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이 말은 에스엔에스에서 본 것이다. 어떤 이가 페이스북에 올려 놓은 것이다. 그 사람은 자신의 여러가지 얼굴을 띄어 놓았다. 어느 것이 진짜 내 얼굴인지 모르겠다는 뜻일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하나의 고정된 나가 있지 않음을 말한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수많은 나가 있음을 말한다. 어쩌면 이를 다중인격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변덕이 심하다. 웃다가도 심각한 표정이 되기도 한다. 순간순간 감정에 따라 표정도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대상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것 같다. 아기가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 것과 같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이다. 마음은 경망한 것 오늘 잠을 잘 잤다. 아..

인정투쟁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인정투쟁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 내가 그동안 너무 자만했던 것 같다. 경전읽기가 그렇다. 경전은 필요할 때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경전은 필요한 부분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까지 이런 세월을 살아왔다. 무려 십년 넘게 그랬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태도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경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아야 한다. 마치 소설 읽듯이 읽는 것이다. 소설을 중간부터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전은 소설과 달리 중간부터 읽어도 된다. 어느 곳을 읽든지 부처님의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은 변함없다. 그러나 경전도 처음부터 읽어야 맛이 난다는 것이다. 머리맡의 맛지마니까야 머리맡에 맛지마니까야가 있다. 머리맡에 있어서 틈만 나면 들여다본다. 진도는 많이 나가지 않는다..

무수한 조건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를

무수한 조건이 모여서 하나의 결과를 요즘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글쓰기도 의무적으로 하고 경전읽기도 의무적으로 하고 게송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는 것도 의무적으로 한다. 하루 종일 담마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의나 강연을 들으면 글로 남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다시 보기가 되기 때문에 더욱더 확실히 알게 된다. 금요니까야모임에서 전재성 선생이 말한 것도 예외는 아니다. 책을 통해서 아는 것과 직접 들어서 아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책에서는 절제된 표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본마음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직접 들어 보면 본마음을 알 수 있다. 말하는 태도와 눈빛, 어감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먼 거리를 찾아 가서 들을 것이다. 5월 첫번째 니까야모임이 5월 13일 금요일에..

천년 돈점논쟁에 종지부를, 부처님의 점오점수 가르침

천년 돈점논쟁에 종지부를, 부처님의 점오점수 가르침 오늘은 금요모임이 있는 날이다. 금요니까야공부모임을 말한다. 지난번 모임에서 합송했던 것을 오늘에야 후기를 작성한다. 나에게 후기를 쓰지 않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지난 4월 29일 두 번째 사월 모임에서 합송한 경이 있다, 교재에서는 ‘진리의 바다에서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깨달음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되어 있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빠하라다의 경(Pahārādasutta)’(A8.19)에 해당된다. 포살의 날에 빠하라다경은 유명한 것 같다. 앙굿따라니까야 뿐만 아니라 율장에도 실려 있고 우다나에도 있다. 율장에서는 소품 제9장 ‘의무계율송출의 다발’에 실려 있다. 그런데 빠하라다경에서 보이지 않는 내용이 있다. 이 경을 설하게 된 일종의..

전재성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재성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금요니까야모임에서 식사 이야기가 나왔다. 4월 첫 번째 모임이 열리던 날 홍광순 선생이 제안한 것이다. 이야기는 급진전 되었다. 날자를 잡고 장소가 결정되었다. 마침내 어제 5월 4일 식사모임을 가졌다. 남양주 팔당반점에서 식사모임을 가졌다. 이날 참석한 사람은 전재성 선생을 비롯하여 도현스님, 홍광순, 장계영, 김우헌, 장계영 선생이 참석했다. 모두 7명이다. 별실에서 코스요리를 먹었다. 금요니까야모임은 공부모임이다. 니까야를 읽고 설명을 듣고 토론하는 식이다. 매월 둘째와 넷째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열린다. 두 시간 모임에서 대부분 전재성 선생의 설명을 듣는다. 이런 모임에는 멋도 없고 즐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임이 끝나면 늦은 시간이라 집에 가기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