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205

사면에서 죽음의 벽이 옥죄어 올 때

사면에서 죽음의 벽이 옥죄어 올 때 어제 문상을 다녀 왔다. 작은 법회모임 법우님 시아버지상이다. 나이가 무려 101세이다. 1923년생이라고 한다. 백년을 산 것이다. 일세기를 산 사람이어서 그럴까 슬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축복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세기를 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올해 들어 두 번째 금요니까야모임이 열렸다.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 서고에서 열린 것이다. 새로운 교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를 사용하여 두 번째 시간이다. 여러 경을 합송했는데 그 중에서 죽음명상에 대한 것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살다 죽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첫 번째 모임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모두 14명 참석했다. 디귿(ㄷ)..

전생담이 아니라 왜 본생담인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의 날에

전생담이 아니라 왜 본생담인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의 날에 1월도 끝자락이다. 새해인가 싶었는데 한달이 다 지나갔다. 마치 세월 경주 레이스를 펼치는 것 같다. 내일부터는 2월 레이스가 시작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속된다고 하는데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1월 끝자락에 인사동에 갔다. 오늘은 자타카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있는 날이다. 장소는 ‘처마끝하늘풍경’이다. 참으로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인사동에는 이런 이름이 많다. ‘싸립문을 밀고 들어서니’도 길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처마끝하늘풍경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이곳 음식점에서 세 번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을 때 참석했다. 식당은 낯설지는 않다. 쌈지길을 따라 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다...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중도는 초월이다

머물지도 않고 애쓰지도 않으면서, 중도는 초월이다 무엇이든지 첫 경험은 강렬하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 학교에 갔었을 때, 처음 해외여행 갔었을 때 등을 말하다. 모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매번 반복되면 기억에 없다. 매일 밥을 먹지만 어떤 밥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과 같다. 금요니까야 첫모임이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서고에서 열렸다. 왜 첫모임인가? 이는 새로운 교재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교재는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이다. 상윳따니까야 엔솔로지로서 가려뽑은 경을 모아 놓은 것이다. 니까야모임은 올해로서 8년째이다. 2016년에 처음 모임이 시작되었다. 2017년 2월부터는 금요모임으로 정착되었다.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은 2022년 11월에 회향되었다. 무려 5년 9개월만에 종료된 ..

이제 니까야 불사를 해야 할 때

이제 니까야 불사를 해야 할 때 일각이 여삼추인 자에게 하루 밤은 길다. 병고에 시달리는 자나 밤새도록 정진하는 자에게 하루 밤은 길다. 하루 밤이 긴 자가 또 있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아 식사가 대사인 어리석은 자에게도 하루밤은 길다. 법구경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아득하다.” (Dhp 60)라고 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모르는 자를 말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유익한 것을 모르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종식시킬 수 없고, 윤회를 끝내는 서른일곱 가지의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길을 모른다.”(DhpA.II.12)라고 했다. 갈 길 먼 나그네가 있다. 피곤에 지친 나그네는 실제 길이보다 두 배나 더 멀게 느껴진다. 잠못..

잡담 할 것인가 법담 할 것인가?

잡담 할 것인가 법담 할 것인가? 이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도 있고 몰라도 되는 것도 있다. 또한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것도 있다. 요즘 유튜브 시대이다. 손 안에 있는 컴퓨터로 수천, 수만 가지 콘텐츠를 접한다. 유익한 것도 있고 무익한 것도 있다.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것도 있다. 유튜브에서 중국 이야기를 들었다. 삼프로TV에서 본 것이다. 중국 전문가 조영남 선생이 시리즈로 설명한 것이다. 이제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중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계기가 되었다. 알면 좋은 콘텐츠이다. 삼프로TV에서 본 반도체 이야기도 유익했다. 유튜브에는 갖가지 이야기가 있다. 바다이야기, 럼주 이야기 등이 있다. 제목만 봐도 끌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보고 나면 허망하다.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되는 ..

80권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 IV 2022, 금요니까야 모임은 위대했다

80권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 IV 2022, 금요니까야 모임은 위대했다 매일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상이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세월만 가고 나이를 먹게 된다. 마침내 최후를 맞이 할 것이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글만한 것이 없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듯이 글을 남기면 삶의 흔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읽어 줄까? 그럼에도 매일매일 흔적을 남긴다. 모임에 참석해도 흔적을 남긴다. 니까야 모임이 있다. 금요일에 열린다고 해서 금요니까야 모임이다. 한달에 두 번 열리는 모임이다. 전재성 선생과 함께 하는 모임이기도 하다. 이런 니까야 모임이 회향되었다. 작년 2022년 11월 11일의 ..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심오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심오해서 앙굿따라니까야 엔솔로지 ‘생활속의 명상수행’을 회향했다. 2022년 11월 11일 회향 기념식을 가졌다. 다과회를 갖고 평소대로 합송을 하고 설명을 듣고 토론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경을 마쳤을 때 마침내 다 끝났다. 모두 다 끝났을 때 기념 촬영을 했다. 6년 활동을을 마무리 한 것이다. 이를 감히 ‘6년결사’라고 말하고 싶다. 왜 6년결사인가? 도현스님은 앞으로도 모임이 유지 되어서 십년결사가 되자고 말했는데, 도현스님이 말한 것에서 근거한다. 단체사진을 유리액자로 만들어 단체로 기념촬영했다. 모두 17명 참석했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16명이 찍혔다. 이 사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단체카톡방에 올려 놓았다. 누구든지 다운 받아 가라는 의미이다. 요즘 디지털..

나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나도 주는 사람이 되고자 “순간에서 영원으로” 영화제목이다. 사진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는 것 같다. 순간포착한 사진은 시공을 초월한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오전 사진을 찾아 왔다. 동네 사진관에 맡긴 것이다. 요즘 세상에 사진을 인화하여 출력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럼에도 굳이 인화한 것은 선물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11월 11일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금요니까야모임 회향이 있었다. 모임이 생겨난지 5년 10개월만에 끝난 것이다. 모임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것을 사진관에 맡겼다. 요즘에는 사진을 찍은 것으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념비적 사건이 있을 때는 인화해서 ..

금요니까야모임 회향의 날에

금요니까야모임 회향의 날에 금요니까야모임이 회향했다. 5년 10개월만이다. 2017년 2월 처음으로 모임이 생긴 이래 6년이라는 세월을 달려왔다. 어제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실로 숨가쁘게 달려 왔다. 6년을 한결같이 참석했다. 참석해서 글을 남겼다. 블로그에 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책으로 낼 예정이다. 무엇이든지 첫경험은 강렬하다. 니까야모임이 처음 열리던 날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 보았던 사람들이 끝까지 완주했다. 도현스님과 장계영 선생이다. 홍광순 선생은 다음 번 모임부터 나와서 완주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모임이 유지되어 왔다. 모임에 몇 차례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빠진 경우를 말한다. 백회가 넘는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번도 빠진 ..

큰 공덕이 되는 내면의 제사

큰 공덕이 되는 내면의 제사 초기경전을 보면 외도사상에 대한 것이 많다.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된다. 흔히 육사외도라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자이나교가 있다. 사람들은 자이나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10월 두 번째 금요니까야모임에서 전재성 선생은 자이나교에 대해서 설명했다. 합송한 경은 ‘의도적으로 집적된 업은 그 과보를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고의적인 것에 대한 경1’(A10.217)이다. “수행승들이여, 고의적이고 만들어지고 쌓여진 업들이 현세나 다음 생이나 다른 생에 경험되지 않고 종식된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뿐만 아니라 고의적이고 만들어지고 쌓여진 업들이 현세나 다음 생이나 다른 생에 경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