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29

지역사회 낙수(落水)가 되고자

지역사회 낙수(落水)가 되고자  오늘 아침 문자를 하나 받았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도착한 것이다.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17시간 걸렸다. 택배는 전재성 선생에게 보낸 것이다. 지난 7월 12일 금요니까야모임날에 밀린다팡하와 능엄경 출간회가 있었는데 그때 단체사진 찍은 것을 액자로 만든 것이다. 어제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체사진 찍은 것을 액자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전부터 하고 있었다. 금요니까야모임은 현재 방학기간이다. 9월 둘째주 모임이 있을 때까지 두 달간 방학이다. 방학이 끝나고 모임이 시작되면 액자를 만들어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당장 하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해야 할 일이..

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 불상이 없네, 칠갑산 장곡사에서

상하대웅전에 석가모니 불상이 없네, 칠갑산 장곡사에서 “콩밭 매는 아낙네야~”이렇게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대중가요 칠갑산이다. 칠갑산에 가니 호미를 든 아낙네 동상이 있다. 7월 15일 월요일 만수산자연휴양림에서 일박하고 떠나는 날이다. 그냥 갈 수 없다. 시간이 철철 남아서 어디라도 한두 군데 들러야 한다. 불자에게는 절만한 곳이 없다. 삼천리방방곡곡 절이 없는 곳은 없다. 특히 이름 있는 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칠갑산도 그랬다. 하루밤 머문 곳은 부여군 만수산자연휴양림이다. 가까이에 무량사가 있다. 먼저 무량사에 들렀다. 무량사는 여러 번 와 보았다. 너른 평지에 큰 가람이 있는 대찰이다. 그래서인지 성지순례 코스가 된 것 같다. 무량사를 참배 했다. 절에 가면 반드시 대웅..

한걸음도 무심코 내딛어서는 안돼

한걸음도 무심코 내딛어서는 안돼 “지금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까?”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듣던 말이다. 십여년전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했을 때 듣던 말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방금 좌선을 마쳤다. 오래 한 것은 아니다. 고작 삼십분 했다. 평좌한 몸이 가벼웠다. 몸이 가벼우니 마음도 가벼웠다. 좌선은 한시간 해야 한다. 행선도 한시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빨리 글을 쓰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글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한 늘 제자리 걸음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언제나 글쓰기를 멈출 수 있을까? 수행이 체계화 되어 있는 위빠사나 어제저녁과 오늘새벽 머리맡에 있는 ‘아리야와사법문’을 읽었다. 새기고..

고란사 영종(靈鐘)을 쳐보니

고란사 영종(靈鐘)을 쳐보니 해외에 나갈 처지가 못된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래 꼭 적당한 것이 없을 때 그와 비슷한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를 말한다. 국내여행이라도 해야 한다. 국내여행이라 하여 해외보다 못하지 않다. 오히려 해외보다 더 나은 경우가 있다. 차를 운전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국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어디를 가나 사통팔달이다. 과잉이다 싶을 정도이다. 지방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도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다. 막히면 뚫어 버리고 다리를 놓는다. 한국은 사실상 일일생활권이다. 자동차를 타면 하루 이내로 다녀 올 수 있다. 하물며 가운데 지역은 어떠할까? 2024년 7월 14일 부여로 향했다. 숙소는 부여에 위치한 ‘만수..

국내여행 2024.07.17

만수산 자연휴양림

만수산 자연휴양림  움직이는 사무실이 실현되었다. 자연휴양림에서 자연스럽게 업무를 본 것이다. 여기는 부여군 문수산자연휴양림이다. 7월 15일 월요일 9시 49분 현재 방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엄지치기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글을 쓸 때는 자판을 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것도 빨래판과 같은 별도의 독립된 자판이다. 노트북 자판은 쳐 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도 별도의 자판을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 해외여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간 내기가 힘들다. 일년에 한번은 불교성지순례 하고자 발원했으나 2년 째 못나가고 있다. 올해 나가지 못하면 3년째이다.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마구마구 흐른다. 이런 때 해외만이 여행은 아니다. 국내에도 좋은 ..

국내여행 2024.07.17

한국테라와다불교 2024년 우안거 입재법회

한국테라와다불교 2024년 우안거 입재법회 평온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아침을 만들어 먹고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행선과 좌선을 했다. 몸이 약간 피곤하다. 어제 그제 무리했었던 갔다. 일박이일 부여와 청양을 다녀 왔다. 부여의 궁남지, 낙화암, 고란사, 무량사 그리고 청양의 장곡사에 갔었다. 부여 만수산자연휴양림에서 일박 했다. 운전하느라 몸이 피곤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행선과 좌선하는 것이다. 각각 한시간씩 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합하여 고작 삼십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행을 왜 하는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발 한발 떼며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면서 앉아 있어도 마음은 편안해진다. 마음 편하기 위해서 수행한다면 수행의 목적은 ..

담마와나선원 2024.07.16

명상이 일상이 되고자

명상이 일상이 되고자  햇살 강렬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일요일임에도 나와서 자판을 두드린다. 오래 된 것이다. 멈출 수가 없다. 이른 아침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전에는 글을 썼다. 그러나 자제한다. 글쓰기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명상하는 것이다. 명상, 이렇게 말하면 거창한 것 같다. 참선이라고 말하면 동떨어진 것 같다. 수행이라고 말하면 또 어떨까? 무언가 큰일을 하는 것 같다. 명상, 참선, 수행, 모두 같은 의미이다. 홀로 하는데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에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침에 행선과 좌선을 하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서 수행은 행선과 좌선이다. 그러나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수행이다.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일상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 글 쓰고자..

진흙속의연꽃 2024.07.14

밀린다팡하 출간회

밀린다팡하 출간회 기회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있을 때 잡아야 한다. 어제 열린 밀린다팡하와 수능엄경 출간회가 그랬다. 금요니까야모임이 2024년 7월 12일 금요일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밀린다팡하 한권씩을 갖게 되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밀린다팡하 출간회를 앞두고 마음이 바빠졌다. 2024년 1학기 마지막 모임이기도 한 이 날에 출간회가 열리기로 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이다. 홍보를 잘 해야 한다. 현재 카톡방에는 60여명 있다. 한번이라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도중에 나간 사람도 많다.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장계영 선생은 저녁에 먹을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홍보를 하기로 했다. 홍보문을 작성하고 어떻게 해야 홍보를 잘 할 수 있을까?..

증득 없는 스승

증득 없는 스승 싸띠(sati)란 무엇일까? 위빠사나 수행을 알고부터 늘 궁금했었다. 여러 사람의 글도 접했다. 학문과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말한다. 견해는 모두 달랐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 수행을 해보지 않은 자가 수행에 대해서 말하면 허물이 된다.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자가 책에 대해서 말하면 구업이 된다. 싸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싸띠에 대하여 새김이라고 말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번역에 따른다. 또한 한국마하시선원의 일창스님 번역에 따른다. 새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하시사야도의 법문집 ‘아리야와사법문’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이전에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도 접했지만 이번처럼 절실하지 않았다. 아리야와사, 성자의 집이라..

항상 새김이 현전하면 다른 법들은 저절로 구족

항상 새김이 현전하면 다른 법들은 저절로 구족  변함 없는 일상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일상이다. 이런 일상에 대하여 ‘평상심시도’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일과 가운데 식사가 대사라면 먹기 위해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축생과 다름 없는 삶이다. 축생은 오로지 행동한다. 여기에 사유가 있을 수 없다. 감정은 있을지 모르나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것이다. 축생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라고 본다. 사람이라고 해서 같은 사람일까? 사유하는 것으로 본다면 똑 같은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도 인간 나름이다. 새김(sati)이 있는 인간 있는가 하면 새김이 없는 인간도 있다. 새김 있는 인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신인류라고 해야 할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