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1263

불교계의 미인도는?

불교계의 미인도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미인도를 보게 만들었다. 그제와 어제에 걸쳐서 연속해서 보게 되었다. 미인도는 미술계 최대 미스터리이다. 3부작에 걸친 공통된 된 것은 미인도는 왜 진품이어야 했나”라는 제목이다. 천경자 화가의 작품이라 여겨지는 미인도가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작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경자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이를 수사한 검찰은 진짜라고 발표했다. 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미인도 관련 유튜브를 처음 접한 것은 두세달 전이었다. 유튜브 ‘최광진의 미학방송’에 있는 것을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본 것이다. 최광진 선생은 미술평론가이다. 평론가 입장에서 진실을 파헤쳐 보고자 한 것이다. 모두 3부작이다. 1) 1부 미술계 최대 미스터리,..

담마의 거울 2023.07.29

머리맡에 상윳따니까야

머리맡에 상윳따니까야 지금 시각은 4시 48분, 고요한 새벽이다. 스마트폰을 봤을 때눈 3시 58분이었다. 더 자야 할까? 새벽 3시대가 되면 선원에서의 생활이 떠오른다. 비록 짧은 단기 집중수행이었지만 일어날 시간이다. 새벽 4시가 되면 명상홀에서 새벽좌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이 되면 정신이 맑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에 끄달려 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전환해야 한다. 반전하듯이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암송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한동안 암송하지 못했는데 며칠전에 복원했다. 나는 긴 길이의 경을 막힘없이 잘 암송할 수 있을까? 이런 우려는 불식되었다. 잘 올라왔기 때문이다. 암송이 끝났을 때 "사두!사두!사두!"했다. ..

담마의 거울 2023.07.24

누가 깨달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가?

누가 깨달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가? 자칭타칭 깨달았다는 도인들이 많다. 대체 그들의 깨달음은 어떤 것일까? 합일의 경지가 깨달은 것일까? 고요한 새벽이다. 잠에서 깼을 때 더 잘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을 잠으로 보낼 수 없다. 또한 인생을 일만 하다 보낼 수 없다. 진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 이럴 때는 경전을 봐야 하고 논서를 봐야 한다. 거기에 길이 있다. 새벽 몇 시인지 모른다. 고요한 새벽에 멍때리기 할 수 없어서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 상태이어서일까 잘 떠 올랐다. 막힘 없이 계속 올라 왔다. 이 새벽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금쪽같은 시간에 소설이나 일반 책을 읽는 것은 아깝다. 논서를 손에 잡았다.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말한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담마의 거울 2023.07.21

행복마저 초월하라 했거늘

행복마저 초월하라 했거늘 지금 행복한 자는 이 행복이 계속 되길 바란다. 지금 불행한 자는 이 괴로움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길 바란다. 그러나 결국 어떤 행복도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만다. 오래 전에 즐겨 듣던 노래가 있다. 팔십년대 말에 들었다. 김영동이 작곡한 사랑가이다. 국악인 김성녀가 불렀다. 가사에“이 행복이 부서질 것 같아”라는 구절이 있다. 행복은 부서지기 쉽다. 조금이라도 건들면 깨질 것 같다. 행복은 조건이 바뀌면 금방 사라진다. 행복은 일시적이다. 행복은 일시적 느낌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즐거운 느낌에 지나지 않는 행복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일시적 느낌이다. 사람들은 이런 행복에 목숨을 건다. 행복한 느낌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불교에서 행복은 어떤 의미일까? 불교에서는 행복을 추..

담마의 거울 2023.07.17

망갈라경이 행복경이라고? 승가이기주의와 번역참사를 보고

망갈라경이 행복경이라고? 승가이기주의와 번역참사를 보고 최근 망갈라경 명칭에 대한 논란을 보았다. 승가에서는 이제 ‘행복경’으로 정착되는 것 같다. 가장 진보적인 선원그룹에 해당되는 지리산 B선원에서도 논란끝에 행복경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행복경 명칭 논란은 평소 존경하는 H스님이 올린 페이스북 글을 보고 알았다. 하안거 중에 있는 B선원의 스님대중이 망갈라경에 대한 윤문 작업을 한 과정에서 이런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안거 중인 스님들은 예불의식도 할 것이다. H스님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자애경(Sn2.1)을 합송했다고 한다. 한국 선불교 전통에서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에 해당되는 자애경을 합송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B선원이 진보적 선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B선원에서는 자..

담마의 거울 2023.07.15

세상의 흐름대로 살면 골로 간다

세상의 흐름대로 살면 골로 간다 또 다시 새벽이다. 어제와는 몸 상태가 다르다. 한기는 사라졌다. 약의 힘이다. 속이 매스껍기는 하지만 한기가 사라지니 살만 하다. 몸은 매우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불편과 불쾌와 짜증과 아픔과 괴로움을 느낀다. 감기에 걸려 몸에 한기가 들었을 때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 진다. 아름다운 풍경도 나와 무관한 것이 된다. 이럴 때 마음청정이면 중생청정이라는 말을 떠 올려 보게 된다. 마음이 더러운 자들은 세상도 더럽게 보일 것이다. 탐욕으로 가득한 자는 지나가는 여인은 성적대상으로 보일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찬 자들은 세상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불공평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연애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은 세상이 아..

담마의 거울 2023.07.11

스님 타이틀이 부끄럽다, 윤회를 부정하는 H스님

스님 타이틀이 부끄럽다, 윤회를 부정하는 H스님 유튜브에서 본 것이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H스님을 인터뷰한 것이다. 명사들만 찾아 다니는 기자는 H스님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상당히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일까? 윤회를 부정하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가 치밀었다. 윤회는 불교의 근본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윤회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소위 많이 배웠다는 자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있다. 또한 선승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윤회는 있을까 없을까? 이런 질문하는 것 자체가 우문이다. 당연히 있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하기 때문이다. 마치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합니까?”라고 물어 보는 것과 같다. 윤회부정론자들이 늘 하는 말 윤회부정론..

담마의 거울 2023.07.07

마음은 영원한 청년인데

마음은 영원한 청년인데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제 만보이상 걸었다. 10키로에 13,000보 정도 되는 것 같다. 시간은 2시간 반가량 된다. 이렇게 걸었으니 죽지 않는 것이 될까? 요즘 만보는 기본이다. 왜 그런가? 차를 타고 다니지 않고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 일터까지 1.5키로 걸린다. 오늘 만보기로 재보니 2천보가 된다. 점심 때 밥 먹으로 집에 가기 때문에 하루에 네 번 1.5키로를 걷는다. 하루에 기본으로 8천보를 걷는다. 만보를 채우려면 명학공원 산책을 하면 된다. 일을 끝내면 보상심리가 발동된다. 이때 산책을 한다. 일터를 나서 만안구청을 거쳐서 명학공원에 이른다. 명학역 부근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옛날 동물검역소가 있던 자리이다. 그래서일까 공원에는 축혼비..

담마의 거울 2023.06.29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를 봤다. 영화소개를 한 것이다. 물론 스포일러가 있다. 영화를 정식으로 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리뷰를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말을 보면 재미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스님들이 나온다. 스님들이 나오기 때문에 불교영화라고 볼 수 있다. 네 명의 스님들이 등장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네 명의 상좌들이 치매에 걸린 은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은사스님 사후 이해 관계에 대한 것이다. 첫번째 상좌가 영화의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 은사스님 손을 잡고 절에 들어 왔다. 청년시절 수련장면도 나온다. 일년동안 무문관 수행을 하는 장면을 말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주인공은 “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라며 절규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불교..

담마의 거울 2023.06.14

자신이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야

자신을 어떻게 등불로 삼을 것인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오 나의 스승께서는 다른 이의 의지처는 되실지언정 당신 자신의 의지처는 아직 되지 못하셨구나."(1권, 484쪽)라는 구절을 말한다. 제자는 스승이 아직 아라한이 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스승님에게 가르침을 드 려야겠다”라며 스승을 방문했다. 마하시와(Mahasiva) 장로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마하시와 장로는 대강백이었다. 장로에게 배워 아라한이 된 사람은 무려 3만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정작 장로는 아라한이 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자가 깨우쳐 주고자 했다. 마하시와 장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하시와 장로 이야기) 마하시와 장로의 일화 마하시와 장로는 열여덟 종파의 스님들에게 경..

담마의 거울 202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