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 27

명학공원과 쌍개울 봄마중

명학공원과 쌍개울 봄마중 어떤 이는 글 쓸 때 반드시 날씨를 말한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날씨 얘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사람이 표현한 그 지역 그 날의 날씨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치 허사(虛辭)처럼 보인다. 오늘 날씨는 우중충하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를 보는 것 같다. 하루는 맑고 하루는 흐리고 하루는 비가 오는 봄 날씨를 말한다. 이런 날씨 소식을 전하는 것도 읽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그 동안 봄의 징조는 있었다. 가장 앞선 것으로 동지를 들 수 있다. 어둠이 절정에 달한 것을 봄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다음으로 입춘이고, 그 다음으로 3월 개학일이다. 그러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사월이나 되어서야 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천지가 개..

진흙속의연꽃 2024.04.20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마음도 마음에 드는 문구를 보면 기억하고자 한다. 새기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새벽에도 그랬다. 오늘 새벽에는 세 개의 책을 보았다. 쌍윳따니까야, 냐나띨로까스님의 생애, 그리고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았다. 머리맡에 있어서 본 것이다. 책을 볼 때는 한꺼번에 많이 보지 않는다. 여러 번에 나누어 조금씩 본다. 마치 소설 읽듯이 하루 밤에 다 보지 않는다. 왜 그런가? 새기면서 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습관들이기 나름이다. 독서도 습관이다. 책을 머리맡에 두고 읽으면 습관이 된다. 새벽에 잠이 깨면 자동으로 손이 가는 것이다. 욕망의 세월을 살았는데 오늘 새벽 쌍윳따니까야를 읽다가 새기고 싶은 내용을 발견했다. 이미 오래 전에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다. 그것은 욕망과 관..

이제 방향을 찾았으니 주욱 그 길로

이제 방향을 찾았으니 주욱 그 길로 빠알리경전반 수업이 시작된지 한달이 되었다. 빠알리기초반이 끝나고 6주차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빠알리경전반 수업을 잘 들을 수 있을까? 예습과 복습을 하면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추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아마 그것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침 백권당으로 향해 걷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빠알리문법에 지나치게 연연해하지 말자는 것이다. 새기고 싶은 문구를 글로 쓰는 것이다. 빠알리문법을 알고자 했다. 빠알리경전을 읽다 보니 빠알리원문이 궁금했다. 부처님당시에 부처님이 사용하던 언어이었기 때문에 빠알리어를 접하면 좀더 부처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빠알리 문법을 모르면 항상 그자..

빠알리어 공부 2024.04.17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읽기 시동을 걸고

‘냐나띨로까 스님의 생애’ 읽기 시동을 걸고 봄비 내리는 촉촉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이런 날은 커피가 제격이다. 절구질해서 만든 절구커피 한잔에 삶의 활력이 돈다. 어제는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의 소재가 없을 때, 글의 주제를 정하지 못했을 때 쓸 수가 없다. 이런 때는 억지로 써서는 안된다. 하루 정도 쉬는 것도 괜찮다. 어제는 몹시도 침울했다. 또한 절망감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따져 보니 비교 때문이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고 결핍하다고 느꼈을 때 침울해지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어제 침울했던 마음은 아침이 되자 사라졌다. 비 오는 아침임에도 새로운 기분이다. 따스한 절구커피 한잔에 마음이 녹아 내렸다. 무엇보다 경전에서 본 부처님 가르침이 크다. 매일매일 조..

독후기 2024.04.16

개처럼 살지 않고자

개처럼 살지 않고자 햇살 가득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아침 햇살에 백권의 책이 빛난다. 책장 가득 백권의 책을 보면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인 것이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부와 명예와 권력,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바라 보면 요즘 속된 말로 ‘자뻑’이 된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흔적을 남겨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손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고교시절 어떤 학생은 “저는 기필코, 기필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학생은 아버지가 되겠다고 말했다.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는 것을 일생일대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로 보는 것이다. 정말 그는 아버지가 되었을까? 아마 틀림 없이 아버지가 되었으리라고 본다. 요즘 공원에 애완견..

진흙속의연꽃 2024.04.14

124권 담마의 거울 2021, 마하까루나(大悲)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124권 담마의 거울 2021, 마하까루나(大悲)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흔히 비우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자꾸 채우는 삶을 지양하자는 말이다. 책을 읽는 것도 채우는 삶이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이 있지만 읽지 못하고 있다. 시간도 없을뿐더러 책에서 크게 얻을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경전은 다르다. 머리맡에는 초기경전과 논서가 있다. 요즘은 ‘쌍윳따니까야’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는다. 경전을 읽으면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런가? 경전은 고전중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채우는 삶에 지식만 있을까? 채우는 삶에는 재산도 있다. 돈을 모으고 돈을 불려 나가는 것도 채우는 삶이다. 사람들은 채우는 삶을 살고자 한다. 채우고 또 채워서 부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

책만들기 2024.04.13

오온에 집착된 존재는 모두 악마

오온에 집착된 존재는 모두 악마 오늘은 금요니까야모임 가는 날이다. 카톡방에 “오늘 금요니까야모임날입니다.”라고 짤막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모임에는 누가 올지 모른다. 고정멤버들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 한두 번 오고 만다. 감각을 즐기는 데는 바빠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모임에 참석했으면 기록을 남겨야 한다. 보통 세 개 가량의 경을 합송한다. 세 개의 글을 남겨야 하나 무리가 있다. 두 개의 글을 남기면 연말에 책으로 한 권 된다. 지난 3월 22일 모임이 열렸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은 도현스님을 비롯하여 장계영, 홍광순, 방기연, 김종선, 김영인, 김종선, 유경민 선생이다. 불교에서 악마는 어떤 의미일까? 3월 22일 금요니까야 모임에서는 악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경의 ..

어떻게 해야 정치중도를 실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정치중도를 실현할 수 있을까? 평온한 백권당의 아침이다. 일터에는 이미우이의 라따나경음악이 울려 퍼진다. 언제나 들어도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그리고 잔잔한 기쁨과 환희가 일어난다. 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다. 선거에서 야당이 압승한 것이다. 이런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었다. 오만하고 불통이고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에 대하여 심판한 것이다. 앞으로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세상은 밤에 바뀌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잠 자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무력에 의해서 세상이 바뀌었다. 이는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날이 밝자 숙부와 숙모는 오늘은 상점을 열 수 있을 것 같다며 집으로 떠났..

누가 보건 말건 노랑 민들레

누가 보건 말건 노랑 민들레 조용한 4월 10일 아침이다. 오늘은 아마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위대한 민중혁명의 날로 기억될지 모른다. 오늘은 오만한 정권을 한표로 심판하는 날이다. 그들은 말 끝마다 ‘범죄자’라고 했다. 마치 이념전쟁시절 붉은 딱지를 붙이는 것과 같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른바 ‘범죄자프레임’이다. 힘을 가진 자는 힘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조폭의 주먹이 근질근질한 것과 같다. 기소권과 수사권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은 갖가지 명목으로 옭아 매었다. 그리고 야당대표를 말끝마다‘범죄자’라고 했다. 이에 평론가들도 따라서 범죄자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기를 바란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억압하려 한다면 정의롭지..

카테고리 없음 2024.04.10

진실선언으로 장애와 고난에서 벗어나기

진실선언으로 장애와 고난에서 벗어나기 하루하루가 위태하다. 이 부실한 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이곳 저곳에서 터질 것 같다. 간신히 하루하루 버티는 것 같다. 이 몸이 무너졌을 때 후회는 없을까? 조금이라도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잘 살지 못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기도한다. 울부짖으며 신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차분히 앉아서 명상에 들어 가는 사람도 있다. 요즘 한국불교에서는 기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절의 플레카드를 보면 갖가지 기도가 난무한다. 대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일까? 한국불교에 불공(佛供)이라는 말이 있다. 오래 전부터 써 오던 말이다.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는 말이다. 이렇게 좋은 말이 있음에도 기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

진흙속의연꽃 202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