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것이 생겨난 것에 대하여 볼 때는 볼 때뿐이다. 들을 때는 들을 때뿐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 볼 때는 볼 때뿐이고, 들을 때는 들을 때뿐이라고 했을까? 이는 위빠사나 수행관점에서 고찰해 보아야 한다. 그 동안 의문하던 것이 풀렸다. 그것은 “왜 볼 때는 볼 때뿐이고, 들을 때는 들을 때뿐이라고 했을까?”에 대한 것이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고서 비로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오염원 욕망이라는 이름의 오염원이 있다. 하루 한시라도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왜 그런가? 우리는 욕계중생이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의 세계에 살고 있다. 성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