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 58

거리성자 페터 노이야르 영상을 보고

거리성자 페터 노이야르 영상을 보고 세상에는 학위가 없어도 학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보통사람이지만 학자보다 더 학자다운 사람이 있고, 보통사람이지만 스님보다 더 스님다운 수행자가 있다. 페터 노이야르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일 것이다. 도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페터 선생에 대한 영상을 공유한 것이다. 어제 저녁에 보았다. 총 55분 분량으로 KBS에서 촬영된 것이다. 시기를 보니 2000년 1월 23일에 방영되었다. 요즘 유튜브 시대를 맞이하여 무려 21년만에 방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상 제목은 ‘무소유 삶 거리 수행자 페터 노이야르’(https://www.youtube.com/watch?v=35m5m2-MK8k )이다. 그때 당시 ‘KBS 스페셜’로 특별제작된 프로이다. 그런데 ..

오늘도 감각을 즐기기에 바쁜

오늘도 감각을 즐기기에 바쁜 평범한 삶을 살다 죽으면 곧 잊혀진다. 영화대사에서 본 자막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사람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그는 보통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음을 알면 그로써 현명한 자가 된다."(Dhp.63)라고 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이의 죽음관에 대한 글을 보았다. 죽음에 대해 토론하다가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 간다."라는 취지로 써 놓았다.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까? 이는 허무주의에 바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무주의자는 인생을 원타임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인생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등 감각된 것만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나 증명되지 않은 것..

담마의 거울 2021.11.10

식사가 대사(大事)라는데, 식당순례 30 일인도리탕

식사가 대사(大事)라는데, 식당순례 30 일인도리탕 식사가 대사라고 한다. 식사대사(食事大事), 식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출재가를 막론하고 먹는 일은 큰 일인 것이다. 오늘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사무실 구내식당이 있지만 외식하기로 했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 우중에 우산을 쓰고 정처없이 걸었다. 단풍이 절정이다. 우중에 노랑은 더 노랗게 보이고 빨강은 더 빨갛게 보인다. 며칠 지나면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야말로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마음도 스산하게 만들 것이다. 나홀로 식사하는 사람에게 식당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한테이블 정도는 채울 수 있어야 환영받는다. 그럼에도 코로나시기를 맞이하여 사무실 반경 5백미터 이내 식당은 한번쯤 가보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중에 배..

음식절제 2021.11.09

보시도 타이밍

보시도 타이밍 절에 가면 왜 얻어먹으려고 할까? 참으로 못된 생각 가진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하위하라에서 점심시간 때 일이다. 까티나법요식 1부 행사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있었다. 사원에는 공양간이 없다. 도시락도 없다. 한국불자들은 밖으로 나가서 먹어야 했다. 도로변 추어탕집이 점심식사 장소였다. 추어탕집에 자리잡았다. 다섯 테이블에 앉았다. 20명 가까이 된다. 청국장이 나왔다. 반찬은 푸짐했다. 밥보다 반찬이다. 그때 저쪽에서 계산이야기가 나왔다. 자신들이 내겠다는 것이다. 결국 둘이서 반분해서 냈다. 아마 각각 10만원가량 들었을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왜 돈 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원에서 식대를 낼 것으로 생각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절에 가면 공짜로 밥을 준다고 생각..

진흙속의연꽃 2021.11.09

비대면에서 대면모임으로

비대면에서 대면모임으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속속 일상이 회복되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든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줌모임이다. 어제 사람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비대면에서 대면모임으로 전환되는 것에 대한 안내 메세지를 말한다. 11월 1일부로 방역지침이 완화되었다. 집합금지업종에 대한 인원제한도 풀렸다. 이에 금요니까야공부모임도 대면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다. 단체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게 개별문자를 보냈다. 또 단톡방에 다음과 같이 장문의 글을 올렸다. "금요모임 관련 하여 알려 드립니다. 여러 분에게 의견 물어보았습니다. 대면모임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줌과 병행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녹음피일을 공..

아산 마하위하라 까티나축제 현장에서

아산 마하위하라 까티나축제 현장에서 세상을 혼자서만 살 수 있을까? 자연인처럼 깊은 산중에서 고립되어서 살 수 있을까? 자연인이라도 완전한 자급자족은 가능하지 않다. 쌀은 사먹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맺고 살지 않을 수 없다. 어제 11월 7일 마하위하라에 갔다. 까티나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스리랑카 불교공동체 최대 축제의 날이다. 흔히 가사공양의 날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처님의 탄생, 성도, 열반을 기리는 웨삭, 즉 붓다의 날과 함께 테라와다불교 최대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네비를 보니 마하위하라가 있는 아산까지 68키로 50분 걸린다. 심리적으로 먼거리로 생각했으나 시간적으로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시간 때문일 것이다. 또한 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는 이유도 있다. 안양에서 아산까지..

알아차림과 함께 성찰하는 삶을, 담마와나선원 가사공양의 날에

알아차림보다 성찰하는 삶을, 담마와나선원 가사공양의 날에 갈까말까 망설였다. 테라와다불교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까티나 축제 참여에 대한 것이다. 이상했다. 축제를 앞두고 홍보가 있어야 하나 하루 전에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단톡방에 문의하니 행사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조용한 축제를 예상했다. 엄중한 코로나시기에 방역수칙을 어기면 안되기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렇다면 올해는 쉬어 가고자 했다. B법우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 확실히 까티나 행사가 있다고 했다. 스님도 세 분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스님 중에는 빤냐완따 스님도 있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이런 소식을 듣고 마음이 동요했다. 시간이 갈수록 참석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엄중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1..

담마와나선원 2021.11.07

눈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눈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지금은 새벽 세 시대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다. 온전한 내시간이다. 아침 여섯 시까지는 진정한 내세상이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새벽에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바닥의 자갈 등이 보이듯,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 좋은 생각이 샘솟는 것 같다. 올라온 생각, 흘러간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엄지로 붙잡고자 한다. 오늘 새벽에는 니까야모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금요모임이라고 한다. 매달 둘째주와 넷째주 금요일에 공부모임을 갖기 때문이다. 니까야를 합송하고, 설명을 듣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2017년 2월 부터 정식으로 시작되었으니 이제 5년 되었다. 매달 두 번 있는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

자기세계에 갇혀 살다보면

자기세계에 갇혀 살다보면 위쉬풀 씬킹(wishful thinking),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말한다. 그결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바라는 것만 생각했을 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판을 혐오하는 사람도 관심 갖게 만드는 대선정국이다. 상당수는 이미 마음의 결심이 되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다. 지지하는 후보에 대하여 추문이 있어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의의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한발 물러서 보면 잘 보인다. 좀더 물러서면 더 잘보인다. 주식에서는 매수한 것만 보인다. 시야가 한..

그대는 죄가 없다

그대는 죄가 없다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내서 앉아 있어 보지만 잡념만 일어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평소 앉아 있는 버릇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단 오분이라도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시간이 점차 늘어나서 오래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좌선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심산유곡 암자에서 살아 가지 않는 한 오분도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앉아 있지 않으면 더욱도 멀어진다. 왜 그런가?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모임에 한번 빠지고 두번 빠지다 보면 아예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왜 명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명상 좋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체험해 본 사람이라면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알게 된다. 아주 조금..